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소설가는 귓속말을 전하는 사람”
제게 좋은 소설은 내 안의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것을 일깨워주는 것,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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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프랑스의 문학상인 페미나상 외국문학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매번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거론되는 소설가 이승우의 문학 에세이가 출간됐다. 오직 소설 쓰기에 전념하는 이승우가 언제, 어떻게 영감을 받아 글을 쓰는지에 대한, 작가로서 지녀야 할 태도와 독자의 임무를 동시에 말하며 함께 해외 문학과 당대 고전으로 남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한다. 더불어 40여 년 동안 소설가로 살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고백과 삶의 가장 눈부시고 빛났던 순간들을 소개한다. 또한 어떻게 ‘작가’가 탄생하는지,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내밀하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그의 현미경 같은 문장들이 문학, 철학, 종교, 역사 등에 대해 특유의 통찰과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사랑, 고통, 슬픔에 대해 깊은 사유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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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에세이 쓰기의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가공입니다. 에세이는 가공이 용납되지 않는 장르지요. 1인칭으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1인칭 소설도 있지만 그건 일종의 소설 기법으로 사용하는 것이죠. 소설의 화자인 ‘나’를 작가와 직접 동일시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반면에 에세이는 근본적으로 1인칭으로만 쓸 수밖에 없죠. 소설은 플롯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자신을 숨길 수 있지만 에세이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때때로 에세이적인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소설적 가공이 아니라 내면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을 때가 그렇습니다.

 

직접 발화와 간접 발화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죠. 소설은 기본적으로 에세이를 포함합니다. 소설은 에세이적인 것을 차용해서 쓸 수 있죠. 그러나 에세이는 소설적인 것을 포함할 수 없습니다. 없는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은 소설에서는 환영받지만 에세이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기교나 플롯 같은 장치 뒤로 숨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의 귓속말』 인지 궁금합니다.

 

편집부와 합동해서 만든 제목입니다(웃음). 사실 제가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소설가의 혼잣말’이었습니다. 저는 제 글이 혼잣말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에게 하는 말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써오면서 들고나는 여러 가지 산만한 생각들을 중얼거린 것이 여기 실린 글들이거든요. 막상 ‘소설가의 귓속말’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니 ‘귓속말’이라는 단어에 그럴듯한 뜻이 들어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귓속말은 은밀하게 한 사람을 향해서 하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을 향해서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 뜻에서 귓속말이 가진 문학적 함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마치 작가가 나를 위해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독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전하는 사람이지만, 그 전에 귓속말로 그 무엇을 먼저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한 부분에 언급된 내용인데, 메신저는 메시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귓속말로. 작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귓속말로 듣는,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고요.

 

소설가로서 후배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충고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걸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해요. 그래도 굳이 말해야 한다면, 후배작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인데, 1년 후나 10년 후에 소설을 쓰는 나는 현재의 나에게는 후배 작가일 수 있겠죠, 그런 뜻에서라면, 1년이나 10년 후에 소설을 쓰고 있는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후배 작가인 나에게, 조금 더 먼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선배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이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봤으니까. 그것은 충고의 차원보다는 고민을 나누는 일종의 동료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나 위안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꾸준히 쓰라는 조언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것을 쓰라는 조언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을 향해 외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향해 속삭이라는 말도 같은 뜻일 것 같네요. 이 책의 제목이 ‘소설가의 혼잣말’이 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혼잣말은 자신에게 하는 귓속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럴 뜻에서라면 결국 제목이 바뀐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고 소설가로 살아온 지 햇수로 39년째입니다. 그동안 소설 쓰기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텐데요.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소설을 써오는 비결이 있나요?

