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내가 너무 빨리 작업을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 네게 미리 말해두는 거야. 그런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를 인도하는 건 자연에 대한 진실한 느낌과 감정이 아닐까. 이런 감정들이 때로 너무 강렬해서 일한다는 느낌조차 없이 일을 한다면, 또 그림의 터치 하나하나가 다음 터치로 이어지고 이들 사이의 관계가 담화나 편지의 단어들 같다면, 이럴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단다. 지금까지 늘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 또 앞으로도 전혀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어려운 시기가 있으리라는 걸 말이야. 그러니까 쇠는 뜨겁게 달았을 때 두드려야 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막대기들을 쌓아두어야 하는 거야.
_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단 하나에 몰두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 강렬한 순간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참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 되죠. 오늘의 주제는 이러한 집중의 경험, 즉 ‘몰입’입니다. 보통 몰입을 강의 주제로 가져가면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합니다. 창의성 수업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법이나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 관한 내용만을 다룰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창의성을 남들과 다른 생각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한정 짓지 않았으면 합니다. 삶에서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닌 능력을 ‘온전히 펼쳐 보이는 것’(fully-functioning)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몰입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최적의 상태이자 성장의 과정입니다. 몰입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떤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펼치는 삶은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알려진) 인간의 행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삶에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궁극의 행복감은 내가 가진 고유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지닌 ‘성장의 욕구’를 채우는 삶 말이에요.
창의적인 인물들은 누구보다도 몰입의 시간들로 자신의 삶을 채웠던 사람들입니다.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경험의 빈도와 강도는 사람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창의적인 삶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몰입에 대해 수많은 연구들은 모두 “삶에서 몰입을 많이 경험할수록 더 많이 행복하고 더 창의적인 성취를 이룬다.”는 일관된 결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창의적인 삶에서 몰입은 꼭 알아두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몰입의 과정 없이는 창조의 결과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민하게 보는 것들에 답이 있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었던 경험을 떠올린다면 현재의 생활이 아닌 대학 입시 준비를 할 때의 경험, 또는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시간이고 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었던 일, 온 정신을 집중해 퍼즐을 풀었던 일 등을 말이죠.
언젠가 제 강의를 듣는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어떤 일에 몰입했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항상 한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고 그마저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곤 하니까요. 반면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는 거의 매일같이 하루에 꽤 오랜 시간, 심지어 열 시간 정도는 거뜬히 쉬지 않고 책을 읽었어요. 지금 와서 회상해봐도 당시에는 그 자체가 즐거웠고 정말 길고 잦은 몰입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아홉 살 시절의 책 읽기와 현재 스무 살의 대학 공부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적을 선택할 여지도 없이 학점, 취업과 같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보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내적 동기가 없는 상태인 것이죠.
내적 동기를 찾는 일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내어 그것에 몰입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세계에 미칠 정도로 빠져 있는 사람들을 소위 ‘덕후’라고 합니다. 모든 덕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창조적인 사람들은 덕후였을 겁니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을 발견하고 몰두해 전문성을 쌓는 그 과정이 창조 과정에 꼭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이들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게 뭔지 찾을 기회나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겠지요. 이것저것 해보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보며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경험을 누구나 늦지 않게 가졌으면 합니다.
자신의 흥미와 재능이 있는 영역을 찾는 하나의 팁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어느 부분에 유독 예민한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흔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에 신경 쓰이거나 눈에 자주 들어오는 부분, 즉 자발적으로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인지해보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색의 미묘한 변화나 공간이 주는 느낌에 예민하고, 어떤 이는 소리에 민감해 미세한 음의 차이를 지각하고, 어떤 이는 몸의 움직임에 민감합니다. 또 어떤 이는 단어나 문장이 주는 느낌에 예민하며, 다른 어떤 이는 동식물이 자라는 과정에 관심이 깊고 잎의 모양, 암수의 차이를 잘 분별합니다.
이렇듯 자신이 예민하게 눈여겨보게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자연스럽게 애정이 가고 관심 갖게 되는, 그래서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일들을 말이죠.
* 이화선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만난 ‘창의성’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이 공부에 빠지게 됐다. 자신만의 생각을 세상에 내보이고,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성장 욕구’라는 강력한 동기를 발견했다. 또한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창의적 태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주목했다. 이후 15년 넘게 예술, 문학,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창조적 삶을 산 인물들의 사고 과정을 연구해왔으며, 창의성에 관한 학문적 고찰과 실제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석, 박사 졸업을 하고 창의적설계연구소(CREDITS),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균관대학교 다산창의력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창의적 관점과 사고, 영재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와 100여 회가 넘는 대학 및 기업체 특강을 해오고 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10여 년간 창의성 교양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강의는 10년 연속 인기 강의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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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 이화선 저 | 비즈니스북스
15년 넘게 창의성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의 통찰과,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간 수천 명에게 강의해온 생각수업의 핵심을 담아낸 책이다.
이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