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작가는 2014년부터 독립출판으로 자신의 책을 꾸준히 펴낸 작가이지만 그 이전에 “더 많은 곳을 보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기를 주저 않는 정체성 확고한 여행자였다. 세상을 만나기 위해 부러 바깥을 여행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있는 곳에 공간을 만들고 여행자를 불러 모았다. 그러자 세계의 여행자들이 한량 작가의 ‘자기만의 방’에 방문했다. 『원서동, 자기만의 방』 은 ‘에버비앤비 슈퍼호스트’ 한량이 여행자의 집을 꾸리게 된 순간과 놀라운 만남의 순간들을 담은 다정한 기록이다.
자신의 세 번째 책을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하며 “설레고, 기뻤다”고 말한 한량 작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기쁨에 대해 “주고받는 마음”을 이야기했다. 엄연히 돈이 오고 간 계약 관계임에도 시간을 내 마음을 표시하는 게스트들과 그들에게 더 큰 환대를 보여주고 싶은 호스트의 마음은 무엇일까.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하는 한량 작가의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힌트는 꾹 눌러쓴 방문 기록, 늦은 밤의 수다, 아기자기하지만 존재감 분명한 작은 선물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원서동에서 운영하던 ‘자기만의 방’은 이제 삼청동으로 옮겨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한량 작가는 자신의 집 2층 방을 게스트에게 내어주고 “게스트와 더 가깝게,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여행자들과의 만남은 당분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축대 위에 선 등대 같은
작가님 블로그를 보니 이번 책 출간하고 많이 기쁘셨던 것 같더라고요. 원래 독립출판으로 냈던 책인데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을 하신 거잖아요. 느낌이 많이 달랐나요?
독립출판 하시는 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슴 속에 출판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책을 낸다는 것은 내가 동경하던 분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는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설레고, 기뻤어요. 무언가를 계속 써오긴 했고요. 그것을 종이 위에 올려놓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는데요.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의 통로를 알게 되었던 거예요. 저의 시작은 거기겠죠?
얼마 전에는 북페어에 참가했는데요. 어느 새 테이블 위에 올릴 책이 4권이더라고요. 한 권 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을 맞이하던 생각도 많이 났죠.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느리지만 계속 이걸 할 거야’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다음에 또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저는 계속 만들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창작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작가님이 공들여 선택해온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원래 직장 생활도 하셨었잖아요.
어떤 면에서 에이비앤비 호스트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데요. 동시에 제 시간 활용이 더 유연해지는 측면이 있죠. 손님이 없거나 외출하신 시간에 짬을 내서 글을 쓰는 생활이 저는 좋아요. 그런데 이것을 내가 선택해온 것이라고 말하는 건 꿈보다 해몽 같아요.(웃음) 물론 계속 그렇게 살고 싶긴 하죠.
제목 『원서동, 자기만의 방』 은 독립출판 하셨던 책과 동일하죠? 이 제목을 유지하고 싶으셨다고요. 이유가 궁금해요.
일단 원서동이 저의 시작점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오마주처럼 그 이름을 꼭 쓰고 싶었어요. ‘원서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선 느낌도 좋고요. ‘자기만의 방’은 에어비앤비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정체성이라 다른 제목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출판사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요. 제가 이 제목을 그대로 쓰고 싶다고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어련히 출판사에서 알아서 좋은 제목 뽑아줄 텐데 왜 그랬냐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이 제목이 그냥 좋았어요.
한편 표지 이미지는 받자마자 마음에 꼭 들었다고요.
디자이너 분께서 작업하신 시안을 전달 받았는데 너무 놀랐어요. 저희 공간에 와보지도 않으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구현하셨지, 하고요. 글과 사진을 보고 이 시안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축대 위에 선 등대 같았다”라고 쓴 부분을 읽고 만드신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게다가 앞표지에 있는 궁궐의 모양도 그렇지만 뒤표지에 묘사해주신 건물들도 정말 좋았어요. 건물 하나, 하나가 어떤 건물인지 다 알 것 같잖아요. 이렇게 섬세하게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래서 바로 다른 말 전혀 없이 무조건 좋다고 했어요.(웃음)
‘자기만의 방’
무엇보다 “자잘한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52쪽)이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님의 중요한 생각인 것 같았어요.
