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동거는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G. 황두영 저자)
그 분들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노력들을 하는데 그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거나 거기에서 피해가 없도록 제도가 보호해주거나 그런 것들이 전혀 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거죠.
글ㆍ사진 임나리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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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니면 결혼, 내키지 않는 두 선택지를 넘어서기 위해서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에 이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연인일 수도 있다. 또 이혼과 사별 후에 더 이상 친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는 사람도, 노인과 장애인처럼 특히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긴요하게 쓸 수 있는 제도다. (중략)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 이외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 필요한 사회복지혜택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고, 둘이 동거생활을 시작하고 해소할 때 필요한 공정한 절차를 규정하는 법이다.

 

황두영 작가의 책 『외롭지 않을 권리』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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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황두영 저자 편>


오늘 모신 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명칭과 내용을 국회에 제안한 분입니다. 진선미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투표시간 연장법안, 형제복지원 진상규명법안, 소라넷 폐지 등을 기획하셨어요.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고민하면서 책 『외롭지 않을 권리』 를 쓰셨습니다. 황두영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저는 이 책을 읽어 보고, 법안이라는 걸 만들려면 이렇게 대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을 처음 구상하고 점점 구체화시키는 기간이 지금까지 7년 정도가 지난 것인가요?


황두영 : 그렇죠. 통상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데, 조금 얼기설기 법안을 만들어 놓으면 그걸 다시 전문가들한테 공개해서 조금 더 고치기도 하고요. 계속 국회에서 수십 년씩 근무하시는 분들이 다른 법이랑 충돌하지 않는지도 검토해주시고 그런 과정들을 거쳐야 하는데요. 생활동반자법은 본 트랙에 못 들어가서 저 혼자 오래 가다듬는, 제 하드 드라이브에서만 계속 업데이트되는(웃음) 그런 시간들을 오래 겪었죠.


김하나 : 업데이트가 되다 되다 책까지 나왔군요.


황두영 : 그렇죠. 어느 날 이걸 나 혼자 갖고 있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도 계속 발전시키고 싶으니까 혼자 자료도 보고 이렇게 수정해 볼까 고민도 하다가 이게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그러던 찰나에 원래대로라면 국회에서 발의를 통해서 국민들께 공개했어야 되는데 먼저 국민들께 이런 법안을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조금 더 여론을 모은 다음에 그 힘으로 국회로 다시 들고 가자라는 생각으로 책으로 먼저 공개하게 된 거죠.

 

김하나 : 이 책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단어가 ‘상상력’이었어요. 정책을 만든다고 하면 법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뭔가 동떨어진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고 그 정책으로 인해서 어떤 가능성들을 끌어낼 수도 있다고 하는 점이 멋지게 느껴지더라고요.


황두영 : 약간 두루뭉술하게 욕망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번역하는 것들이 정치권에 있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하는 일들인데요. 우리가 정치 뉴스 보면 맨날 싸우는 얘기, 권력 투쟁하는 얘기, 그런 것만 많이 나오니까 실제로 정치권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는 것들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김하나 : ‘번역’이라고 하는 단어도 참 근사하게 들리네요. ‘제도는 금지를 위한 게 아니라 결국 자유를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었고요.


황두영 : 네.

 

김하나 : 책에서 자랑을 하셨는데 “내가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명칭과 내용을 국회에서 처음으로 제안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쓰셨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논의되거나 그런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드신 거라고 했어요. 처음에 이 법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황두영 : 제가 국회에 2012년도에 19대 국회 시작할 때 들어갔는데요. 그 전부터 프랑스 팍스(PACS) 법이나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은 많이 있었어요. 팍스 법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등 여러 가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있었고, 또 제가 같이 일하던 진선미 국회의원이 호주제 폐지나 여성 관련한 이슈를 많이 다루셨던 분이기 때문에 더더욱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김하나 : 그러면 진선미 의원과 같이 일하고 싶어서 지원해서 보좌관이 되신 건가요?


황두영 : 솔직히 말하면 거기만 이력서를 넣은 건 아닌데요(웃음)...


김하나 : 아, 이곳저곳 돌리셨는데 거기에서 됐다?


황두영 : 가장 일하고 싶었다(웃음).


김하나 : 아, 네. 정치적으로 말씀 잘 하시네요(웃음).


황두영 : (웃음) 다른 의원실에도 같이 합격한 데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제가 진선미 의원을 선택한 거죠. 아무튼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의제 중에 하나였는데, 진선미 국회의원이 지금은 혼인신고를 하셨는데, 초선 의원일 때만 해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남자친구와 오랫동안 동거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가족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셨고. 기자들도 왜 혼인신고를 안 했냐고 물어보잖아요. 특히 국회의원들은 재산 신고를 하니까 가족 관계가 드러나잖아요.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면 내가 혼인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 말을 안 하면 모르는데, 국회의원들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서 재산 신고하는 것 때문에 혼인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드러나니까 그런 질문들을 받고. 거기에서 우리가 수세적으로 변명을 하지 말고 공세적으로 이걸 정책화 해보자, 하고 저한테 미션을 주신 거죠. 그래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죠. 저도 원래 관심이 있었는데 의원님의 계기와도 맞아서.