 

글쎄요(웃음). 지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지쳤고, 때때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40년 가까이 계속 쓴 것은 사실인데, 아마 다른 걸 할 줄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주변머리가 있었다면 다른 길을 걸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제가 조금 둔해서 그런지 슬럼프 같은 걸 잘 못 느껴요. 그러니까 잘 안 되는데도 그냥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어쩔 수가 없게 되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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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보이지 않고 겉모양인 책의 형태만 두드러지는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고 염려의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책의 미래, 문학의 소외와 소멸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끔씩 제가 농담을 가장해서 진담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웃음) ‘나는 내가 20세기 작가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작가’라는 말속에는 문학에 대해 제가 갖는 기본적인 경외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21세기 작가들은 문학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뜻이냐?’라고 물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저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매체도 달라지고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감각도 달라지기 때문에 문학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일어날 문학의 ‘진화’와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변화와 진화에 맞는 글을 아마 창작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가 해오던 문학을 계속하게 되겠지요. 그런 뜻입니다.

 

우리는 농경사회가 지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시대가 농경 사회를 지나 산업사회, 후기사회로 변했다 해도 농사짓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중요한 다른 것이 생겼지만 전에 중요하던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어디에서든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것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운명과 같은 거지요.

 

그러면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소설, 좋은 소설가란 무엇인가요?

 

좋은 소설가란 좋은 소설을 쓴 사람이겠지요(웃음). 그러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제게 좋은 소설은 내 안의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창문을 열어주는 작품입니다. 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것을 일깨워주는 것,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내년이면 등단 40년이 됩니다. 앞으로 쓰게 될 소설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제가 쓰는 것이 아니고 제 후배(미래의 글을 쓰게 될 나) 작가가 쓰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알 수 없습니다(웃음). 그러나 예측은 해볼 수 있겠죠. 저는 잘 변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지금 쓰는 것처럼 계속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대적 상황이나 제 의식의 변화 같은 것들이 소설의 형식이나 주제에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대체로는 제가 지금 쓰는 것처럼 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과 다른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늘 있기는 해요. 그건 제 후배 작가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웃음).

 

현재 우리는 ‘코로나 19’를 겪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코로나 19’ 가 사람들의 시대정신이나 보편성 같은 것들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나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에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재난을 처음 겪은 세대에게는 큰 충격이 되겠지요. 이 경험은 모든 세대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것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그동안 인류가 추구하는 방향은 인간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한 발전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었죠. 지금은 그것이 강제적으로 해산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게는 이게 굉장히 흥미롭게 보이는데요. 비유해보자면 창세기에서 도시를 건설한 인간들이 ‘우리가 하나가 되자’고 외치며 바벨탑을 쌓았지만, 언어가 혼잡해지면서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번 사태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현대문명을 돌아보게 하고, 집단의 일원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를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당파성이나 집단주의는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나는 없고 우리 편만 있는 시대를 만들어왔고 지금도 그런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단독자로서의 개인을 불러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발전의 가속도에 눌려 잃어가던 개인의 주체성이나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탐구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꾸준하게 소설을 써온 것처럼, 작가님의 글을 꾸준하게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요.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나 전할 말이 있을까요?

 

제 소설과 글을 읽고 좋아하거나 표현해주는 독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자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기도 했고,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글을 써왔던 것 같습니다. 내 글이 누군가와 어떻게 만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쓴 글에 공감해 주는 독자들에 대해 일종의 동지애 같은 걸 느낍니다. 코드가 같은 사람들끼리 느끼는 은밀한 신호 교환 같은 게 독서를 통해 이루어지잖아요. 위안이 되지 않을 수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꾸준히 써왔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겁니다. 쓰며 읽으며 힘든 세상 함께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승우

 

1959년 전남 장흥군 관산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하였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1991년 『세상 밖으로』로 제15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1993년『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고, 2002년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제15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여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왔다. 2007년 『전기수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2010년 『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오영수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저 | 은행나무
더불어 40여 년 동안 소설가로 살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고백과 삶의 가장 눈부시고 빛났던 순간들을 소개한다. 또한 어떻게 ‘작가’가 탄생하는지,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내밀하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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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