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우흠 작가의 신작 『마리의 돼지의 낙타』 는 아주 익숙하지만 낯선, 또 무척 현실적이지만 미묘하게 환상적이기도 한 ‘무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동의 사람들은 무동과 함께 변해가고, 또 무동을 변화시키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데, 그들의 삶은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마치 ‘무동’이라는 사슬에 모조리 묶여 있는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욕망은 누군가의 상처로, 또 누군가의 선의는 누군가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세계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작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90년대에 두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신 뒤 꽤 시간이 지나 신작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소설은 2011년 겨울부터 1년 동안 계간 <문예중앙> 에 전반부가 연재된 바 있는데, 그로부터도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래 고민하고 여러 번 다듬는 과작의 작가이시리라 짐작되지만, 특히 이번 작품의 경우 어떤 과정을 통해 출간에 이르렀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장편소설을 쓰기 힘든 시대라는 말은 90년대부터 들어왔습니다. 영웅이나 악당이 아닌 평범한 이웃의 일상을 다루면서 어떻게 굵직한 서사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사소한 사건이 모여서 예측하지 못한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미스터리적 요소를 서사를 끌고 가는 중요한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순문학적 성격이 강하고 거기에 환상적 요소가 더해진 까닭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미스터리적 요소는 이 긴 소설의 서사를 끌고 나가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이것은 이야기의 큰 뼈대만 추려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화장실 낙서의 범인은 누구일까? 사채업자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같은 날 한 마을에서 동시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성폭행미수사건, 화재사건, 그 내막은 무엇일까? 십여 년 만에 다시 살아나 마을을 돌아다니는 민구와 노인, 낙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낯선 사람이 건네준 엄마의 김치볶음은 누가 보낸 선물일까? 이 모든 의문은 소설 전체의 서사를 끌고 가는 힘이고 이 모든 의문은 마지막 장에서 밝혀집니다.
<문예중앙>에 전반부 연재를 마치고 나서 2016년 말까지 4년 동안 요즘 장편소설 두 권 분량에 해당하는 1500매 정도를 더 써서 결말을 지었습니다. 중간에 슬럼프 시기도 있었지만 연재분까지 포함해 6년 동안 정말 부지런히 쓰고, 또 썼습니다. 전부 합쳐서 2500매. 퍼즐 하나만 어긋나면 전체가 다 무너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수많은 파지를 냈고, 머릿속으로 꼭 필요한 장면만 뽑아내면서 계속 줄여가며 썼는데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동안 한 권의 책으로 낼 수 있는 분량의 한계라 짐작되는 1800매까지 줄였습니다.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 조금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는데, 담당 편집자에게서 며칠 전 <문예중앙>이 사실상 폐간 결정이 내려졌고 자신도 그와 동시에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후로 출판사를 새로 정하는 문제를 비롯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출간에 이르기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습니다.
오래 고민하기는 하지만 여러 번 다듬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번 소설은 출간이 자꾸 미루어진 덕분에 여러 번 읽고 고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맙게 여겨야겠죠, 이 모든 우여곡절을.
