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가 매주 수요일 ‘작가의 추천사’를 연재합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책을 살펴보고, 추천사의 묘미를 전합니다.
삶의 실천으로서 글쓰기를 이어온 은유 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 『다가오는 말들』 등 그의 글에는 타인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추천사에도 ‘글쓰는 사람’ 특유의 세심한 태도가 드러난다. “부끄러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평범한 용기가 내면의 어두운 감정을 산뜻한 그늘로 바꾸어 당신의 숨구멍이 되어줄 것이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 ) ,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은 아마 한 번쯤 그의 승객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 자신의 삶만큼이나 다른 이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은유 작가의 추천책을 따라 읽으며, 용기와 희망을 발견해 보자.
1. 『네 번째 원고』
존 맥피 저 /유나영 역 | 글항아리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외롭고 무력한 장소는 ‘빈 문서’ 앞일 것이다. 그럴 때 난 글쓰기 책을 뒤적인다.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비법이 소용없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원래 글이란 거친 초고를 고치고 고치며 나아지는 것이지 단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꾀부리던 마음을 다잡고 첫 문장을 쓰게 된다. 연륜 있는 논픽션 작가가 쓴 책의 제목이 『네 번째 원고』 인 이유다. 이 책은 “없는 걸 지어내는 게 아니라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는 창의적 논픽션의 꼼꼼한 안내서다. 어떻게 모으고 무엇을 버리고 어디서 끝낼까? 초고의 불행에 주저앉지 않고 ‘네 번째 원고’를 고집스럽게 써내며, 우리는 작가가 되고 마침내 이야기의 핵에 가닿는다.
2.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저 | 창비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의 세 주인공 버들, 홍주, 송화는 천국을 꿈꾸었지만 지옥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마음 붙이고 살아가는지 보여 주는 삶의 장인들이다. 금기를 깨는 여성, 경계를 넘는 이주민, 새로운 가족으로 서로에게 곁이 되어 준 이들은 바로 우리 시대 스승이자 친구이다. 이미 와 있는 오래된 미래의 이야기이다.
3. 『파워북 : 누가, 왜, 어떻게 힘을 가졌을까?』
클레어 손더스 외 4명 저 / 조엘 아벨리노 외 2명 그림 / 노지양 역 | 천개의바람
우리가 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슈퍼 파워를 가진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일까요?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부당한 힘의 규칙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공부를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는 것보다 모범생의 기준이 ‘성적’ 뿐이어서 많은 학생을 소외시키는 구조의 문제에 눈을 돌리는 게 중요합니다. 가난하다면 노력해서 부자가 되는 게 힘을 키우는 방법일까요? 빌 게이츠처럼 되어서 엄청난 기부를 하겠다는 결심도 좋지만, 부가 고르게 분배되어 기부가 필요 없는 사회, 가난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크고 멋진 힘의 실행이죠. 그래야 내가 힘이 약해져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이 제일 약한 존재인 반려동물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라면 어린이도, 힘이 약한 어른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죠. 작은 힘도 연결되면 큰 힘이 됩니다. 그런 힘들로 역사는 변해 왔어요.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 것부터가 힘을 갖는 일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죠. 저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힘에 대해 아는 것이 진짜 힘이다!”
4.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네이딘 버크 해리스 저 / 정지인 역 | 심심
한 아이가 물었다. 판사가 되는 일과 청소부가 되는 일은 노력의 차이가 크다, 그래도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하느냐고. 나는 이 질문의 전제를 질문했다. 모든 아이가 동등한 환경에서 무탈하게 성장한다고 가정하는데,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정서적 지원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건강권과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적지 않다.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하기엔 불평등의 골이 깊은 사회인 것이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는 제목 그대로 이 불공정한 시대의 핵심 모순을 관통한다. 저자는 저소득층 유색인들의 동네에서 일하면서 압도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처한 아이들을 목도한다. 아동기의 불행과 손상된 건강 사이에 ‘생물학적 연관성’이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뚜렷한 직감을 따라가며 그것을 “호르몬과 세포 수준에서”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을 완수해낸다. 이 책은 심리학자가 아닌 소아과의사가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역과 인종,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사노라면 역경과 질병을 피할 수 없다. 그 엄연한 고통의 실체를 통계와 상식으로 넘기지 않고 “절망할 수 있는 전문가”가 세상의 불행을 줄여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청소부와 판사의 삶의 질이 서로 다른 것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졌든 최소한의 삶의 질이 확보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더 좋은 사회일 것이다.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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