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인 이지유 작가 (출처: 디비 판화 작업실)
논픽션 작가 이지유가 선보이는 ‘인생 과학자들’을 통해 내 인생의 중요한 인물들과 지키고 싶은 가치를 돌아보게 되는 신개념 교양 에세이. 이지유 작가는 『나의 과학자들』 을 통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걸어온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8개월 동안 실크 스크린 작업에 몰두하며 작가는 자신이 동경한 과학자들의 얼굴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혹시 내 선택이 잘못된 거면 어떡하지?’ 마음 졸이며 진로를 고민하는 10대는 물론,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보와 자극을 얻을 수 있다.
작가님이 직접 그린 그림을 책에 싣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나의 과학자들』 은 이미지가 가지는 무게감이 텍스트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이번 작업이 작가님의 저작 활동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년 전 과학 글을 쓰는 작가로 출발했습니다. 과학에 대한 지식을 글로 묘사하고 설명하고 표현한 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글을 좀 더 즐기자는 의미에서 그림을 그렸지요. 그러다 2019년 판화를 배우고, 그중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여성 과학자들의 얼굴을 작업하면서 글이 아닌 이미지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들은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름, 업적, 이런 것 이전에 여성 과학자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존재’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히니 함부로 작업할 수 없었어요. 그 인물에 대한 탐구, 특히 내면에 대한 탐구가 끝나지 않으면 가장 그 인물다운 표정을 지닌 얼굴을 만들어낼 수 없었어요.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과 같은 거였죠. 이렇게 작업을 하니 과학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들이 나와 어떤 점에서 만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내 인생과 만나지 않았다면 그 과학자는 나에겐 없는 존재인 거지요. 이런 의지가 책에 담긴 것 같아요.
본문 중에 “실크 스크린의 작업 과정은 과학자들이 가설을 증명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구절이 인상적인데요, 작가 입장에서 가장 가설(의도)에서 벗어난 결과물과 가장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꼽아 주신다면?
판화로 찍는 작업을 하기 전에 구도와 색과 형태를 잡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이렇게 나올 것이다 예상하면 대부분 그렇게 나와요. 그런데 정말 생각처럼 안 나온 인문을 ‘마리 퀴리’와 ‘제인 구달’이었어요. 큰 업적을 이룬 인물은 어쩔 수 없이 대중에겐 부풀려 포장된 상태로 알려지곤 하죠. 이들은 자료가 너무 많아서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나 봐요. 두 사람 다 서너 번씩 얼굴과 구도와 색을 바꾸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바버라 매클린톡이에요. 설명이 필요 없어요. 그냥 너무 마음에 들어요. 직접 한 번 보세요. (웃음)
바버라 매클린톡
이 책은 이미지가 중심인 만큼 디자인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 책 작업에 어느 정도 만족하시는지요?
공동 작업을 하다 보면 ‘내 머리 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은 파트너’를 만날 때가 있어요.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실장님이 바로 그런 분이에요. 이미지와 글의 배치, 크기, 색 조절까지 김 실장님의 센스가 없었다면 이 책은 빛을 볼 수 없었을 거예요. 표지는 또 어쩜 저렇게 멋진지! 정말 ‘멋진 과학자들’에게 딱 맞는 표지예요. 전체 진행을 훌륭하게 한 편집자까지, 우리는 정말 출판계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안타까운 점이라면 A3 사이즈 원화를 반 이상 축소해서 책을 만들다 보니 크기가 주는 에너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실크스크린에 쓰이는 잉크의 색을 오프셋 인쇄가 구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어요. 그래도 책은 또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원화 한 장 한 장이 모여 전체가 되는 것이니까요. ‘One for all, All for one’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볼 수 있는 내용과 구성인데, 1차 독자를 10대로 설정했습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이 책을 나누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교에 찾아가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진로에 관한 것이에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대학 졸업 후 취직이 확실한 과, 돈을 잘 벌 수 있는 전공을 택하길 원해요. 이런 경우 이리저리 휘둘리다 무기력한 어른이 되고 말죠. 어차피 자기가 설계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떤 일도 꿈꾸지 않는 거예요.