스무 살 때 자취를 시작해서 그때부터 계속 혼자 살아왔는데요. 그 생활이 만족스러웠어요. 부유하거나 호화스러운 생활도 아니고 그냥 자취방에서 적은 살림을 놓고 자취를 하는 건데 그 공간이 정말 좋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계속 그런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느꼈죠. 제가 집의 이름을 ‘자기만의 방’이라고 지은 이유도 그런 공간과 시간을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고요. 그런 사람이 나뿐만 아닐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게다가 여행을 가보면 호텔 같은 숙소도 비싼 곳이 아니면 공간이 다 트여 있잖아요. 그런 곳이 아니라 일부러 문을 닫고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시간이 고이면 그 안에서 뭔가가 피어날 거라 생각했죠. 저뿐 아니라 이 공간에 머무는 분들에게 그런 시간을 부여해드리고 싶었어요.
이 공간으로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간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여행을 다니는 이유에 대해 ‘세상이 나에게 와주지 않으니 내가 그곳을 만나러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그게 화두라면 화두랄까요. 더 많은 곳을 보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힘들게 돈 버는데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써도 된다는 마음으로 몇 달 뒤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어두고, 그 힘으로 살아가곤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이런 공간을 만드니까 반대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또 다른 여행도 되더라고요. 사람들과 빠르게 친밀해지는 방법이 “나도 그 나라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연결이 돼요. 그게 참 좋죠.
이곳에서도 여행지에서의 감각을 갖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분들도 부담이 없을 수 있어요. 우리는 잠깐 만난 호스트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모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마음의 장벽을 낮추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게 참 신기해요. 제가 아는 정보라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며칠을 묶는지 정도예요. 에어비앤비가 인종이나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계속 캠페인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냥 서로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상태로 만나는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자신의 직업적 어려움 같은 걸 털어놔요. 집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렇죠. 잠깐 차 한 잔 하기로 하고 마주 앉아서 2-3시간씩 수다를 떨기도 하는 거예요. 재미있죠?
말씀을 들으니까 “흔한 일상 속에 비일상의 내가 놓여 있었다”(51쪽)는 말이 실감이 돼요.
맞아요, 서울에 사시는 분들조차 궁궐이 있고, 북촌이 있어서 이곳에 놀러 오시긴 하지만 막상 여기서 자보는 경험은 많이 안 하시잖아요. 그런 경험에 대해 신기하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자신에게 일상적인 도시임에도 여행자를 위한 집에서 하루를 자고 간다는 게 다르다고요. 북촌의 아침을 볼 수 있고, 그런 거죠.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스페인에서의 여름으로까지 가게 되는데요. 이런 공간을 내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한 달 여행을 가자고 결심을 했어요. 스페인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이스탄불을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기착지가 바르셀로나였는데요. 처음에 잡은 숙소가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선택한 10인실 혼숙 도미토리였어요. 10인실이니까 24시간 소음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계속 침대를 오르고, 내리죠. 남자친구가 어느 날 남은 그곳의 일정을 취소하고 가보자면서 에어비앤비를 보여줬어요. 저는 그때 에어비앤비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그곳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묵는 거라고 해서 사실 무섭기도 했는데요. 갔는데 굉장히 신기했어요. 우리가 알던 호스텔, 호텔과 다른 느낌이었어요. 진짜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열쇠를 하나 받아들고 그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지내는 거잖아요. 그때 경험이 좋아서 이후 일정은 모두 에어비앤비로 다녔죠.
일상을 엿보는 느낌이 있었겠죠?
맞아요. 그때 호스트는 프리랜서 요리사였는데요. 자신의 작은 부엌에서 거침없이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저희도 사용해도 된다면서 낡았지만 정갈한, 손때 묻은 주방 기구들을 보여줬고요. 저희도 돈이 없었으니까 그곳에서 많이 해먹었거든요. 호스트가 알려주는 동네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다 먹고, 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게다가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신기하잖아요. 그때 이런 방식의 여행에 매력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어느 도시, 어느 나라를 떠올리면 항상 집들과 호스트들이 떠올라요. 호스트가 직접 맞이해주고, 설명해주고, 시간을 보낸 곳들은 여행 명소, 가볼 만한 곳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함께 떠오르게 해줘서 좋아요.
