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연 “엄마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 마세요”
여성도 가부장 사회에서 규정하는 역할이 아닌, 다양한 정체감을 지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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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순간, 여자는 자신을 ‘상실’한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가졌는지는 ‘엄마’란 단어 앞에서 중요하지 않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는 이와 같이 자신을 잃은 채 ‘엄마’로만 살기를 강요받았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결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라는, 축복이자 굴레가 된 단어에 압도되어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거나 나답게 살지 못한다고 느끼는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분투하던 송주연 저자는 결국,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남편과 시어머니의 마음을 열었고, 엄마로서의 삶과 꿈을 가진 여자로서의 삶 모두를 지켜냈다. 이 책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으나 엄마처럼 살고 있는 여자들, ‘이기적인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자들,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디 있냐고 생각하는 남자들, 그 모두를 위한 책이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라는 제목이 강렬하게 와 닿는 것 같아요. 이 제목을 통해서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라는 틀에 갇혀 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남편을 보니 저와는 너무 다른 거예요. 분명 같이 부모가 됐는데, 남편에게 ‘아빠’라는 정체감은 자신의 여러 모습 중 하나였죠. 그때부터 저는 궁금했어요. 왜 남편에게는 ‘아빠’가 아닌 다른 모습도 존중받는데, 아내에게는 ‘엄마’가 어떤 정체감보다 우선시 되는 걸까? 그런데 이게 꼭 엄마가 되고 난 후의 일은 아니더라고요. 엄마가 아닌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는 “애도 안 낳고 독하게 일한다”며 폄하되기 일쑤고,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들은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여성을 오직 ‘재생산의 도구’로만 여겨왔던 가부장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팽배한 것이죠.

제목의 ‘엄마’는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 수단이 ‘엄마’라는 틀이기에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제목에 ‘여성도 가부장 사회에서 규정하는 역할이 아닌, 다양한 정체감을 지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던 글을 모아 묶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내용의 이야기들을 올리게 되신 계기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나의 독박 돌봄노동 탈출기>,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라는 두 칼럼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나의 독박 돌봄노동 탈출기>는 당시 캐나다에 머무르면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집단상담을 경험하고 제 일상을 바꿔가던 중에 썼어요. 집단상담에서 배운 내용들이 너무나 강렬했고, 한국 여성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용기 내어 쓰게 되었답니다.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는 한국에서 연재한 글입니다. 이 연재물은 자발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오마이뉴스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됐는데, 함께 간 아이가 “엄마가 글쓰기와 상담을 같이 하고 싶어 했는데 꿈을 이뤄서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어요. 이 말을 들은 한 기자분께서 “꿈을 이뤘다”는 말을 듣기까지의 여정을 연재해보자고 제안 주셨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게 아니라 제가 정말 꿈을 이룬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그러다 평범하기에 오히려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렇게 망설이며 연재를 시작했는데, 정말 많은 분이 호응해주셨고 저 역시도 글을 쓰면서 저의 정체감을 다시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어요.

책을 읽으면 남편을 따라서 떠난 캐나다에서 겪은 일들이 큰 깨달음을 주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문화를 배워가면서 ‘한국식 여성의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책에는 다 풀지 못했던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캐나다라고 해서 완벽하게 평등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 특유의 ‘시가 중심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제게 그들의 일상은 부럽기만 했답니다. 한번은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에 오래전 캐나다에 정착한 시누가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가 시누를 ‘아가씨’라 부르지 않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둘이 동갑이라면서 친구처럼 수다를 떠는데 참 놀랍고 부러웠어요. 친구는 캐나다에 오래 살면서 ‘호칭’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게 편해져, 시댁 식구들하고도 서로 이름을 부른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가 ‘아랫사람’ 같단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했지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상대방을 이름으로 부를 때, 저 역시 상대방과 더욱 동등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언어가 생각과 태도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죠. 전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차별적인 호칭들을 바꾸려는 시도가 무척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평등한 언어로 서로를 부르고, 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평등이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많은 엄마들이 육아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라면 늘 아이와 함께하고, 아이를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보면 작가님은 ‘워킹맘’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셨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처음 ‘워킹맘’이 되었을 땐 엄마로서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려 ‘엄마’ 역할에만 충실하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줄 알았어요. 그러다 이사, 해외연수 등 일이 생겨 ‘전업맘’으로 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로만 사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일도 안 하면서 아이에게 이것밖에 못 해주다니.’ ‘아이를 돌보는 게 왜 이렇게 힘들고 짜증 나지?’ 이런 마음이 들면서 죄책감이 더 심해졌어요. 게다가 나의 삶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에 불안감만 더 높아졌죠. 제가 불안해지자 아이 역시 덩달아 불안해졌답니다. 

