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음 작가 “흥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계속 천천히 읽고 쓰고 싶어요. 아동문학을 공부하면서 제 영혼이 건강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걸 경험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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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강남 사장님』이 출간됐다. 『강남 사장님』은 유튜브 스타 고양이 ‘강남’을 사장님으로 모시게 된 지훈이의 특별한 아르바이트 체험기를 담은 동화다. 할배 고양이 ‘강남’의 능글맞고도 깊이 있는 대사, 뻔뻔하고도 사랑스러운 행동이 돋보인다. 실제 네 마리 고양이의 집사이기도 한 작가 이지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황금도깨비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강남 사장님』은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강남 사장님은 한 장의 사진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인터넷에 떠도는 짤막한 설명이 실린 사진을 봤는데,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이었어요. 남자아이가 한겨울에 빌라 앞 길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고 기름때가 시커먼 길고양이가 그 안을 파고드는 사진이었어요. 아이가 떨고 있는 고양이를 보자마자 다가가서 주저 없이 바닥에 앉고, 길고양이가 앞뒤 재지 않고 그 안을 파고들었다는 설명이 사진 아래 달렸고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양이가 너무 추워 보였다면 집에 가서 담요나 수건을 가지고 나와서 덮어 주거나, 혹은 스티로폼 박스 등으로 피신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 정도 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는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길고양이가 더럽든 말든 망설임 없이 자기 몸을 내주는 사진에 큰 울림을 받았어요. 존재를 향한, 생명을 향한 아이와 고양이의 ‘망설임 없음’은 충격적이었어요. 이후 그 사진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어요. 

뛰어난 상상력과 작가의 능청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셨는데요, 평소에도 이런저런 엉뚱한 상상을 즐겨하는 편이신가요? 

엉뚱한 상상을 많이 하지는 않고요. 평소에는 ‘멍’하게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많아요. 툭하면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치고, 도서관은 꼭 휴관일 때 가고, 서류를 떼러 갔다가 서류는 안 떼고 그냥 오고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고 저 같은 경우는 상상이라는 건 타인에 대한 ‘구체적인 공 감’에서 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길고양이라면, 빌라 주차장 안으로 지나갔는데 집주인이 왜 내 땅으로 지나가냐고 혼내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동서남북 인간들이 다 여기는 내 땅이라고 지나가지 말라고 하면 어떤 심정일까 하는. 

어느 책에서 폭력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동의해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데서 상상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학 작품을 많이 읽으면 그로 인한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것 같아요. 

할배 고양이 강남의 노련한 한마디 한마디가 인상 깊었어요. 강남이란 독보적인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고양이 넷을 모시고 산 지 6년이 되었어요. 그중 몽몽이라는 고양이가 유독 산책을 좋아해요. 하루에 한 번씩 꼭 목줄을 채워서 산책을 해야 해요. 그런데 산책하러 나가면 동네 할머니들 중에 그렇게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책에서와 똑같이요. 빌라 경계선을 조금만 넘어서 주차장에 우리 몽몽이가 발만 조금 들여놔도 소리 지르고 혼내는 분들도 꽤 계셨어요. 몽몽이와 함께 산책을 하며 얼마나 우리 삶의 터전이 인간 중심적인지, 인간들이 지구에서 얼마나 갑질 하며 살고 있는지, 고양이나 동물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억울한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강남’과 ‘사장님’이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갑’을 인간이 아닌 ‘고양이’로 설정하게 되었어요. 앞에 ‘사장님’은 힘으로 나눈 갑과 을의 관계에서의 ‘갑’이지만, 지훈이와 강남 할배가 가족이 된 후에 ‘사장님’은 갑이 아닌 하나의 ‘역할’로서의 사장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고요. 