주고받는 마음이 좋아서
호스트로 지내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제가 엄청 무던하기만 하고, ‘이것도 저것도 다 돼, 무조건 좋아’ 이런 사람은 아닌데요. 저는 제가 여행 다녔던 때를 떠올리면 오시는 분들의 실수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매너를 몰라서 실수를 한 적이 나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처음이라 그랬을 거라는 식의 호스트의 멘탈이(웃음) 점점 되어가는 것 같아요. 가령 침구가 더러워질 수 있잖아요. 저도 여자니까 이해하죠. 민망해서 나한테 말 못했을 수 있어,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그런 적이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생각을 해요.
여행자였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더 있겠네요.
예를 들자면 제게는 이 도시가 익숙하고, 이 길과 교통상황이 너무나 익숙하죠. 게스트에게는 서울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서 여기 집까지 오는 길이 낯설고 무서울 거잖아요. 그러면 제가 시간을 들여 게스트를 데리러 간다고 해도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게스트와 자연스럽게 대화도 되니까요. 그런 시간들이 좋아요, 저는.
얘기를 들을수록 공간보다는 관계나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들리거든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규모가 더 크고, 굳은 일을 외부 인력을 동원해서 하는 입장이라면 게스트가 숫자로 보이겠죠. 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살이 맞닿는, 만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신기하죠. 이건 제가 자선활동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 공간을 내어주고 환대하는 게 아니라 계약이 존재하는 관계예요. 엄연히 돈이 오고 갔고요. 그런데 언제나 그 이상이 오고 가더라고요. 매번 그랬어요. 한 번 그랬다면 그 게스트가 특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겠지만 이게 반복되니까 여기서 얻는 기쁨이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마음을 표시하고 가는 걸까, 나는 왜 더 하고 싶을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그냥 돈이 들어와서 얻는 기쁨과는 분명히 달라요. 그렇게 주고받는 마음이 좋아서 이 일을 계속 하지 않나 싶어요.
기상천외한 풍경이 펼쳐지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연다. 그러나 지금껏 아이고아이고 동네 사람들, 이렇게 외칠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게스트들은 설거지도 깨끗하게, 쓰레기 정리도 말끔하게, 그리고 게스트북도 성의껏 써주고 집을 떠났다.(중략) 팁은 아니겠지만, 이국의 동전들이 가지런히 탑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106-107쪽)
한편 여성으로서 한국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듦이 다 있잖아요. 거기에 저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내가 여성이라서 얻는 장점을 호스트를 하면서 느꼈어요. 무엇보다 경계심의 허들이 낮죠. 여성 싱글 여행자는 물론이고요. 바꿔 생각하면 저도 그렇거든요. 호스트가 여자면 저도 머물 때 더 마음이 편하겠죠. 그런 게 느껴져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는지 궁금해요.
캐나다에서 교포 분이 오셨어요. 어느 새 친해져서 그분이 저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정말 삶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분이 여기 계시는 동안 일간지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 인터뷰가 신문 1면에 난 거예요. 그 신문 나온 날이 그분이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이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요. 그 저녁에 그 신문을 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났죠.(웃음) 편의점에도 신문을 잘 팔지 않더라고요. 결국 신문 배급소에 전화를 해서 겨우 몇 부를 구해왔어요. 재미있는 기억이에요.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원래 무던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셨잖아요. 호스트로 살면서 변했다고 느끼세요?
원래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호스트라는 역할 안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고 싶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열고, 친해지게 돼요. 그게 신기한 거죠. 솔직히 게스트를 만나자마자 서로 마음을 다 열고 친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천천히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바뀌는 거죠.
