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생명, 회복에 대한 믿음이 담긴 책 『희망의 이유』 , 『고독한 미식가』 의 작가 쿠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홀로 남아 자유로워진 할머니의 이야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를 준비했습니다.
톨콩의 선택 - 『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저 | 궁리출판
저는 제인 구달 박사님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2000년대 초반이었어요. 밤에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케이블 TV를 켰는데, 다큐 채널에 나온 장면을 보고 완전히 시선을 빼앗겼어요.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가 숲속에서 침팬지와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었어요. 자막을 통해서 그 사람이 굉장히 오랫동안 침팬지를 필드에서 연구한 제인 구달 박사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거죠. 그리고 멀지 않아서 그 사람의 책을 찾아서 읽은 게 『희망의 이유』 였어요.
제가 지난주에 EBS에서 하는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DIF)를 통해서 다큐 영화 <제인>을 보게 되면서 이 책을 다시 꺼내들게 됐는데요. 제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지나치게 아름다운 영상들이 속출하는 거예요. 그 다큐를 진짜 감동적으로 봤어요. 지금까지 봤던 다큐 영상이나 사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휴고 반 라윅’이라는 촬영 기사가 찍은 푸티지인데, 이 사람은 제인 구달을 보고 첫눈에 반했고 나중에 결혼을 하거든요. <제인>이라는 다큐는 사랑에 빠진 남자가 너무나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석양 또는 풀숲을 배경으로 거기에서 연구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필름이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책을 다 읽어서 내용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도 침팬지들의 눈빛을 영상으로 보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어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제인 구달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 거죠. 그래서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서, 다시 이 책을 꺼내서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제인 구달 박사의 팬이 됐어요. 이 분과 이 책은 저한테 굉장히 영향을 많이 미쳤어요. 제인 구달 박사는 방한을 많이 했지만, 저는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이라는 새 책이 나왔을 때 최재천 교수와 함께 사인회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었어요. 제가 더듬더듬 영어로 ‘자연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게 만들어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사인을 하려고 고개를 숙였던 제인 구달 박사가 고개를 들어서 저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Mother Nature needs you(대자연은 당신을 필요로 해요)”라고 했어요. 저는 그 순간에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정말 체감할 수 있었어요. 제인 구달 박사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연을 하면서 한 곳에 3주 이상 머문 적이 없어요. 지금은 굉장히 나이가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면서 계속해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한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큰 목표, 제인 구달의 경우에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랑이죠, 그 목표에 일생을 바쳐서 매진했을 때 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보면 ‘과학과 종교가 왜 양립할 수 없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침팬지들 안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굉장히 잔인한 일들이 일어나요. 하지만 아주 이타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모습들도 있어요. 제인 구달은 끝까지 낙관을 붙들어요. 이 책의 제목이 『희망의 이유』 인 이유이기도 하죠. 그 힘은 영성이라든가 자연, 생명, 회복에 대한 믿음인 것 같고, 그런 것들의 연원이 이 책에 들어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쿠스미 마사유키 저/최윤영 역 | 인디고(글담)
유명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 만화를 그린 쿠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입니다. 책 중간에 보시면 대충 그려놓은 듯한 네 컷 만화도 들어가 있고요. 이 책을 읽어 보니까 『고독한 미식가』 를 지으실 만한 작가님이더라고요. 일단 많이 드세요. 지금까지 저는 미식가라고 하면 아름답고 멋지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미식가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가님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많이, 빠르게, 드시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스타일이에요. 라면을 먹을 때는 “금방 나온 뜨거운 면을 후후 불어가며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는다. 소리 내지 않고 예의바르게 먹고 싶다면 차라리 다른 음식을 찾아라”라고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두 그릇을 먹는 거예요. 돈가스를 먹을 때는 처음 한 조각은 두 입에 끝내요. 처음에는 비계가 없는 부분을 먹고, 밥을 먹어요. 그 다음에 살코기와 비계가 반반인 부분을 먹는데, 그때 양배추가 들어가야 해요. 돈가스를 먹으면서 표현하신 부분이 있는데 “맛있다. 우걱우걱 먹는다. 돈가스와 밥은 정말이지 우걱우걱 먹는다는 말이 딱이다. 도중에 먹는 절임채소가 맛있다. 그래서 아껴 먹는다. 어쩌다가 튀김옷이 고기에서 떨어져 버린다. 이게 또 귀엽다. 젓가락으로 가다듬어 먹기도 하는 나. 허나 튀김옷은 튀김옷일 뿐, 튀어나온 고기는 다시 소스를 살짝 찍어먹는 것 또한 맛이 색달라 즐겁다”라고 쓰셨어요.
