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커버를 꼭 만져보세요. 촉감이 정말 좋다니까요.” 2018년 첫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두 번째 책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을 소개하며 말했다. 2018년 9월 <경향신문>에 쓴 칼럼 “‘추석은 무엇인가’ 되물어라”로 화제를 모아 ‘칼럼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영민 교수는 현재 <한국일보>에는 ‘한국이란 무엇인가’, <동아일보>에는 ‘김영민의 본다는 것을’을 <중앙선데이>에는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동아비즈니스리뷰>에 ‘ 『논어』 란 무엇인가’ 등을 연재하며 ‘무엇인가’를 타이틀로 한 다수의 칼럼을 연재 중이다.
사회평론에서 출간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은 김영민 교수의 논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첫 권으로 2017년부터 2년에 걸쳐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었다. 김영민 교수는 이번 책을 필두로 기존 논어 번역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논어 번역 비평’, 논어 각 구절의 의미를 자세히 탐구하는 ‘논어 해설’, ‘논어 번역 비평’과 ‘논어 해설’에 기초하여 대안적인 논어 번역을 제시하는 ‘논어 새 번역’을 쓸 예정이다.
2019년 12월 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김영민 교수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영민 교수는 “나에게 글쓰기는 목적지향적인 활동이 아니”라며, “ 『논어』 와 같은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 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출발이 궁금하다.
사실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 큰 기획의 일부다. 서점에 가면 굉장히 많은 고전들이 꽂혀 있다. 나는 서점에 꽂힌 많은 책들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다른 식으로 『논어』 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단순히 번역을 새로 하고 에세이를 쓴다고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았다. 논어 프로젝트는 총 4개 부분으로 이뤄진다. 이번에 나온 책이 논어 프로젝트를 안내하는 책이고, 다음으로 나올 책은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논어』 해석이나 번역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일일이 적시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상당히 논쟁적인 입장일 수 있고 기존의 해설자를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소 1년에 1권씩 내려고 한다.
논어 프로젝트는 총 10권으로 진행되는 것인가?
현재로서는 첫 권과 나머지 3권, 그리고 논어 해설을 10권 정도로 쓸 계획이다. 그 정도로 쓸 이야깃거리가 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충분하다. 『논어』 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 당시 존재했던 다양한 레퍼런스, 논쟁 등을 담으면 사실 10권으로도 모자를 수 있다. 논어 프로젝트 전체로 봤을 때는 총 몇 권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많은 고전이 있는데 왜 『논어』 를 선택했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을 읽어보면 내가 『논어』 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왜냐면 『논어』 를 읽는다고 해서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텍스트가 중요하게 되는 이유는 ‘그 텍스트 안에 무언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논어』 는 세상을 해석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개념, 어휘를 제공하는 텍스트다. 곧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 자원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이고 잘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애도 그렇지 않은가? 연애에 너무 빠지면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보다 상대에 대한 자기 환상을 사랑하게 된다. 이건 동아시아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전통문화에 애호가 큰 경우인데, 『논어』 는 지난 70~80년 동안 상당히 괄목할 만한 새로운 연구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수십년에 걸친 연구가 지금의 『논어』 관련 서적에 반영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젊은 독자들에게 『논어』 는 다가가기 힘든 텍스트가 아닐까?
지난 14년 동안 학생들과 『논어』 를 강독해왔다. 수업과 별도로 『논어』 를 가르쳐온 셈이다. 물론 강독을 책의 형태로 만들려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계획하는 것은 1년에 1번씩 『논어』 해설을 시작하는 일이다. 어떤 책도 전 세대를 아우르기는 어렵다. 다만 글을 쓸 때 꼭 의식하지 않아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학생들이다. 언제나 나의 제1의 독자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듯 쓰다 보면 책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은 2017년에서 2019년에 걸쳐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연재가 먼저였는지? 단행본을 먼저 기획하고 연재를 시작한 것인지?
논어 프로젝트라는 구상이 먼저 있었다. 논어 에세이부터 풀어보자고 생각했고 이후에 연재를 시작했다. 첫 책이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산발적으로 발표한 글을 모은 산문집이었다면, 이번 책은 구상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일관된 주제와 목표를 갖고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자신이 되어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표지에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어떤 의미인가?
텍스트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일단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 텍스트다. 우리가 텍스트를 해석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동시에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의미적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삶은 ‘해석의 대상’인 동시에 ‘엔지니어링의 대상’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후자의 입장이 팽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의 결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해석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삶과 세계가 텍스트로 연결될 수 있다.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와 표지 느낌이 비슷하다. 서체도 같아 보이고. 저자로서 특별히 요청한 내용이 있었는지?
내가 요구한 건 딱 하나였다. ‘논어 에세이’라고 해서 짚신이나 화로, 곰방대 이런 걸로 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머지는 출판사에서 너무 잘해주셔서 만족한다. 특히 표지 종이의 촉감이 너무 좋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꼭 한번 만져 보시면 좋겠다.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김영민 교수의 칼럼을 ‘진중하지 않은 글쓰기’라고 평하기도 하더라. 동의하는지?
각 장르마다 적합한 문체가 있다. 나 역시 에세이를 쓸 때와 논문을 쓸 때의 문체는 다르다.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쓰는 칼럼을 보면, 굉장히 다른 느낌의 글을 읽으실 수 있다. 어떤 문체를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는 차원이라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타인에게 명시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자신이 되어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즉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한 문제다.
유머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히 장치라고 생각하고 쓰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도 이 정도의 유머는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루한 시간을 갖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계정에 꾸준히 그림과 음악을 올리고 있다. 개인적인 취미 활동인지 또는 예술 관련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림과 음악을 올리는 일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를 쓰고 난 뒤의 애프터서비스와 같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 아침에는 그림을 하나 보고 자기 전에는 음악을 하나 들으면 잠깐이라도 고요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에서 그런 그림과 음악들을 찾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이 하는 일을 잘 안 한다. 학교 일 외에는 그림 보고 책 보고 만화책을 읽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작품들을 찾는다. 영화나 이미지를 다루는 글은 현재도 쓰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굉장히 높은 양질의 자극에 늘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적절한 신체 자극 없이는 근육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정신도 다르지 않다. 양질의 텍스트, 양질의 음악, 양질의 그림, 양질의 스피치 등을 들어야 우리의 정신이 성장할 수 있다.
‘~는 무엇인가?’라는 타이틀로 많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김영민 교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한 가지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이유도 궁금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목적이나 의미를 아는 경우는 드문데,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목적지향적인 활동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물으면, 목적과 수단, 관계를 통해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승진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유명인이 되기 위해서 등이 있을 텐데, 나 역시 글쓰기를 통해 부수적인 효과가 생기는 걸 부인하지 않지만, 이것을 내 글쓰기의 의미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예술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냥 살 수 없어서 하는 일”이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살 수만은 없어서 하는 일이다. 글쓰기를 통해 경제적인 이윤이 생기고 원하지 않는 사진이 찍힐 때도 있고, 성정에 맞지 않는 곳에 나오기도 하지만 목적지향적인 활동은 아니다. 이걸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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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김영민 저 | 사회평론
우아한 마이너 감성을 지닌 힙한 아재 캐릭터로 젊은 세대의 팬심을 사로잡은 그다. 이번에 존재의 정체성을 향해 던지는 돌직구는 ‘논어’를 향한다. 『논어』가 지금 여기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근심이 이 책에 스며 있는 이유이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