 

김하나 : 보좌관으로 일하실 때 생활동반자법을 계속 다듬으셨는데, 생활동반자법 외에도 다른 법안들도 있었겠지만, 이 정책에 관해서 책까지 쓰신 데에는 어떤 애착 같은 게 더 크게 있었을 것 같아요.


황두영 : 제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법이라든가 소라넷 폐지를 기획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은 이슈가 많이 됐잖아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제가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제가 가진 스피커로 이슈화하는 데 성공하고 사회적으로도 이것의 필요성을 많이 공감 받았는데, 생활동반자법은 가장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연구한 법안인데도 워낙 반대가 셌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종류의 반대들에 많이 부딪히다 보니까.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 법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가져야 되는데 생활동반자법의 시옷만 이야기해도 반대를 하시니까... 그런데 안에서는 계속 정치적인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현실 정치적인 권력 관계의 문제도 있고 하다 보니까, 제가 오래 연구했는데 이걸 어디에 자랑스럽게 혹은 충분하게 설명할 기회를 못 가졌어요. 찬성이든 반대든 조금 더 충분히 설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김하나 작가님이 작년에 쓰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를 보면서, 그 책이 굉장히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러면서 생활동반자법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 분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대답이 있는데 지금 현재 위치에서는 그걸 충분히 못 드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사회적인 이런 질문이 있을 때 대답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까지 쓰게 된 거죠.

 

김하나 : 고맙게도 저희 책 이야기도 많이 써주셨더라고요. 저희 같은 경우는 두 친구가 살림을 합쳐서 같이 살고 있는 가구인데요. 저희가 작년에 공동 출자로 자동차를 샀는데 딜러 님이 ‘두 분이 같이 차를 몰면 보험료가 얼마입니다’라고 하면서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료가 순간적으로 올라가는 걸 눈앞에서 본 거예요. 되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활동반자법이 법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어떤 효력을 갖고 어떤 사람들이 이 법안으로 인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저는 막연하게 저희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범위가 훅훅 넓어졌어요. 특히나 노인과 장애인 이야기가 확 와 닿더라고요. 처음에 그 법안을 생각했을 때 ‘어떤 층들이 이 법안의 도움을 받겠구나’라고 상상했던 것에서 계속 조금 더 넓혀졌나요?


황두영 : 그렇죠. 저도 30대 중후반인데 제 또래나 아니면 제가 모시던 의원님처럼 건강한 나이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갖는 것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 사회에서 동거라는 것 자체가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특히 노인들 사이의 문제예요. 수명이 길어진다는 건 확률적으로 혼자 사는 기간도 길어진다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이혼도 늘어나고 사별도 있고 그러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서 몇 십 년쯤은, 내가 그렇게 특별한 삶을 살지 않더라도, 굉장히 보편적이고 사회규범적인 삶을 살아도 몇 십 년 정도는 결혼 밖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분들이 굉장히 가난하고 외롭게 살고 있는데. 그 분들이 어떻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런 거에 대해서 정책적인 관심이 전혀 없는 거죠. 그 분들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노력들을 하는데 그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거나 거기에서 피해가 없도록 제도가 보호해주거나 그런 것들이 전혀 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거죠.

 

김하나 :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동거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을 때 젊은 남녀 커플을 떠올렸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혼하는 커플들이 중노년 중에 제일 많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작가님도 조사를 하시면서 ‘생활동반자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하게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황두영 : 특히 우리가 동거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젊은 사람들의 문제 혹은 결혼 적령기 이전 이후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동거를 선택하는 것도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 결혼하는 것들이 점점 더 힘들고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단순히 선호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인구 집단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성인끼리 가족관계를 맺는 방법이 결혼이라는 제도밖에 없으니까 그 분들이 그냥 참고 외롭게 혼자 살거나 아니면 보호 받지 못하는 동거를 하면서 사회복지제도에서도 소외되고 가정 폭력이라든가 재산 분할에서 억울한 일을 겪어도 어디에 호소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김하나 : 그러니까 혼인이라는 제도로 품을 수 없는, 하지만 사회에 실재하고 있는 관계들을 다시 담아낼 수 있는 법안인 거군요.


황두영 : 그렇죠.

 


 

 

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저 | 시사IN북(시사인북)
많은 독자들이 생활동반자법 입법의 필요를 느끼고, 이에 반응한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울 대안인 ‘외롭지 않을 권리-생활동반자법’으로 사랑과 연대가 피어날 ‘집 안’을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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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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