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물었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회사 생활 십오년 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루바 공연 건 때문에 특진 취소되고, 팀 옮겨지고, 강남에서 판교로 짐 싸서 올 때도 눈물이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장류진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등단작부터 이미 엄청난 사랑을 받으신 작가님입니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판교리얼리즘’, ‘극사실주의 스타트업호러’ 이 말을 아신다면, 한 편의 소설이 머릿속에 떠오르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그 분이에요. 『일의 기쁨과 슬픔』 을 쓰신 장류진 소설가님입니다!
김하나 : 인사 한 말씀 해주시죠.
장류진 :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장류진이라고 합니다(웃음).
김하나 : ‘소설 쓰는 장류진입니다’라는 소개를 언제쯤부터 덜 쑥스럽게 하시게 됐나요?
장류진 : 사실 지금도 쑥스러운 상태이고요.
김하나 : 아,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하고 계신 거군요.
장류진 : 네(웃음).
김하나 : 전업 작가가 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장류진 : 그렇습니다(웃음). 정말 얼마 안 돼서, 약간 휴가를 낸 것 같은 기분이기는 합니다.
김하나 : 직장생활도 아주 잘 하셨을 것 같은데, 스스로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자평해 보신다면 어떨까요?
장류진 : 솔직히 말씀드리면 레퍼런스가 나쁘지 않았고요(웃음).
김하나 : 일하셨던 분야는 어느 쪽이었어요?
장류진 : 저는 IT 업계에서 일을 했었고, 서비스 기획을 했어요.
김하나 : 서비스 기획이면, 기술적인 부분의 상식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편이어야 했겠죠?
장류진 : 사실 입사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지만, 개발자들하고 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면이 있죠.
김하나 : 전혀 생경한 분야이기도 했을 텐데 회사에 들어가셔서 많이 공부를 하셨나요?
장류진 : 그때그때 부딪혀가면서 배우고, 나중에는 답답해서 코딩 강의도 듣고 그랬어요.
김하나 : 직장생활의 영향도 있을 테고, 판교 테크노밸리 특유의 속도감이나 사람들의 특성을 오랫동안 몸으로 느끼면서 쌓인 것들이 많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소설을 구상하기에는 괜찮은 환경이었다고 생각되시나요?
장류진 :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쓸 때는, 그때는 등단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일하는 공간에 대해서 한 번쯤은 남겨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썼는데요. 기존에는 없던 소재로 쓴 거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또 판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웃음).
김하나 : 그렇죠, 열화와 같은(웃음).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묘한 다리가 있죠. 다리는 어디에서 어딘가로 건너가야 하는데, 건너가지지 않는 다리인 거죠. 이 다리가 실제로 판교에 가면 있고, 저도 지나가면서 봤거든요.
장류진 : 아, 보셨어요? 황당하죠? (웃음)
김하나 : 정말 황당한데(웃음), 그것이 ‘일의 기쁨과 슬픔’의 더할 나위 없는 비유처럼 소설에도 등장하고 그 장면이 장이 전환될 때마다 있잖아요. 저는 볼 때마다 빵 터지는 거예요, 이 다리의 존재 자체가. 그것도 너무 재밌었고요. 제가 엔씨소프트 관련해서 일을 할 일이 있어서 판교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었어요. 그러면서 ‘여기 진짜 묘한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류진 : 정말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있죠?
김하나 : 네. 지금 우리의 산업계를 지탱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타운처럼 만들어졌는데 거기에서 배어나오는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 최초로 한국소설에 스며들어왔다는 거죠(웃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저도 처음에 폰으로 읽었어요.
장류진 : 아, 네. 계간지의 모바일 페이지에서.
김하나 : 네, 이게 창비 홈페이지에 업로드되는 순간, 서버가 다운됐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실시간으로 봤기 때문에 기억이 나는데요. 트위터에서 순식간에 리트윗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작가님은 그때 어떠셨어요?
장류진 : 저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에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을 하는데요(웃음). 개천절, 휴일이었어요. 그런데 소설이 처음 공개됐을 때는 전문 공개가 아니었어요. 회원만 볼 수 있고 앞부분만 공개가 되어 있었는데, 연휴가 지나고 나니까 전문 공개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무료 공개가 됐네’ 생각하면서 트위터에 걸어놨었어요. 그 후에 한동안 반응이 없다가, 그 전날 갑자기 친구가 네 소설을 페이스북에서 봤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리트윗이 되고, 제가 올린 글도 리트윗이 많이 되고, 또 다른 분들이 링크를 많이 올려주셔서, 그때 정말 어리둥절했죠. 휴대폰도 계속 울리고.
김하나 : 신드롬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현상이 있고 나서, 1년이 지나서 소설집이 나왔어요. 조금 빠르게 나온 건가요?