부모는 한 세대 전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겪은 사람이잖아요. 청소년은 현재를 사는 사람이고요. 그러니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청소년의 생각과 선택과 결정이 옳은 거예요. 청소년들은 자신의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본인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저는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이 옳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어린 시절 꿈꾸던 것 어느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얘들아, 마구 헤매도 괜찮아. 나도 그랬지만 지금 멀쩡하게 잘살고 있잖아!”
홍대 근처 디비 판화 작업실에서 실크 스크린 작업하시는 동안, 과학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2, 30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선생님의 작업을 통해 과학자들에 관심을 갖는 경험이 흥미로웠다고 하셨는데요.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생기는 긍정적 변화를 꼽아 주신다면?
과학 지식은 과학자라는 전문가들이 물질의 세계에 토대를 두고 하나하나 실험해서 쌓아온 지식이라 거의 모든 상상에 디테일을 제공해요. 다시 말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듣거나 보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는 거죠. 그래서 예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과학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에 기반을 둔 과학적 디테일이 빠지면 망상, 공상이 되기 쉬우니까요.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고생하던 분들이 과학 공부를 한 뒤 돌파구를 찾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 지식이 작업에 꼭 쓰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영감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과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의 과학자들』 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보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는데요, 성인 대상의 책들과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보는 책이 가지는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성인 대상 책이라면 성인의 필요, 욕구를 충족시키는 현재에 충실한 책이라도 괜찮아요. 하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보는 책이라면 책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과거, 현재, 미래까지 오갈 수 있어야 해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겐 미래를 보도록 해 주어야 해요. 꿈, 희망, 야망을 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요.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작가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는 거예요. 나는 이런 꿈이 있었어, 이런 꿈도 있었어, 이런 것을 해 보고 싶었어, 하지만 안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또 다른 걸 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만 힘이 되나요? 나는 어른에게 더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어른이라고 성에 차게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누구나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한 미래가 다가오길 바라잖아요. 나는 내 경험을 파일로 만들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다운로드시켜 주고 싶어요. 그러면 내 경험을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김점동
오른손이 부러져 왼손으로 그린 그림을 묶어서 출간한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 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이지유의 이지 사이언스』 4권을 동시에 출간했고, 얼마 되지 않아 『나의 과학자들』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왕성한 집필 활동이 가능한 배경과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저는 아이가 둘 있는데, 이제 성인이 되어서 같이 살지 않아요. 육아에서 해방된 것이죠. 몇 년 전부터는 집에서 밥을 하지 않아요. 청소와 빨래는 남편과 반반 나누어서 하고, 가사 도우미 서비스도 받습니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지 않으니 하루 8시간~10시간씩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나이 50이 넘어서 모든 기량을 작업에 쏟아부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일하는 것이 재미나고 신이 나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늘 이렇지 않나요?
지금 성인 대상 과학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어요. 과학 지식과 삶의 통찰을 묶은 책인데, 에칭과 드라이 포인트 기법의 삽화를 넣은 과학책은 세계적으로 처음일 거예요. 써 놓은 지 15년쯤 된 우주에 관한 글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도 시작했어요. 글에 딱 맞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미루어 왔는데, 거기에 딱 맞는 그림체를 찾았어요.
새 책을 시작할 때는 지도 없이 다른 나라 공항에 떨어졌을 때와 비슷해요. 그곳에 가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예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새 책 작업하는 마음이 딱 그래요. 미지의 세계에서 어떻게 길을 찾을지 헤매다 저 멀리 빛이 보일 때 광속으로 달려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새 책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이지유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천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공주대학교 대학원 과학영재교육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과학책을 읽으며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신나게 하고 있다. 좋은 책을 찾아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종종 한다.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시리즈, 『처음 읽는 우주의 역사』 『내 이름은 파리지옥』 『처음 읽는 지구의 역사』 『딱정벌레의 소원』 『내 이름은 태풍』 『숨 쉬는 것들의 역사』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 『빅뱅 쫌 아는 10대』 『우주를 누벼라』 등을 썼고,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 『최고의 뼈를 만져 봐』 『구멍: 숨겨진 세계를 발견하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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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학자들 이지유 저 | 키다리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걸어온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8개월 동안 실크 스크린 작업에 몰두하며 작가는 자신이 동경한 과학자들의 얼굴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