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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과 라라밸

균형있게 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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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다른 삶도 필요하다. 부모로서의 삶과 병행할 수 있는 균형을 유지하고 싶다. (2019. 04. 26)

출처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자리 잡기가 쉽지 않네…”

 

집 앞 대학가에 24시간 카페가 있다. 새벽 4시, 새벽 3시, 새벽 5시, 새벽 5시… 이번 주 방문 시간이다. 이 시간에도 자리가 없었다. 중간고사를 앞둔 학생들이 밤을 새며 진을 치고 있다. 서너 달 전부터 새벽 아지트로 삼은 곳인데 이러면 곤란하다. 기껏 일찍 일어나 만든 시간을 새로운 곳을 찾느라 길바닥에 버릴 순 없다. 이 새벽에 갈 수 있는 다른 곳도 사실 없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시간대라 회사 앞으로 갈 수도 없다. 다행히 어정쩡한 곳에 선 채로 책을 읽으며 20-30분 기다리니 빈 자리가 나긴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

 

나는 새벽이 아니면 시간을 만들 수 없고, 시간을 만들었을 땐 계획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12시 가까이에야 잠드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보통은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쓰고 가끔은 회사에서 가져온 일을 하기도 한다. 이번 주엔 회사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일을 해야 했다. 행사가 코 앞이라 쫓기며 점검해야 하는 것들이 꽤 있어 마음이 조급했다. 그런데 자리가 나기 않으니… 물론 자리가 절박하기론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더 절박할 것이다. 애꿎은 학생들을 원망할 일은 아니다.

 

내가 계획한 일을 내가 계획한 시간대에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곳에 터를 잡아야 한다. 시험 기간이라면 아마도 두 주 남짓이겠지만, 두 주만 지나면 다시 온통 텅 빈 나만의 아지트가 되겠지만, 중간-기말-중간-기말 1년 52주 중 8주나 갈 수 없다면 좀 곤란하다. 주변에 24시간 하는 곳이 더 있을까.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학교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을 찾아보긴 해야겠다.

 

이 와중에 회사 앞 단골 카페도 문을 닫는다고 한다. 4월 30일까지만 영업을 한다는 안내가 문에 붙었다. 근처 모든 카페가 아침 7시 정도에 여는데 비해 이 카페만은 6시면 문을 열어서 좋았다. 지하철 첫 차를 타는 날이면 회사 앞에 6시 반 전에 도착해서 이 카페에서 책을 읽고 출근하곤 했다. 사장님은 남들보다 일찍 나와 이렇게 열심히 일하셨는데도 운영이 쉽지 않으셨나보다. 낮에는 손님들이 바글바글하긴 했는데. 여의도에서 회사생활을 10년 넘게 하다보니 여의도의 장사는 점심 시간의 바글거리는 직장인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안다. 퇴근 이후와 주말의 텅 빈 거리. 임대료는 비싼데 영업일은 짧은 게 여의도의 장사인 것 같다. 큰 도움 될 것은 없겠지만 그간 모은 쿠폰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열 개의 도장을 다 찍은 쿠폰 8개를 버렸다.

 

그나저나 이 자리엔 프랜차이즈 카페가 새로 들어온다는데 거긴 몇 시부터 문을 열려나. 아마도 7시겠지. 집 앞 24시간 카페도, 회사 앞 카페도 이러면 내 루틴이 흔들린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새벽의 루틴, 새벽의 공간에 대해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나의 ‘라라밸’을 위한 것이다.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이야 널리 회자되는 말이지만, ‘라라밸’은 그냥 나 혼자 생각하는 말이다. ‘라이프 앤드 라이프 밸런스’를 줄였다. 일과 삶의 균형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회사 밖의 삶을 ‘라이프’라고 그저 통칭할 수는 없다. 나의 경우 ‘부모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은 분명 구분이 된다. 퇴근하고 육아(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마치고 나면 잘 시간인데, 이 시간을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이게 내 라이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

 

내겐 다른 삶도 필요하다. 부모로서의 삶과 병행할 수 있는 균형을 유지하고 싶다. 라이프와 라이프 간의 균형. 이게 강조되지 않는 워라밸은 결국 일하고 나선 또 집에 가서 일하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다. 집에서의 일이라는 것을 ‘싫은데 억지로 하는 무엇’으로 여기는 것과는 거리를 두고 싶지만, 특히 육아는 노동이면서 즐거운 놀이이기도 한 것이지만, 그 일로 삶을 빼곡하게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 만들어 온 내 자아는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고스란히 내게 남아있다. 그에게도 시간을 주어야 한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얼마나 가질 수 있느냐, 나는 워라밸만 말하지 말고 이 질문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생긴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몇 쪽의 책을 읽고, 새벽의 공기를 마실 때의 만족감이 높기 때문이다. 해야할 일을 잊고 다른 무언가에 오롯하게 몰입하는 시간이 좋다.  모두 저마다의 - 웃음이나 유머의 의미로 한정될 수 없는 - 작은 재미들이 인생을 지탱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내겐 그게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이나 또 다른 무엇일 수 있고, 주말이나 휴가에 떠나는 여행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에 몰아서 무얼 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작지만 꾸준하게 작은 만족감을 쌓길 원하는 유형이다.

 

내겐 그래서 새벽이 중요하다. 그래봤자 매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로를 관리해야 한다. 새벽에 나오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늘 자고 싶다. 쉬고 싶다.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스르르 잠들고 싶다. 한편으로는 자고 싶지 않다. 잠이 부족해도 피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밤에 재우려 하면 “자고 싶지 않아, 자고 싶지 않아” 말한다. 사실 내 마음도 그렇다. 자고 싶지 않아. 길고 두꺼운 책을 한 번에 읽어내고 싶어. 조각조각 끊어가며 읽고 싶지 않아. 자고 싶지 않아. 되뇌고 되뇐다. 수면부족을 겪지 않고도 라라밸을 이룰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래서 잠을 줄이고, 10분 단위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확보하려 애를 쓴다. 일도, 가족도, 나도 모두 소중하다. 한 사람의 삶에, 하루 24시간 속에 이 셋을 균형있게 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 가족을 아끼는 사람, 스스로를 잘 보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각각을 조금씩 절제하면서 이 셋을 균형있게 잘 해나가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워라밸을 이루고 라라밸을 이루는 일.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새벽길에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며, 홀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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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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