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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자전 에세이를 지금 쓴 이유”

『야구는 선동열』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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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 쓰고 보니까 모든 게 반성과 성찰인 것 같아요. (201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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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  을 출간한 선동열 전 감독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예전부터 책을 쓸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올해 초 지인에게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망설였다. 마침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어 지금 시점에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한 이야기를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한국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나고야의 태양’, ‘국보급 투수’. 늘 찬란한 수식어들의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그러나 불필요한 수사인 것도 사실이다. ‘선동열’ 세 글자면 충분하므로.  『야구는 선동열』 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선동열 하면 야구, 야구 하면 선동열’인 까닭이다. 영광뿐인 ‘48년 야구인생’이었을 것 같지만, 그는 전혀 다른 고백을 한다. “나는 국보가 아니다”라고.

 

돌이켜 보면, 프로야구 선수와 지도자로서 기록적인 성적을 거뒀지만 그만큼 실패와 좌절의 순간도 많았다. 대중은 알지 못하는 그 깊숙한 이야기들을  『야구는 선동열』  안에 털어놓았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경험한 일들,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기반성, 일본 진출 첫해에 겪은 실패와 좌절, 안기부의 개입으로 좌절된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 최동원 선수와의 대결, 현재 한국 야구에 대한 진단과 나아갈 방향, 국정감사장에 섰던 일에 대한 소회까지, 허심탄회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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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전 감독에 대한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부분도 있습니까?


선동열이라고 하면 순탄하게 야구만 해왔다고 알고 계신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큰 좌절과 실패를 맛봤어요. 2군도 아닌 3군의 교육리그까지 가서 경기를 했는데, 그때를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많은 팬들은 모르는 그런 부분들을 책에 썼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시길, 군부독재의 압력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이 어려워졌다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가고 싶었어요. 그 꿈이 굉장히 컸어요. 1982년에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요. 그때 제가 휴학계를 냈는데, 학교에서 휴학계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 군대를 가라고 했고요. 또 안기부에서 부모님한테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이 첫 번째로 무산됐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할 때와 감독으로서 지도자 역할을 할 때,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차이는 엄청나게 컸어요. 선수 때는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지도자는 한 팀에 80~100명 되는 선수들을 관리하면서 선수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했어요. 감독이라는 자리가 책임을 지는 자리인 것 같고, 굉장히 어려운 자리 같아요. 15년 정도 감독 생활을 해왔습니다만 감독이라는 자리가 참 어렵다는 느낌을 수없이 받았고요. 인내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첫 번째도 인내, 두 번째도 인내, 세 번째도 인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봉사하고 노력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정면으로 승부한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이번 책과 차이점이 있습니까?


1996년에 출간한 그 책은 자필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대행을 해서 썼던 책이었고요. 이번에는 제가 직접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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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국정감사장에 섰었는데, 그때 심정이 어땠는지 듣고 싶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상황입니까?

 

국감장에 나갔을 때는 굉장히 당황되기도 했고,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고 어이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많은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 소송의 경우에는, 제가 너무 억울하다 보니까 권익위를 상대로 해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답변이 없습니다.

 

『야구는 선동열』  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출판사의 제안을 따랐습니다. 수많은 미팅을 하면서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늘 후배들한테 했던 말 중에 하나가 ‘내 자신과 싸워서 이길 줄 알아야 남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책에 넣어볼까 생각도 했고요. 모든 팬들이 ‘선동열’ 하면 ‘야구’를 생각하니까, 반대로 『야구는 선동열』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지금 제목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책에서 ‘야구에서도 세 번의 찬스가 온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의 인생에서 세 번의 찬스는 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선수로서 활동한 것이 첫 번째 찬스였다고 생각하고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두 번째 찬스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앞으로의 삶인 것 같아요.