한 발 더 나아가서 인간은 자신을 배신한 인간을 용서할 수 없지만, 고양이는 망설임 없이 장 실장을 용서해 주는 설정을 통해서 고양이를 신적인 존재(진정한 용서는 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만큼이나 더 우위에 의도적으로 두면서 인간이 결코 동물 위에 위치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동물이 인간 위라는 뜻은 아니에요. 단지 인간의 행태를 고양이가 바꿔 해 본 것뿐이에요.)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책 읽기와 독서 교육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작가로서 동화를 창작하실 때 어떻게 도움이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생각을 쭉 해 왔어요. 또 그렇게 형성된 어린이에 대한 시선이 당연히 창작의 밑바탕에 깔리게 됐고요. 

‘(훼손되지 않은 원래의)어린이는 ‘흥’이 넘치는 존재다.’ 이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그래서 제가 독서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흥’을 더해 주지는 못할망정 ‘흥’을 잃게 하지는 말자란 생각으로 책 선정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흥’이었어요. 

작가로서는 무엇보다 ‘흥’이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도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저는 학창 시절에 시골에서 살았고, 부모님이 학교만 잘 가면 그 밖에는 터치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한테 ‘책 읽기’는 학습이 아닌 백 퍼센트 ‘놀이’였어요. 읽고 나서 주제를 몰라도 되고, 읽고 나서 토론도 안 해도 되고, 작가의 의도대로 읽지 못하고 제 맘대로 오해해서 읽어도 되고, 읽고 싶은 책만 편향되게 읽어도 되고 그런 완전한 자유를 경험해서 저한테 책 읽기는 최고의 놀이였거든요. 지금은 책 읽기를 강조하고 활성화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많아져 참 좋기도 하지만, 반면에 책 읽기가 교육의 영역으로 제한되는 경향도 없지 않아서 아쉬움이 커요. 책 읽기는 교육 안에 있지 않고, 교육을 초월한 영역이라 그사이에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학교에서 독서 교육을 담당하면서 똑같은 고민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어서 괴로워요. ‘독서 교육’에서 ‘교육’을 뺀다면 얼마나 좋은 독서 교육이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첫 출간작인 만큼 애착도 남다를 것 같아요. 이야기를 다듬어 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책 한 권을 완성해 가면서 편집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으로 알았어요.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글을 단어 하나하나 문장 간의 맥락 하나하나까지 세심히 살펴봐 주신 장은혜 편집자님과 편집팀에 정말 감사드려요. 이야기를 다듬어 가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심적인 부담감이었어요. 황금도깨비상이라는 너무 큰 상을 받아서, 제 작품이 이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으로 최선을 다해 수정했어요. 

내용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다듬어 가는 데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강남 사장님은 제가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니라 우리 집 고양이 넷의 성격을 합쳐 놓은 거였고 에피소드들(강아지풀을 엄청 좋아하고, 남의 지하방 훔쳐보는 걸 좋아하는 등)도 실제 일상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결론이 정말 고민이 많이 됐었고 지금도 아쉬움이 남지만, 아직은 제 능력이 여기까지라 그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 같아요. 

『강남 사장님』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아프면 아프다 억울하면 억울하다 표현할 수 없는 길고양이 입장에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보다는 길고양이 입장에서 인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고요. 그 메시지는 ‘갑질하지 마!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야.’일 것 같아요. 또 거기에 욕심을 더한다면 노력(고생)의 대가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살다 보면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잖아요. 사람들 눈에는 성공으로 보이지 않는, 박수받지 못한 성공들에 가치를 부여해 주고 응원해 주고 싶어요. 

또 어떤 작품으로 작가님을 만나 뵐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만 들려주세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어느 책에서 본 후, 좋아하는 말이에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계속 천천히 읽고 쓰고 싶어요. 아동문학을 공부하면서 제 영혼이 건강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걸 경험했어요. 요즘은 책 한 권 내고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작가도 엄청 많다고 들었어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다시는 제 책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아동문학을 천천히 죽을 때까지 계속 공부하려고 합니다. 어린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좋으니까요.



강남 사장님
강남 사장님
이지음 글 | 국민지 그림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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