‘무동’이라는 공간에 대해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소설에서 한 공간을 설정해 연대기적으로, 또 여러 인물을 연작으로 이어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은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듯도 합니다. 저 멀리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나 이청준의 『남도 사람』, 이문구의 『관촌수필』 ,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비롯해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에 이르기까지 그 계보는 꽤 뚜렷한 편입니다. 혹시 작가님께서 ‘무동’이라는 공간을 구상하실 때 염두에 두신 작품이 있다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선배 작가님들의 작품은 대부분 20대 시절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중에는 두 번쯤 읽은 것도 있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리는 것도 있습니다. 이 소설의 구상이나 집필 과정에서 특별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그 작품들은 알게 모르게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발과 철거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일부 소재에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평범한 이웃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원미동 사람들』 을 떠올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복잡다단한 ‘무동’이라는 공간에서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핵심적인 속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두에서 ‘무동이라는 사슬에 모조리 묶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게 바로 핵심인 듯합니다. 무동은 우리의 몸과 입과 마음이 지은 하나의 행위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다른 행위와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업의 고리에, 연기(緣起)의 사슬에, 유전과 인과법칙에 묶여 있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동은 이 오래된 고리를 끊고 새로운 업의 고리와 연기의 사슬을 작동시키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낙타와 피아노, 엄마의 김치볶음은 이 새로운 고리의 시작이 되거나 새로운 고리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대체로 ‘경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는 ‘마리’라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마리’와 ‘돼지’와 ‘낙타’, 또 ‘민구의 아코디언’ 같은 소재는 이 작품에서 환상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마리’를 비롯해 ‘민구네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의 핵심으로 설정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민구네 가족 이야기를 일부러 소설의 핵심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다 주인공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내면서 전체 서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의 의도를 이 소설에 환상성을 도입한 까닭은 무엇인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경수네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시공간적으로 아주 가까운 현실을 다루고 있기에 ‘낯설게 하기’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다분히 어둡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약간 숨통을 트여줄 필요가 있기도 했고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언젠가 『백 년의 고독』 을 읽다가 만약에 제가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을 쓰게 된다면 거기에 반드시 정교한 플롯을 결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정교한 플롯에 기반한 이번 작품에 거꾸로 환상성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고민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이번 작업에서는 그 이질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환상적 요소를 도입했는데 그 비중은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낯설게 하기’와 숨통도 중요하지만 이야기가 말이 되게 하기와 아귀 맞추기를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과장과 유머와 이국적인 분위기 같은 것을 제외한다면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은 이 소설에 아주 드물게 나옵니다. 나무가 정상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날 수도 있는 일이고, 더운 나라가 아니어도 나무에 해먹을 설치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이를 열둘이나 낳을 수도 있는 일이고, 콘돔을 빨아 널어 재활용을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심지어 광합성이나 낙타의 출생에 관한 비밀도 민구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경수’의 부모인 ‘동환’과 ‘선화’의 만남으로 시작되고, 또 마무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7장에 배치된 그들의 사연은 앞선 여러 사건들을 해명해 주기도 하는데요. 실제 이 작품을 구상하실 때도 ‘동환’과 ‘선화’의 이야기가 구상의 첫머리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은 서사의 특성상 아주 자세한 설계도를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7장에 나오는 동환과 선화의 이야기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1장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집필은 대체로 책에 실린 순서대로 진행했으므로 1장에 이미 쓴 부분이 7장의 디테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후반부의 내용에 맞추어 전반부를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 가운데 작가님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경수 엄마입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진한 모성애 같은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주변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거친 세상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어야겠다는 어미의 마음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경수 엄마라는 인물에게 투영된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내내 저는 경수 엄마로 살았습니다. 제 마음이기도 했던 경수 엄마의 간절한 마음은 죽고 나서도,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도 아들 경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생각하고 계신 차기작이 있거나 앞으로의 계획 등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진작에 깨달았으면서도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몇 년 전 라디오의 고전 소개 프로그램에 나온 한 노문학자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편 마지막 방송 마무리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살해당한 것은 아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두껍고 난해한 소설을 그렇게 툭 내뱉는 농담 같은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성장기에 오랫동안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한성재는 소설 말미에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사소한 낙서가 나비효과처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고.
*엄우흠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장편소설 『감색 운동화 한 켤레』를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장편소설 『푸른 광장에서 놀다』를 출간했다. 2011년 겨울부터 1년 동안 계간 『문예중앙』에 장편소설 『마리의 돼지의 낙타』 전반부를 연재했다(발표 당시 제목은 ‘올드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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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엄우흠 저 | 자음과모음
관념과 독백보다는 말과 캐릭터의 활력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흥미로운 관계와 사연을 유머러스하고 독특한 입담으로 풀어낸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