세상에는 과일처럼 종류와 색깔이 다양한 슬픔이 있다. 지구에 77억 명의 인구가 있다면, 77억 개의 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대의 슬픔엔 영양가가 많아요』에서 강지윤 저자는 ‘슬픔’이라는 생의 통증을 부드러운 햇살처럼 포근히 감싸 안는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꿈꾸지만, 슬픔과 고통이 완전히 사라져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한 번의 생은 이미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하며 영원한 기적이기에. 오늘도 제 몫을 다해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그대에게 이 책에 담긴 저자의 포근한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대의 슬픔엔 영양가가 많아요』 라는 제목이 독특하고 인상적이에요. 어떤 의미인가요?
이 책에 실린 시의 한 구절인데, 그 시에서 ‘슬픔에서 녹여낸 눈물이 사과나무를 키웠다’는 내용이 나와요. 보통 슬픔은 수치스럽거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겪고 있는 슬픔은 그 자체로 슬프고 아프지만, 그 슬픔 속에 당신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위로하고 싶었어요.
사는 동안 슬픔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슬픔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어쩌면 살아있기 위한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상에 슬픔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인 거지요. 중요한 건 슬퍼도, 고통스러워도 ‘아름답게 살아내기’를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이 책은 함께 살아내자는 용기를 먼저 앞세우고,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는 치유에세이예요. ‘치유’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내가 아프고 슬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보이는 것이 치유의 중요한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에요. ‘나는 전혀 슬프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았어’ 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슬픔과 상처가 쌓여 있거든요. 일단 내가 아프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야 치유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보통 심리상담전문가는 책이나 방송에서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 조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사님은 이 책에서 본인의 상처와 아픔, 상실감 등을 꾸밈없이 펼쳐 놓으신 것 같아요. 스스로 ‘이렇게 슬픈데 내가 살아 있어도 될까?’라는 질문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30년 동안 마음이 아픈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많이 지쳐버린 것 같아요. 건강했던 몸도 쇠약해져서 물리적으로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상담자인 제가 아무런 슬픔도, 괴로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늘 삶에서 크고 작은 일이 생기고 매일 매일 그 하루치의 슬픔이 쌓이기도 해요. 이 책에는 제가 과거에, 혹은 현재에도 느끼고 있는 다양한 감정을 너무 무겁지 않게 일상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았어요. 슬픔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 ‘난 이렇게 큰 슬픔을 가진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거야’ 라는 의지와 용기를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 의미가 독자들께도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올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위기로 시작해서 지금도 나라 안팎으로 많은 혼란과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허무감과 우울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주길 바라시나요?
우리의 인생은 종종 스펙터클 한 액션영화나 공포물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살다보면, 나이가 좀 더 들면 슬픔 없는 세상을 만나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날은 오지 않았어요. 제 삶은 늘 예기치 않은 불행과 고통을 맞닥뜨렸고 언제나 그 가시밭길 위에서 싸우며 살아왔어요. 슬픔은 우리 삶에 깔려있는 보편적인 감정 같아요. 슬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최근에는 코로나블루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지요.
하지만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도 쌓이고 쌓이면, 그 모든 시간들이 의미 있어지는 지점이 와요. 그때가 바로 우리의 슬픔이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아닐까 해요. 매일 사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1분 1초가 다 애틋한 게 아닐까요. 이 책에서 그런 의미를 발견해주시면 좋겠어요.
아픔과 슬픔을 다독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지 설명 부탁드려요.
우리는 종종 큰 성과나 큰 성공을 이룬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참하고 초라하게 여기곤 해요. 타인과 비교하면 ‘나는 패배자야, 나는 존재 가치가 없어’라고 생각해 버리기 쉬워요. 거기서 분노가 생기고 그 분노가 자신과 타인을 겨냥하기도 하죠. 그래서 늘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봐 주는 게 필요해요. 위대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하고 소중한 존재예요. 그걸 깊이 깨달으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도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될 거예요.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요. 스스로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해요. 그렇게 인격을 성장시키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이 어둡다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라는 말이 개인적으로 크게 와 닿았어요.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고통을 완벽하게 제거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요. 슬픔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나를 다시 일으키고 살게 하는 힘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아가면 우린 매 순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삶은 슬퍼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 책이 그 깨달음의 작은 토막이라도 제공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슬픔을 느끼는 감수성이 예민한 분이라는 게 글을 통해 느껴졌는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박사님을 ‘삶’으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내 주위에 있는 사물과 사람과 상황이 주는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쉽게 기쁨과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예민한 감수성이 폭발하던 사춘기 때는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을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거대한 슬픔과 고통을 느꼈어요. 내가 흘린 눈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많았거든요.
그때 죽지 않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제게는 그냥 순수한 기적, 신의 은총처럼 느껴져요. 그 후 오랜 세월에 걸쳐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배웠고, 슬픔 중에도 성장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삶을 소중히, 잘 사는 방법은 어느 한 순간에 마법처럼 이뤄지는 게 아니라 죽기 전까지 연습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배웠고 슬픔 중에도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방법도 여전히 배워나가고 있어요.
이 책을 관통하는 ‘슬퍼도 살아있기로 하자’는 메시지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내 손을 잡아끄는 위로를 주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의 글로 위로와 힘을 얻는 모든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슬픔 속에서, 그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 힘든 시간을 관통해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위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더라도, 그것이 나를 자라게 하고 결국엔 행복한 길로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요. 그 이후에 또 다른 슬픔이 오더라도, 내면의 힘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일어서길 바랍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사람인지, 그 사실을 잊지 말고 나아가시길 바라요. 살아가는 날 동안 ‘살아있음’이라는 삶의 통증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강지윤 사춘기 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을 겪었고 그 고통의 경험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되어 아픈 이들을 위한 치유의 동행자가 되어왔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와 백석대학교 대학원 박사를 거쳐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과 백석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와 강지윤우울증연구소의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괜찮아, 힘들다고 말해도 돼』, 『내가 정말 미치도록 싫어질 때』, 『흔들리는 나이, 마흔』, 『나의 눈물을 마주하는 용기』, 『나는 우울한 날에도 내 마음을 지키기로 했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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