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경험을 판매합니다
우리 모두는 낭독회를 통해 ‘존버’하며 이긴 다비드가 되었다.
글ㆍ사진 노명우(사회학자)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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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판매하나요?” 마스터 북텐더가 니은서점을 소개할 때마다 많이 듣는 질문이다. 마스터 북텐더는 살짝 힘을 주어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니은서점은 책만 팝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대답인데, 책만 판다고 대답하면 많은 분들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되묻기도 한다. “책만 팔아서 버틸 수 있나요?”

 

책만 파는 서점이 드물어진 세상이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바뀌니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서점의 변신은 당연하다. 대형서점은 손님의 매장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팬시 상품과 각종 물건을 파는 팝업 스토어를 유치한다. 그 정도의 크기가 되지 않는 중형 서점은 서점의 크기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서점에 부가적 기능을 더해 매출을 늘리려 한다. 작은 서점이나 독립 서점은 차나 음료를 파는 카페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니은서점은 책만 판다. 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니은서점 페이스북 페이지의 대표사진에서 받는 인상과 달리 니은서점은 아주 작다. 매우 큰 매장일 거라고 사진을 보고 추정했다면, 찬양받아야 할 현대의 렌즈공학의 성과 덕택이다. 사진으로 한 짐작과는 달리 니은서점은 두세 걸음만 걸으면 어딘가에 부딪힐 정도로 작다. “책만 파는 서점”이라는 니은서점의 시그니처는 마스터 북텐더의 서점에 대한 근본주의적 취향의 산물이 아니라 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책만 파는 서점”이지만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팔 수 없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서점은 사실 스마트 폰이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다비드의 처지이다. 다비드가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서는 묘책이 필요하다. 궁리 없이 다비드는 골리앗과 싸울 수 없다. 사실 “싸운다”는 표현 자체도 니은서점과 같은 작은 서점에게는 과대 평가이다. 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니은서점은 싸우는 다비드가 아니라, 버티는 다비드이다. 이른바 ‘존버’라는 어둠의 시대정신을 니은서점은 떠받든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 경험 하나. 분명 시작은 독서였다. 스마트 폰으로 자극이 강한 핫 이슈만을 머릿속에 집어 넣다보니 뇌가 썩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독서로 뇌를 정화해보겠다고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느새 책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모든 사람의 경험이다. 책을 읽고 책을 쓰는 게 직업인 니은서점의 마스터 북텐더도 매일 되풀이 하는 일상이다.

 

버티는 다비드는 꾀를 내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는 스마트 폰이라는 골리앗과 싸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버티는 것 자체가 어렵다. 혼자 못할 경우 집단을 형성하는 게 언제나 그렇듯 정답이다. 그런 궁리로 니은서점의 낭독회가 만들어졌다. 마스터 북텐더는 2시간 안에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의 책을 선정한다. 그리고 함께 읽을 사람을 모집한다. 보통 이렇게 유혹한다. “혼자서 책 읽기 힘드시죠? 단 2시간만 투자하시면 책 한권을 읽어낼 수 있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는 니은 낭독회!”라고.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책을 함께 읽기 시작한다. 한 문단씩 돌아가면서 낭독을 해야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거나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면 자기 차례가 왔는데도 낭독해야 할 부분을 찾지 못하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모두들 긴장한다. 눈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텍스트를 듣기까지 하니, 혼자서 책을 묵독으로 읽을 때와는 달리 책도 나름의 방식으로 멀티 미디어가 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을 준다. 이러다 보면 2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휙 지나간다. 요즘 시대에 매우 드물어진 강렬한 몰입의 경험이다.

 

그 2시간 동안 사람들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스마트 폰을 손에 쥐고 싶은 유혹과 사투를 벌인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스마트 폰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존버’한 셈이다. 2시간을 다함께 ‘존버’하면 각자의 손에 쥔 책은 마치 승리의 트로피처럼 느껴진다. 낭독회가 시작되었을 때 약간 서로 어색해했던 사람들도 ‘존버’의 공동체에 대한 경의를 서로 눈빛으로 표현하며 미소 짓는다. 우리 모두는 낭독회를 통해 ‘존버’하며 이긴 다비드가 되었다.
  
니은서점은 팬시한 학용품도 못 팔고, 탐나는 굿즈도 못 팔고, 커피도 못 팔지만 이렇게 다함께 ‘존버’하며 버티는 책 읽는 경험은 판매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맛에 니은서점은 오늘도 문을 연다. “단 2시간만 투자하시면 됩니다.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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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은서점 #낭독회 #2시간 #독서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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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unhoy

2019.01.21

밥물 끓는 냄새/강미정

모르는 집 창문 아래에 앉아 있었다
창문 안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틀어놓은 물소리에 섞여
들렸다가 들리지 않았다가 하는
모르는 여자의 가늘고 긴 흐느낌
여자의 울음소리가 고요해질 때까지
모르는 집 창문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울었다
마음의 첩첩산중에서 자란 울음은
저렇게 혼자 울겠구나
저렇게 혼자 울었겠구나, 울었다
잘 크라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가만히 들리고
천천히 물 붓는 소리가 가만히 들리고
쌀 씻는 소리가 가만히 들리는
내가 모르는 집의 밥물 끓는 냄새,
싸우고 나온 일을 잊고
벌떡, 일어나 집을 향해 막 바쁘게 걸어갔다
어디로 멀리 혼자 가고 있는 길을 거두어
찾지 못하던 곳으로 가던 길을 거두어
밥물 끓는 냄새로 간절해진
집으로 막 걸어갔다 마음이 급해졌다
.
.
.

'밥'이 중요한 세상에서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정의로운 연두빛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잔혹한 세월을 견디게 하는 힘은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이지요

-잠든 초원은 별로 가득합니다

연연할 게 많은 사람들에게
'페이퍼 증명방식'이
어려운 숙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상세계든.현실세계든.
오래 전부터 책은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습니다

다시 우주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시민들이 낭독을 하려면 5시간은 걸리겠네요

오는 길_가는 길_인사하기_
진행하기_낭독하기_소감_정리_담소

노명우 선생님의 진심이
사회 곳곳에 첩첩산중까지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_()_

잘 지내세요 꾸벅*)^^.

https://www.youtube.com/watch?v=DASZ5bI0gKk

>>앵콜요청금지/브로콜리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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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9.01.15

존버, 존나 버티기. 이런 말이 있다는 것도 오늘 알았습니다. 2시간 독서, 낭독회. 같이 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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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사회학자)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