장류진 : 빠른 편이라고 다들 말씀을 해주시고, 등단 1년 만에 소설집이 나온 사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데 최근 들어서는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김하나 : 『일의 기쁨과 슬픔』 은 여러 편의 단편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고, 「다소 낮음」이라는 단편이 있잖아요. 그 작품에는 ‘장우’라고 하는 캐릭터와 여자친구인 ‘유미’가 나오죠. ‘장우’는 타이밍에 맞춰서 빨리 탑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잘 못하죠. 음악을 하는 친구인데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더니 반응이 확 일어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이 흐름에 승차해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그걸 잘 못하는 사람인 거죠. 작가님이 스스로를 생각하실 때는 ‘장우’를 10으로 놓고 ‘유미’를 1로 놨을 때 그 지수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장류진 : 저는 ‘유미’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고요. 완전히 ‘유미’랑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저도 「일의 기쁨과 슬픔」이 바이럴이 되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장우’처럼 바보같이 하지 않고 다 ‘하겠습니다’ 했기 때문에, ‘유미’에 가까운 것 같기는 해요. 제 안에서 ‘장우’와 ‘유미’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고, 대체적인 경향은 ‘유미’에 가까운 성향이기는 한데,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어서요. 제 안에서 뭔가 싸우거나 충돌하는 마음들이 그 두 캐릭터로 표현이 된 것 같아요.
김하나 : 첫 번째 단편이 「잘 살겠습니다」잖아요. 거기에 나오는 ‘나’와 ‘빛나 언니’가 ‘장우’, ‘유미’와도 조금 닮은 것 같아요.
장류진 : 아, 그러네요.
김하나 : ‘나’는 실리적으로 그리고 예의에서 어긋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센스도 있는 사람이죠. 그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이 ‘빛나 언니’인 거죠. ‘빛나 언니’는 한 마디로 ‘넌씨눈’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장류진 : 정확하네요(웃음).
김하나 : 저는 ‘빛나 언니’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캐릭터가 나왔지?’ 싶어서 탄복을 했는데요. ‘빛나 언니’ 캐릭터를 만든 과정에 대해서 조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 여럿을 만나면서 메모처럼 수집을 하셨나요?
장류진 : 사실 제가 잡생각은 많이 하는데 메모를 잘 안 해요. 보통 작가님들은 메모를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을 해두는 편이고요. ‘빛나 언니’ 캐릭터 같은 경우는 제가 사회생활 하면서 만났던 여성 인물들 중에 어떤 유형을 하나 만들어냈다고 봐야죠.
김하나 : 10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시면서 ‘나라면 저러지는 않을 텐데’라고 느끼는 부분 부분들이 조금씩 어떤 상을 만들어낸 걸 수도 있겠네요.
장류진 : 네, 사회생활 하는 공간에서 여성들끼리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정말 어느 순간에는 같은 여성이고 편을 들어주고 싶은데도 ‘아, 이해가 안 간다’ 싶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당연히 겉으로는 티를 안 내도 속으로 미워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속으로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미운 행동에 대해 용서하고, 또 용서 받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미워했던 것에 대해 용서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빛나 언니’ 같은 사람이었을 수 있기 때문에 용서받고, 그런 마음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항상 사람 안에 다채로운 면이 있고, 이쪽 입장 저쪽 입장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하면서 그 사이에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 ‘빛나 언니’는 진짜 이해가 안 가는 캐릭터죠. ‘나’가 청첩장을 줄 마음도 없는데, 우리가 그런 사이였나 싶은데도 따로 만나서 청첩장을 꼭 받아야겠다고 하고. ‘나’는 지금 결혼식 준비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점심도 따로 같이 먹자고 하고. 그래서 청첩장을 줬더니 결혼식 날에는 오지도 않고.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웃음). ‘빛나 언니’가 정말 정을 주기 쉽지 않은 캐릭터이잖아요. 밉고 답답하고. 그런데 「잘 살겠습니다」라는 소설의 놀라운 점은, 마지막 부분에 ‘빛나 언니’스러운 무엇으로 인해서 무장 해제시키는 지점이 있었어요.
장류진 : 소설의 겉 이야기는 청첩장을 주고받는 것 때문에 서로 신경전을 하고, 대립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어쨌든 일하는 여성으로서 둘은 언제든지 같은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걸 마지막에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립만 하면서 끝나지는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고요. 예전에는 저도 작가님들이 인터뷰에서 ‘나는 그냥 세계 안에 인물을 던져놨을 뿐인데 인물들이 알아서 걸어 나가더라’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약간 뻥 아니야?’ 이렇게 생각했어요(웃음). ‘정말 그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쓰면서 그게 뭔지 약간은 느낀 것 같아요. ‘빛나 언니’라는 캐릭터를 소설 속에 넣어놨고, 물론 대부분은 제가 처음부터 구상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어떤 행동을 한다든지 어떤 반응을 보인다든지 그런 건 정말 쓰다가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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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