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쥐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생쥐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대가는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여우는 앉아서 돈을 번다. 생쥐들은 문득 의문이 든다.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생쥐의 이야기지만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등록금과 비싼 집값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 생쥐의 이야기에서, 만화로 『공산당선언』 과 『자본론』 을 풀어낸 『생쥐 혁명』 은 시작한다.
과거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것은 많은 변명이 필요했다. 혹은 고전의 무게에 눌려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민지영 저자는 단지 “헛짓거리 없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읽는다고 말한다. 간명한 대답만큼이나, 만화 『생쥐 혁명』 또한 경쾌하되 진지하다. 고전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수업에서 시작된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물음표를 떠올리며 마르크스를 읽을 생쥐들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생쥐 혁명』 의 의의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하나의 선택지를 추가하는 것”이라는 민지영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2년의 작업 기간을 거쳐 책을 내셨어요. 작가님께 2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이전까지는 비교적 단기간에 끝나는 일들만 해오다가 처음으로 한 가지 일을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힘듦을 맛보았어요. 두꺼운 책을 꼼꼼히 계속하여 읽는 일도,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콘티를 짜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더라고요. 시험 준비나 과제는 잠시 집안일 미뤄두고 며칠 밤을 새면 되는데, 장기간의 원고 작업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하루에 정해진 시간 동안 계획한 분량을 끝내는 연습을 2년 동안 했습니다.
고전을 토대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복수 전공 프로그램에서 이 만화가 시작되었다고 하셨어요. 수많은 고전 중 『공산당선언』 에 끌린 이유가 있다면요?
역사철학 수업에서 읽었던 『공산당선언』 이 너무 재밌었거든요. 출간된 지 170년이 더 넘은 책이지만 묘사되는 광경들은 충분히 익숙하고 생생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생쥐 혁명』 이 어떤 면에서는 제가 구상한 게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마르크스, 엥겔스가 그들의 저작에서 묘사하거나 암시한 이미지들을 그저 형식만 만화로 바꾸어 다시 보여주는 느낌이랄까요.
어쩌면 어려운 내용일 수 있지만, 4컷으로 구성되어 호흡이 경쾌해요. 4컷만화의 형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칫 방대해질 수 있는 이론적인 내용들을 보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었고, 그래서 4컷만화라는 형식을 사용하여 개념들을 조금씩 나누어 다루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나눠 읽을 수 있어 편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호흡이 끊겨 되레 읽기 불편하다고 해요. 다음번에 만화를 그릴 때는 형식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겠어요.
프롤로그에서 저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르크스를 좋아하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생쥐 마을처럼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사람도 있고, ‘프티 부르주아’로 여유롭게 살고 싶은 유혹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이윤을 취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필요로 해요. 누군가의 인간적 삶은 자본을 불리기 위해 포기되어야만 하며, 또 누군가는 나 혹은 당신에게 도래할 수도 있었을 불의의 사고를 당해야만 하죠. 그러나 희생되어도 좋을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노동자의 고통과 죽음을 그저 어쩔 수 없는 일로,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마르크스’는 계속하여 요청되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개념을 친숙한 캐릭터로 설명하는 본문
『생쥐 혁명』 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부는 사회 문제를 보여주면서 ‘생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게 한다면, 2부에서는 문제를 분석할 도구를 쥐어주는 것 같아요.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산당선언』 은 그전까지 애매하게 이해되고 있던 공산주의의 방향을 바로 잡고, 노동자들 그리고 각종 노선의 사상가들과 운동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선언이었습니다. 『자본론』 은 자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가 왜 유지될 수 없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되기를 염원한 책이었고요. 『공산당선언』 을 다루는 1부와 『자본론』 을 다루는 2부 역시 이러한 집필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선언』 과 『자본론』 2권의 책을 만화로 풀어내면서, 끝까지 고심한 대목이 있나요?
그레이와 나나의 아이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했어요. 초반에 과제로 냈던 22쪽짜리 만화에서는 그 둘 사이 아이가 사고를 당한 나나와 함께 죽었어요. 하지만 최종 원고에서는 결국 아이가 탄생했죠. 레나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줬고요.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 책은 레나가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생쥐 혁명』 의 의의를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하나의 선택지가 추가된다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관점의 전환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보시나요?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의 세계는 더욱 풍요로울 거예요. 한정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건 편리할지 몰라도 그 내용은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요. 왜곡 없는, 완전히 투명한 렌즈를 가진 인간은 아마 존재할 수 없겠지만, 여러 관점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종합하면 내가 보는 세계와 실제의 세계 간 오차는 줄어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올바른 판단이 과연 무엇인지는 여전히 말하기 어렵더라도 적어도 왜곡된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고, 적절한 판단력은 결국 자유로운 행동의 토대가 된다고 믿습니다.
생쥐 아르노를 그리고 있는 저자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난 부품에 불과한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은 요즘 20대라면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이에요. 마르크스라면 한국사회의 20대 노동자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요?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요? “자조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십시오. 태어나길 응당 부품으로 살아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기계처럼 살다 보면 정말로 기계가 됩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는 분명 우리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지만, 오랜 시간 발휘되지 않는 자유는 녹슬어버립니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유 또한 적절히 발휘하기 위한 훈련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첫걸음으로서 나의 열악한 삶 그리고 우리의 비참한 삶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외치십시오.”
위험의 외주화, 대량 해고 등 반복되는 뉴스를 보면, 사회가 나아지지 않는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마르크스의 믿음에 동의하시나요?
과거 사람들이 오늘날 세상을 결코 상상할 수 없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들 또한 미래의 모습을 명확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래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방향으로, 떠올리더라도 ‘이게 과연 실제로 이루어질까?’ 싶은 모습으로 변화하겠죠. 다만 그 변화를 ‘진보’라고 할 수 있을지 확신은 못 하겠어요. 결국 변화의 방향이란 지금의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 우리들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일 텐데 주위를 둘러보면 왜곡되거나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요. (이는 저 또한 해당하는 이야기겠지요)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냉소에 빠지지 말고 꾸준히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추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생쥐들은 다시 돌아오나요?
네, 돌아와야죠! 여전히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생쥐들의 세계를 다음 번엔 새로운 철학 이론을 통해 바라보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다룰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일단은 밀의 『자유론』 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생각하고 있어요. 『자유론』 을 고려하는 이유는 『공산당선언』 과 『자본론』 처럼 지금도 유효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학교에 밀을 아주 좋아하는 교수님도 계시니 『자유론』 을 다루게 된다면 전문가의 피드백을 가까이서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는 예전에 한번 게임으로 만들어보려다 무산된 적이 있어요. 그때 구상했던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민지영
199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때 만화가를 꿈꿨고 글 쓰는 작가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졸업논문을 고민하는 대학생이다. 전공은 철학. 우연히 선택한 전공이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아 대학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공부’란 것을 시작했다. 2016년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프로그램 과제물로 『공산당선언』을 만화로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낮에는 공부, 밤에는 알바라는 주독야경의 삶을 살며 일찍이 접었던 꿈들이, 이번 기회로 우연치고는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것처럼 책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니 얼떨떨할 뿐이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여운 생쥐들처럼 스스로 삶에 충실하다고 세상이 저절로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공부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우연을 가장한 재미난 일들이 또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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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혁명민지영 글그림/장춘익 감수 | 곰출판
작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오늘 자본주의 사회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여성)으로서 시급 아르바이트생들의 비애와 현실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담아 만화에 녹여내었다.
김윤주
좋은 책, 좋은 사람과 만날 때 가장 즐겁습니다. diotima1016@yes24.com
kei982289
2019.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