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른쪽 귀에 이명이 심해지면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청력 검사에서는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서 다른 그래프가 나왔다. 왼쪽은 낮은 음역과 높은 음역을 듣는 수치가 모두 평지였다면, 오른쪽은 높은 음역에서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였다. 의사 선생님은 현재 오른쪽 귀에서 높은음을 듣는 능력이 떨어졌는데, 뇌에서는 착각을 일으켜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명이 생기는 거라고 설명했다. 처방은 여느 아팠을 때와 같았다. 많이 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식사를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할 것. 배가 아파도 눈이 아파도 처방은 늘 똑같다.
3일이 지났지만 차도가 없었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처음에 봐줬던 선생님이 휴진이었다. 다른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자 처방이 달라졌다. 많이 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로 시작하는 대신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줬다. 일주일간 먹으라고 했다.
처방 소식을 알리자 정신과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환우회 가입을 축하한다며 위로 내지는 농담의 말을 건넸다. 약 좀 먹어봤다(?) 하는 사람들은 자낙스 용량을 그 정도까지 낮게 처방받을 수 있냐며 역시 장난으로 놀렸다. 나 역시 '나는 우원일이다! 내 알약 두 봉지!'(<쇼미더머니 6>에서 우원일은 자신의 우울증을 주제로 랩을 한 적이 있다) 라고 처방전을 자랑했다. 그리고 집으로 와 가라앉았다.
타이레놀을 처음 먹은 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낙스를 처음 먹은 날은 기억한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약을 먹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정신과 약이라고 생각하면 또 하나의 턱이 나타났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먼저 인정해야 했고, 약을 먹어서 가라앉혀야 할 수치라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기분이 없는 기분』에서 의사 선생님은 "우리 목표는 약을 끊는 것은 아니잖아요? 잘 지내는 것. 그게 우리 목표예요."(본문 중)라고 이야기한다. 약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이 약을 너무 많이 먹는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커넥티드: 세상을 잇는 과학>에서는 사람들이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하수도에서 약 성분이 검출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불어난 한강에도 알프라졸람이 흐르고 있겠지. 나 살자고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니, 한강의 물고기에게 미안해진다.
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아픔을 전시하는 행위 중 일부다. 현대 여성 미술작가들은 자꾸 자기 머리카락이나 피를 넣어서 설치 미술 작품을 만들고, 친구들은 만나면 다들 자기가 아픈 걸 말하고 싶어 한다. 요즘은 자살률을 보면서 지금 시대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아픈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데, 더 예민해진 세상 속에서 아픔의 기준이 더 다양하고 복잡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한다.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내가 아픈 것은 비정상이 아님을 위안 삼는다.
휴가 때 잦아들었던 이명은 다시 매미 소리와 함께 늘어났다. 바스락거리는 약봉지 소리를 들으며 귀속 신경을 안정시킨다. 결국 많이 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식사를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해야지. 세상이 바뀌어도 늘 기본적인 처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