라면, 돈가스, 샌드위치, 카레, 오차즈케 등 우리가 흔히 먹는 평범한 메뉴들을 정말 즐겁게 맛있게 드시는 분이에요. 일본 사람들이 먹는 일상식도 많이 나와서 읽으면서 즐거웠어요. 단팥빵도 나오고요. 고양이 맘마(네코맘마)라는 음식도 나오는데, 간장이랑 가다랑어포를 얹어서 밥이랑 먹는 음식이라고 해요. 진짜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은 나토를 먹는 방식을 두고 싸우기도 하나 봐요, 마치 예송논쟁처럼(웃음). 나토가 저으면 저을수록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은데, 끈이 나올 때까지 섞어먹는 파와 그냥 얹어먹는 파가 있대요. 이 작가님은 온 힘을 다해서 나토를 일심분란하게 저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끈이 나오면 간장을 떨어트리고 잘게 썬 파를 넣고, 새로 휘젓듯이 또 정신없이 섞는대요. 그걸 많이 할수록 맛있어진다고 믿으면서 먹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일본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생활밀착형으로 들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이 작가님은 고깃집에 가면 반드시 맥주를 마셔야 되는데, 이때 짜증을 내는 부류가 있어요. “테이블에 앉자마자 무슨 규칙마냥 “생맥주 큰 거 네 잔이요! 다들 괜찮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고깃집에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면 나는 무조건 병으로 주문한다. 생맥주잔이라니, 그런 무거운 걸 들고 고기를 대할 순 없다. 움직임이 둔해진다. 고기구이가 절정으로 치닫는데 테이블에 우뚝 선 맥주잔의 모습이란 우둔하다“라는 거예요. 이 분은 병맥주 파이신 거죠. 음식을 먹는 스타일이 정말 확고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냥의 선택 -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저/정수윤 역 | 토마토출판사
와카타케 치사코 작가님은 1954년생이신데요. 55세에 남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홀로 남으셨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셨는데,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엄마와 아내로 사시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해요. 그래서 소설 수업을 들으셨고, 8년이 지난 후에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를 쓰셨습니다. 이 소설로 2017년에 ‘문예상’을 받으셨는데, 이때 63세이셨어요. ‘문예상’ 역사상 최연장 수상자이셨다고 하고요. 올해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으셨습니다. 잊었던 꿈을 55세의 나이에 다시 이루셨다는 게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의 주인공은 74세 할머니 ‘모모코 씨’인데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떤 목소리를 듣게 돼요.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인데, 내 목소리나 말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들려요. 실제로 작가님께서 그런 경험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남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볼까?’ 하고 생각하니까 그 목소리들이 더 또렷해졌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설정이 소설 속에서는 더 상징적으로 다가오죠. 온전히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거니까요.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결국,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나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내 나이 일흔이 넘었고, 혼자 늙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남은 날이 얼마 안 될 수도 있지만, 나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작가님께서 지난 8월에 방한을 하셨는데, 그와 관련된 기사가 <채널예스>에도 실려 있어요. 기사에 따르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면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는데, 할머니는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이 소설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한 부분을 읽어드리고 싶어요.
“남편이 죽은 뒤로 현실은 전만큼 의미를 갖지 않게 됐다. 그간 모모코 씨를 지탱해 온, 이렇게 해라, 저렇게 살아라, 같은 규범들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상식이나 약속은 남편이 있고, 지켜야 할 세계가 있을 때 비로소 통용된다. 아이들도 키웠고, 남편도 보냈다. 이제 세상에서 모모코 씨를 필요로 하는 역할은 모두 끝냈다. 깨끗이 깔끔하게, 용도가 끝난 인간이 됐다.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이 세상과 모모코 씨의 관계도 끊어진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인 존재.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먼저 삶의 규범을 싹 잊어버리자. 모모코 씨가 생각하는 모모코 씨의 관례를 따르면 될 일이다. 나는 나를 따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이제까지의 나로 있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세상이니 상식이니 하는 것들에 욕설을 퍼붓고, 허리춤을 추켜올리며, 그것들에서 멀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86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