프롤로그 제목이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잖아요. 그냥 읽을 때는 작가님의 애정을 짐작만 했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썼는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쓰고는 참 거창하게 썼다는 생각도 했어요. 남들이 보면 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하지만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방문했던 분들도 서울이라는 도시, 북촌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서 나를 생각해주겠지, 하고 기대도 하고요. 실제로 선물이나 편지를 받으면서 확인을 해요.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늘 그 바르셀로나의 첫 호스트를 찾아가보고 싶다고 얘기하죠. 아쉽게도 지금은 호스팅을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영원성에 대한 갈망”(34쪽) 이야기도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사라지지 않을 곳이기 때문에 정독도서관에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이에 대한 남다른 갈망이 있는 것 같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해운대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바닷가를 가는 아이였죠.(웃음) 그때도 풍경이 바뀌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달맞이 언덕에 5층짜리 주공아파트 단지가 있었어요. 집에서 바닷가로 가려면 그곳을 통과하는 마을버스를 타야 했죠. 거기에는 벚나무가 가득해서 4월에는 벚꽃과 눈을 맞추면서 갔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이 생겼어요. 대학교에 와서는 상수동에서 4년을 살았는데 그곳 역시 바뀌는 걸 많이 봤죠. 하지만 그 파도에 함께 올라타거나 맞서는 걸 저는 못하겠는 거예요. 소시민이니까요. 살아남을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부서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동네를 찾고 싶다고요. 그래서 궁궐에 생각이 미치게 된 거죠. 이곳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요. 그게 좋아요.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기쁨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안정감 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바뀌는 것은 계절의 변화 정도고요. 오래 살아남은 것들이 주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항상 이곳을 맴돌죠. 어디서 봤는데 사람이 처음 정착한 범위에서 의외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저희가 2012년에 원서동에서 ‘자기만의 방’을 시작해서 계속 같은 쓰레기봉투를 쓰는(웃음) 지역 안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살면서 가장 좋은 건 뭐예요?
궁궐을 마주한 원서동 길에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운영 중인 카페가 있어요. 이름도 정겨운 오래된 가게인데요. 연애할 때도 가고, 며칠 전에도 갔던 곳이죠. 저는 전부터 그 가게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직장 다닐 때는 끊임없이 남의 일을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 일이라는 느낌이 없었는데요. 그 가게를 보면서는 자기 공간에서 자기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꾸려나간다는 점이 멋있더라고요. 물론 거기에 책임과 고충도 엄청나겠지만요. 그러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고 나서는 이게 내 일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어요. 누군가는 남이 쓴 화장실을 뒷정리하는 게 싫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전혀 힘들지가 않거든요. 행복하고요. 시간을 내가 기획해서 쓸 수 있다는 점이 저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호스트로서 나의 장점은 뭔가요? 작가님은 빨래를 좋아하신다고요.(웃음)
빨래 정말 행복해요.(웃음) 그런 물리적인 것 외에도 제가 피드백에 되게 약한 사람이에요. 칭찬에 정말 약해요. 고맙다는 말이나 그저 집에 도착해서 변화하는 표정만 봐도 두근두근해요. 더 잘해주고 싶고요. 그런 면에서 이 일이 제 자존감에도 도움이 되는 일 같아요.
그러면 무리하게 될 때도 있지 않나요?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한 문제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선 이걸 롱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것을 위한 제1규칙은 내가 지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는 게 가능한 노동 강도를 찾아야 했고요. 저는 손님이 체크아웃을 하면 무조건 그 하루는 비워둬요. 그러면 쫓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만약 손님이 12시에 나가고, 2시에 새 손님이 온다면 2시간 안에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하니까 힘들잖아요. 그러면 저도 앞 손님이 꾸물대는 것 같고, 좋은 얼굴이 안 나올 거예요. 그 사람 잘못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수익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저를 쉬게 하려고 해요. 에어비앤비를 하기 전에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해서 제가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요.
작가님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일상의 순간을 묘사해본다면 어떨까요?
바르셀로나의 공기와 햇살, 온도가 너무 좋아요. 그런 곳에서 햇살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것이 제게 완벽한 어떤 한 컷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도 기회가 된다면 저는 게스트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건 제 꿈이기도 해요. 이 책 다음에는 ‘삼청동, 자기만의 방’ 그리고 언젠가는 ‘바르셀로나, 자기만의 방’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건 제가 행복하게 해야 그 마음이 전달되리라는 점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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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 자기만의 방한 량 저 | 북노마드
누군가의 집으로 색다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훗날 여행자의 집을 꾸리는 삶을 꿈꾸는 이라면, ‘원서동, 자기만의 방’의 문을 두드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