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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올리고, 냉장고 야채 칸을 뒤져요
오늘은 머리도 식힐 겸 가벼운 이야기를 해봅시다. 라면 좋아하시나요? 저는 라면광입니다. 새로운 라면이 나오면 반드시 먹어보지요. 구수하고 매콤한 국물, 땡땡하면서도 부드러운 면발, 계란과 파와 김치의 환상적인 조화, 게다가 5분이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편리함까지 갖추었으니 기가 막힌 음식이지요. 하지만 라면은 몸에 나쁘지 않을까요?
라면이 몸에 나쁘다는 사람들은 지방과 소금(나트륨) 함량이 너무 높고,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및 섬유소가 부족하고, MSG를 비롯한 화학적 첨가제가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일단 MSG는 수많은 실험과 관찰 연구를 통해 무해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WHO에서도 선언했으며, 합리적으로 따져봐도 해로울 가능성이 별로 없어요. 그 정도 되면 믿어도 됩니다. 음모론 같은 걸 들고 나와 한사코 믿지 않으려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생각에 빠지는 것이 오히려 해롭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라면에는 MSG가 들어있지 않아요. 하도 말들이 많으니 뺐다고 합니다. MSG를 쓰지 않고도 그렇게 오묘한 맛을 낼 수 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하긴 합니다. 다른 화학적 첨가제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식품 첨가물은 의약품 수준으로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 할 것은 없지만, 너무 많이 섭취할 것도 없다는 정도로 정리해두면 좋겠습니다.
라면의 지방 함량이 높은 것은 면을 기름에 튀기기 때문입니다. 다른 식사 때 지방을 덜 먹는 방식으로 1일 섭취량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삼겹살 대신 목살을 먹는다거나, 기름이 덩어리진 부분은 잘라낸다거나 하는 거지요. 튀기지 않은 라면도 있어요. 지방 함량이 훨씬 낮고, 당연히 칼로리도 낮습니다. 일반 라면이 550 kcal 수준인데 350 kcal 정도입니다. 조금 비싸고 보존 기간이 짧은 것이 흠입니다.
그럼 소금 함량이 높은 것하고 비타민과 섬유소가 부족한 문제가 남네요. 저는 이렇게 합니다. 일단 물을 올리고, 냉장고 야채 칸을 뒤져요. 요리에 쓰고 남은 호박, 버섯, 양파, 감자 같은 게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시 한 번 잘 씻어 적당한 크기로 썰지요. 그때쯤이면 물이 끓습니다. 라면과 스프와 야채를 넣는데, 스프는 1/2 ~ 2/3만 넣습니다. 끓는 동안 그릇에 파 한 개를 썰어 넣지요. 버섯이나 양파도 일부는 냄비에 넣어 끓여 국물 맛을 내고, 일부는 얇게 썰어 그릇에 넣고 살짝 익혀 먹습니다. 1분 남았을 때 계란을 냄비에 깨 넣고 불을 끈 후, 1분 기다렸다 라면을 그릇에 옮기고 위에 쑥갓이나 부추를 수북이 올려요. 좀 럭셔리하게 먹고 싶으면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넣거나, 새우, 문어, 고기를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 먹으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어요. 일단 스프를 적게 넣으니 소금 함량이 줄고, 야채를 듬뿍 넣으니 섬유소를 보강할 수 있지요. 생야채를 수북이 얹어 먹으면 맛도 좋고 비타민 보충에도 그만입니다. 자칫 냉장고 안에서 상하게 될 야채를 먹어 치우면서, 칼질, 불 조절, 재료 넣는 타이밍 등 기본적인 요리법을 익히는 기회도 됩니다. 라면 자체가 기본적으로 맛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먹다 남은 갈비나 치킨, 돼지족발, 오징어나 문어도 넣어 보고, 배추나 무우, 통마늘, 아스파라거스, 방울 양배추, 시금치, 숙주나물을 넣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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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것을 먹어도 만족할 수 있다면
라면에 익숙해지면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법을 꼭 익혀두세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치는 것 정도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남자든 여자든 요리를 배워두면 건강한 음식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좋고, 가사 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으니 좋고, 세상 어디든 가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니 좋지요. 자신이 붙으면 슈퍼나 장에도 가보세요. 식재료를 고르고, 몸에 좋은 음식이 뭔지 생각해보고, 사람들이 어떤 식품을 사고 파는지 보는 것만도 큰 공부가 됩니다. 그런 공부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바라보고, 계획하고, 꾸려가는 데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경험입니다.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요. 그런 경험을 평생 해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못 해보니 불행하고, 자칫 혼자 남게 되면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니 불쌍해집니다.
간식도 스스로 챙기면 좋아요. 앞에서 말했듯 과자나 음료수를 피하고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견과류를 직접 골라보세요. 건강한 식습관을 얘기할 때 하루 5번, 서로 다른 색깔의 과일이나 야채를 먹으라고 권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저는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더 쉽지만 보통 하루에 사과 1-2개, 바나나 1개, 오이나 샐러리를 1번, 토마토 1개, 견과류 한 줌 정도를 먹습니다. 음료는 신선한 저지방 우유와 차, 커피를 마시고, 밖에 나갈 때는 물병에 물을 가져 가지요. 환경을 생각해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파는 생수는 피하세요. 치즈도 조금 먹고, 양상추나 브로콜리에 저지방, 저염 드레싱을 뿌려 먹거나, 식빵을 구워 땅콩버터와 저가당 잼을 바르고 달걀과 햄을 넣어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합니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장만하여 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요.
드레싱이나 땅콩버터, 잼 같은 건 직접 슈퍼에서 사보세요. 이때 식품 성분표를 잘 봐야 합니다. 소금이나 설탕을 아예 넣지 않았거나, 조금만 넣은 것을 고르세요. 땅콩버터는 빵에 바르기 쉽게 첨가제를 쓴 것과 그냥 땅콩만 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땅콩만 든 것이 좋겠지요. 식품첨가물을 먹으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알려진 것만큼 몸에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단순한 것을 먹어도 만족할 수 있다면 단순한 것을 먹는 게 낫습니다. 드레싱은 칼로리를 따져보고 사는데, 입에 맞지 않으면 칼로리가 약간 높더라도 입에 맞는 것을 고르세요. 건강만 따지며 살 수는 없어요. 먹는 재미도 중요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걸 골라 나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식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능력이 생깁니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