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특집] 프리랜서는 고양이처럼 - 비주얼 아티스트 아방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던 점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 과정이 차곡차곡 쌓여서 아방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지, 브랜딩을 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글ㆍ사진 정다운, 문일완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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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아방(abang)입니다”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더 묻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건 맞기도 하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방은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패션이나 뷰티 브랜드와 힘을 합쳐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때때로 TV를 비롯한 매체의 영상에 그림으로 숨결을 불어넣고, 몇 년에 한 번씩 책을 내기도 한다. 스물다섯 살에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둔 후 줄곧 하고 있는 일은 그림과 드로잉 수업이다. 자신이 셀러브리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인스타그램 @aaaaabang 계정 팔로어는 현재 2만 9000명이다. 1년 6개월에서 2년 간격으로 긴 여행을 떠난 후 그림의, 혹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롱-텀 루틴을 가지고 있다. 멀리서 보면 고양이처럼 제멋대로인 양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치열하고 근면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다양한 작업을 하다 보면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할 것 같다. 아방은 어떤 사람인가? 

예전에는 프로필에 ‘유쾌, 위트, 낭만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썼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럴 때가 많지 않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인스타그램에서 ‘아방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키워드는 컬러였다. 따뜻한데 강렬하다고. 두 번째는 자유롭고 당당하다는 것, 세 번째로 많은 답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지금도 길을 잃을 때면 이 결과를 머릿속에 넣고 그림을 그린다. 


스물다섯 살에 프리랜서가 된 이후 줄곧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그사이 그림 유학을 다녀왔고, 세 권의 책을 내고, 전시회도 했다. 혼자서 스텝을 밟아나가는 게 힘겹지는 않나?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작년에는 6개월간 드로잉 수업도 접고 새 길을 찾아 나섰다. 잠시 타투이스트가 되기도 했고 영상 편집을 배우고 큐레이팅 수업을 듣고 웹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여름까지 해보고 이 중에 하나를 다음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국 그림으로 돌아왔다. 취직을 해볼까도 생각했고, 팀을 꾸려서 해볼까도 싶었다. 고민을 종식시킨 건 그림이라는 작업의 본질이었다. 그림은 혼자 해야 하는 일이라는.


9년 동안의 프리랜서 인생에서 유학 기간과 작년의 방황기를 제외하고는 드로잉 수업을 쉰 적이 없다. 최근 『아방의 그림 수업 멤버 모집합니다』 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고. 아방에게 드로잉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에는 안정적인 수입 창구가 필요해서 시작했다.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그림 수업은 나의 에너지다. 프리랜서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기회가 그만큼 적다. 그림 수업을 통해 그걸 충족하고 있다. 내 생활에 루틴을 만들어주는 것도 그림 수업이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을 하러 집 밖에 나온다는 루틴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면 나머지 시간 구성이 심플해진다.



프리랜서는 ‘1인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프리랜서가 ‘고객님’의 입맛대로 그리고 쓰고 만든다. 아방의 시작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퇴사하고 한동안 그린 그림들을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올렸고, 내 그림을 좋아한 사람들이 일을 의뢰했다. 그래서 내가 그리고자 하는 방향대로 그릴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거부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명확했던 점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 과정이 차곡차곡 쌓여서 아방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지, 브랜딩을 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뭘 하려고 했으면 더 안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만들어서 직접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지 않나? 

잘하는 걸 하는 게 맞다. 


인스타그램 운영에 원칙이 있다면? 

특별히 없다. 그래서 마케팅 하는 친구들에게 혼이 많이 난다. 


그럼에도 3만 명에 가까운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내 경우 희한하게 피드를 자주 올리면 팔로어나 조회수가 떨어진다, 하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피드를 올리고, 그나마도 정해진 건 아니다. 지금 내 계정에 들어가보면 문보영 작가의 에세이집 『준최선의 롱런』 표지 작업부터,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 모집까지 정말 다양한 활동이 두서없이 올라와 있다. 정리할 필요가 있다. 



SNS를 플랫폼으로 꾸준히 전개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눈에 띈다. 지금 가장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첫손에 꼽을 건, 석고상 프로젝트. 처음에는 기성 석고상에 내 스타일대로 컬러링만 했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입히는 오마주 시리즈를 전개하고 있다. #abang_people을 달아 올리는 피드는 오랫동안 하고 있는 시리즈라 애착이 많이 간다. 네 컷 만화 형식의 그림일기(#abang_nights)는 언젠가 독립 출판 방식으로 출간해볼까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9년 차 프리랜서, 혹은 비주얼 아티스트 아방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지난 9년간은 지루함이 찾아올 때마다 변화를 시도했다. 그림도 머무는 곳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 소모가 많았던 것 같다. 이제 최적점을 찾아 안착할 때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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