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오름 중턱의 유채꽃밭
제주의 368개의 오름 중 가장 젊은 오름은 어디일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천여 년 전에 고려 목종 10년(1007년)에 분화해서 생긴 군산오름이다. 전북 군산이 아니라, 제주 예례동에 위치한 엄연한 오름이다. 동서로 펼쳐진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군대 막사처럼 생겼다고 해서 '군산(군山)'이라 부른다. 다른 오름처럼 이름과 전설이 다양하다. 오름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마치 굴메(그림자의 제주말)처럼 보여서 '굴메오름'이라고 불렀으며, 갑자기 생긴 산이라 하여 '군뫼오름'으로도 부른다.
남서쪽으로는 산방산이 보인다
해발고도 334.5m, 비고 280m인 꽤 높은 오름이지만 입구부터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동차로 정상 바로 밑까지 편히 올라간다. 나 역시 자가용으로 오르다가 중간에 유채꽃이 드넓게 펼쳐진 곳 옆의 좁은 여유 공간에 주차하고 걷기 시작했다. 여느 오름처럼 다소 가파르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지저귀는 새와 풀벌레 소리에 힘이 난다. 남쪽 태평양의 반짝이는 윤슬이 멀리서 바라봐도 아름답다.
군산오름 정상 부근에서 보이는 한라산
군산오름 정상에 처음 오른 사람이면 누구나 탄성을 자아낸다. 사방으로 탁 트여서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절경이다. 송전탑처럼 쓸데없이 시야를 방해하는 존재가 없다. 동쪽 봉우리에 서서 천천히 돌면 제주도가 한눈에 보인다. 한라산을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서귀포 시내와 중문단지, 범섬이 보이고, 조금 더 몸을 돌리면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의 형체가 선명하다. 세 섬의 모양새가 마치 사이좋은 형제 같다. 서쪽으로는 산방산과 바굼지오름(단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오름의 석양은 언제나 아름답다
많은 오름을 가봤지만, 군산오름처럼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오름은 흔치 않았다. 새벽이면 서귀포 방면으로 해돋이, 저녁 무렵에는 바굼지오름 부근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변수이다. 지금까지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서귀포의 따스한 날씨만 믿고 정상에 올랐다가는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한낮에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방어할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기지 않으면 분명 후회한다.
여행객보다는 제주도민이 더 많이 보인다. 아직 대중매체에 소개가 안 된 덕분에 최근 출입이 통제된 궷물오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정상 부근에는 벤치가 여러 개 있는데 대부분 빈 자리다. 도시락을 미리 준비해온 사람도 여럿 보인다. 쓰레기통은 없으니 챙겨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곳곳에 보이는 쓰레기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수풀 사이로 유난히 귤 껍데기가 많이 보인다. 귤 껍데기는 다른 과일보다 썩는 데 훨씬 오래 걸린다. 제주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지만, 그만큼 쓰레기로도 골치를 썩인다.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진지동굴
군산오름에는 십여 개의 진지동굴이 있다. 직접 보면 규모가 꽤 크다. 제8 진지동굴의 길이는 180여미터에 달한다. 폭이 1.3~1.7m, 높이가 1.2~1.7m라서 동굴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비좁다. 진지동굴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제주도에 들어온 일본군에 의해 우리나라 민간인을 강제동원하여 만들어졌다. 일본은 정예병력 7400여명을 제주도에 주둔시키면서 해안기지와 비행장, 작전 수행을 위한 도로, 각종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이때 진지동굴도 구축했다. 연합국 폭격에 대비하여 일본군은 이 진지동굴에 군사 물자와 보급품 등을 숨기고 대피 시설로도 사용했다. 현재는 교육용으로 보존하고 있다.
유채꽃이 만발한 군산오름
예전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정상 부근에는 무덤이 없다. 하지만 바로 밑 주차장 부근만 해도 무덤이 곳곳에 있다. 바굼지 오름 뒤편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마침 정상 부근에 젊은 청춘 남녀들이 우쿠렐레를 연주한다. 한참을 보다가 더 늦어지면 길이 위험할 것 같아 서둘러 내려왔다. 서쪽 바굼지 오름 봉우리에 걸친 석양은 군산 오름을 붉게 물들이고 중턱에 가득 피어난 유채꽃밭은 그 노란 빛이 유난히 더 짙어진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저 | 21세기북스
"앎이 늘어갈수록 내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도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이라면,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한다. 새롭고 위대한 것들은 다 시대의 병을 고치려고 덤빈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진화한다. 이것은 또 나의 진화이기도 하다. 내가 시장 좌판에 진열된 생선이 아니라 요동치는 물길을 헤치는 물고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표현된다. 나는 눈뜨고 이렇게 펄떡거릴 뿐이다." - 본문 중에서
평생을 오름에 몸을 바친 김종철은 <오름나그네>에서 군산오름은 남록의 대평리 쪽에서 보는 것이 제 모습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 먼저 남쪽에서 군산오름을 조망하고 자동차 또는 걸어서 천천히 올라가보자.
◇ 접근성 ★★★
◇ 난이도 ★★★
◇ 정상 전망 ★★★★★
자동차로 가려면 '뉴제주펜션'을 검색해서 1132 일주서로를 달리다가 대평 용왕난드르 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작은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뉴제주펜션을 지나 5분 정도 더 오르면 주차장이 연이어 등장한다. 길이 좁아서 맞은 편에서 오는 차를 잘 살펴야 한다. 주차장은 네 곳에 있으므로, 일단 정상 부근까지 가서 여유 공간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없을 경우에는 그 밑의 주차장으로 이동하면 된다. 걸어서 가려면 상예2동 정류장 부근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된다. 도보로 약 1km이며 50여 가량 소요된다.
◇ 주소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대평리)산3-1번지
짜이다방
제주 안에 인도와 네팔이 숨쉬는 공간이다. 느릿느릿한 주인장의 말과 행동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짜이와 라씨의 맛이 기가 막히다.
◇ 주소 :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남로 239
◇ 오전 11시 오픈, 보통 화요일 휴무
안덕계곡
기암절벽과 암반 바닥에서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멋스런 운치를 자아내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안덕계곡은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낀지 7일만에 큰 신들이 일어서고 시냇물이 암벽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치안치덕(治安治德)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난대 수림에서 뿜어 나오는 수액이 상큼하다.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추사 김정희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 주소 :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1946
◇ 전화 : 064-760-3942
최경진
4년차 제주 이주민이다. 산과 오름을 좋아하여 거의 매일 제주 곳곳을 누빈다. 오름은 100여회 이상, 한라산은 70여회, 네팔 히말라야는 10여회 트레킹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으며(www.nepaljeju.com), 함덕 부근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