결국 제가 깨달은 건 결코 ‘나 자신의 꿈’은 포기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몸이 힘들고 아이에게 미안해도 ‘나 자신이 사라지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견디기 쉬웠어요. 그래서 일과 공부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답니다. 제가 저의 삶을 선택했을 때 아이도 더 안정되고 밝아졌고요. 많은 학자들이 입증하듯, 스스로의 욕망과 꿈을 존중해줬을 때 저는 더 좋은 엄마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이 ‘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엄마’, ‘아내’, 혹은 ‘며느리’라는 역할에만 갇혀 살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의 일상과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요즘 ‘남녀평등’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국가의 정책들도 ‘평등’을 추구하며 많이 변해가고 있고요. 하지만 개인의 일상은 이런 사회적 변화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가정은 ‘시가 중심 가부장제’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남성이든 여성이든 심리적으로 ‘가부장적 전통’에 매여 있지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일상의 가부장적 습관과 사고들이 바뀌지 않은 것. 그게 여전히 여성들이 ‘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핵심적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여자들은 자신답게 살고자 변화를 꾀할 때 ‘뭔가 잘못한 건 없는데 미안한 것 같은’ 묘한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불편감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그리고 ‘나답게’ 살고 싶지만 선뜻 용기 내지 못하는 한국의 엄마들에게 한 말씀 해주실 수 있나요?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저만은 아닐 거예요. 남편과 가사분담을 하기로 약속하고서는 막상 퇴근 후에 설거지하는 남편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거 말이죠. 저는 이런 게 바로 심리학자 시드라 레비 스톤이 말하는 ‘내 안의 가부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지배해온 가부장적 질서들은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개개인의 심리구조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답니다. 이는 가부장제에 반하는 평등한 변화를 실천할 때마다 줄곧 ‘죄책감’이라는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요. 

저 역시 처음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여전히 그런 면도 있고요. 하지만 ‘내 안의 가부장’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이게 정말 내가 잘못해서 미안한 건지, ‘내 안의 가부장’이 만들어낸 죄책감인지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미안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기분을 떨쳐내려고 노력합니다. 남편과 대화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같은 상황에서 남편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야기 나눠보세요. 아마 대부분은 여성들만 느끼는 죄책감일 겁니다. 이런 죄책감은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니 과감히 무시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빌 게이츠의 아내인 자선사업가이자 여성운동가 멜린다 게이츠가 쓴 『누구도 멈출 수 없다』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스스로 삶의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네 삶의 목표를 세울 거야.” 

여성이 자신의 삶을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로 채우지 않으면, 결국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삶의 목표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엄마와 아내로 충실히 사는 삶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삶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일치한다면, 이는 나의 꿈과 일치하는 충만한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서 공허함이 느껴지고 내가 나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가라는 마음의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아주 작은 것부터 하면 됩니다. 주말에 두 시간 정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온전한 나로 있을 시간을 갖는 것. 이런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시작해야 변할 수 있습니다!’ 


* 송주연

고려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7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사람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인 ‘마음’에 이끌렸다. 기자직을 그만두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상담심리학회의 공인 상담심리사가 됐다. 엄마이자 상담사로 살면서 한국의 가부장 문화 속에서 치열하게 버텼다. ‘엄마’, ‘아내’, ‘며느리’에게 요구되는 환상과 굴레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을 느끼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심리학, 여성주의, 생태주의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글로 표현하는 가운데 나를 찾아가고 있다. 현재는 상담을 하며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꿈꾼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송주연 저
스몰빅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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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