 

세 번째 올 기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야구 행정을 생각하고 계신지, 지도자로서 다시 도전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지금 제 나이에서 생각하면 2/3 정도 살지 않았나 싶어서, 그런 차원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앞으로의 1/3은 야구 발전과 야구 팬들을 위해서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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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반성과 성찰입니다


이번 책에서 처음으로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본인의 야구 인생에서 형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원래 형님이 먼저 야구를 하셨어요. 포지션은 포수였고 가끔 외야도 보셨어요. 어느 날 아버님께서 ‘너는 야구에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까 야구 그만두고 공부를 해라’라고 하셨는데요. 형이 야구를 하다 보니까 글러브하고 배트가 있었어요. 같이 캐치볼도 하고 공을 쳐보기도 했는데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형 따라서 야구를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백혈병을 앓으셔가지고... 그때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왕 내 대신에 야구를 했으면 최고가 돼야 된다.’ 유언이라고 해야 될까요. 지금 제가 최고가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형한테 부끄럽지 않게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해외로 연수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요?


내년에 뉴욕 양키스 연수를 가는데요. 미국 메이저리그에 가서 선진 야구를 보고 오려고 합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선진 야구의 좋은 시스템을 배워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국보가 아니다”라고 쓰셨습니다. 자기성찰을 전면에 내세운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일본에 진출하면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 기자 분들께서 국보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갔던 첫 해에 실패와 좌절을 하면서 저 자신한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선동열이라는 사람은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구나,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 자신한테 부끄러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해왔습니다. 돌아가신 호시노 감독님이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는 항상 등 뒤에 태극기를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편안하게 생각했으면 지금보다 더 좋았지 않았겠냐.’ 그 말이 참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또 제 스스로가 야구 팬들한테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국보가 아니다’라고 책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동원 선수와의 대결에 대해 자세히 적으셨어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동원이 형은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저 형처럼 돼야지’ 생각했어요. 불펜에서 동원이 형이 볼 던지는 걸 볼 때는 너무 감탄스러워서 입을 벌리고 있었어요. ‘제구력이나 변화구나 어떻게 저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까,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동원이 형을 보면서 따라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동원이 형과 맞대결을 할 때만 해도, 감히 동원이 형과 대결한다는 자체가 꿈만 같더라고요. 운이 좋게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기도 했지만, 제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것도 동원이 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형을 따라잡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뛰지 않았나 싶고요. 형님이 말씀해주신 것 중에 하나가 기본기에 대한 거였어요. 투수는 육상 선수가 돼야 한다, 던지는 것 이외에는 런닝을 해야 된다고 얘기해주셨어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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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후회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선수 시절 때 많은 노력을 하고 땀을 흘리면서 훈련했던 건 우승했을 때 보답을 받아요. 선수가 아닌 사람은 그 순간의 기분을 알 수가 없어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마무리 투수를 했기 때문에 한국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을 때 순간적인 쾌감을 느꼈는데, 그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도자로서 우승을 했을 때 기쁘지만, 내가 생각했던 야구대로 모든 게 잘 풀렸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후회스러운 순간도 당연히 많죠. 작년에 국감장에 섰을 때도 후회스럽더라고요. 제가 그 자리에 꼭 서야 됐는지,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이번 책을 쓰시면서 지난 인생을 돌아보셨을 텐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따님의 결혼을 앞두고 출간하셨는데 가족, 특히 따님은 책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 쓰고 보니까 모든 게 반성과 성찰인 것 같아요. 가족들한테도 고마운 점이 많고요. 딸한테도 한 번도 편지 같은 걸 써보지 못했는데, 책 속에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그걸 쓰면서도 부끄럽더라고요. 결혼식 때는 절대로 읽지 않으려고 생각합니다. 읽으면 눈물 날 것 같아서...(웃음).


 

 

야구는 선동열선동열 저 | 민음인
선동열만의 가치관과 삶의 궤적을 마치 직구로 승부하듯 강렬한 속도로 적어 내린 이 책은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한 편의 즐거움이, 그리고 치열하고 뜨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위안과 희망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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