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바짝 들기보다는 힘을 한껏 풀었다. 어딘가 맞지 않는 옷처럼 헐거웠던 지난 두 장의 EP가 얼핏 설핏 어른스러움을, 섹시함을 어필하려 했다면 이번 5년 만에 들고나온 그것도 첫 번째 솔로 정규 음반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본인의 이미지를 투영시킨다. 그러니까 매스컴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던 파티를 좋아하고 디제잉을 즐기던 그의 모습이 십분 담겼다고나 할까.
작정하고 놀아보자 푼 고삐는 첫 번째 타이틀 「셋 셀테니」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역대 승리의 디스코그래피 중 이 정도로 시원하고 이렇게 제 옷처럼 맞아 들었던 트랙이 있었나 싶다. 훅 치고 들어오는 킬링 포인트의 ‘원, 투, 쓰리!’ 추임새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경쾌한 팝 록은 한여름 시원한 사운드 베케이션을 선사한다.
하지만 반전의 짜릿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이어지는 또 다른 타이틀 「Where r u from」은 보컬 샘플 피치를 올려 왜곡 효과를 준 사운드와 거친 작법에 따라 이뤄진 빌드 업이 모여 투박한 조합을 이루고, 「몰라도」는 ‘뽕뿅’거리는 멜로디라인에 조금은 촌스러운 뽕 끼 선율로 일차원적인 사랑 이야기를 품는다. 이 같은 태세는 볼륨감 있는 강한 신시사이저와 저음의 전자음, 그리고 후반부 거친 리믹스로 진행되는 「Hotline」에서도 마찬가지다.
‘셋 셀 테니 넌 딱 넘어와!’(「셋 셀테니」)라는 능청스러운 대담함과 처음 본 사람과 사랑일지도 모를 감정에 즐거워하는 「몰라도」 사이에 ‘이 세상은 모두 내꺼니까’ 모든 이뤄낼 수 있음을 전달하고(「Be friend」) 진지하게 외로움(「혼자 있는 법」)을 고백하는 탓에 앨범의 질서는 어지럽다. 신나게 한바탕 놀기도 해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고 그 틈에 본인의 고민도 녹여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차라리 진지함을 걷어내고 거칠지언정 완벽하게 뛰어놀 음반을 들고 나왔다면 훨씬 명확한 지향점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같은 복합적 분위기에 휩쓸려 록킹한 기타반주에 퓨처 하우스가 더해진 「달콤한 거짓말」이나 미디엄 템포에 승리와 여성 보컬 블루 디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는 「Love is you」의 곡 단위 완성도가 무뎌진다. 음반 전체의 구심점을 확실히 잡았다면 충분히 빛날 수 있었을 테지만 현재로서는 각개전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규앨범의 의미와 성취는 단일 측면에서 뚜렷하다. 뮤지션 승리가 음악적 야욕과 야망에서 물러선 채 만들고 싶은, 하고 싶은 곡들만을 들고나온 것. 그간 어중간한 이미지를 뒤로하고 본인이 즐길 사운드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일단의 성취를 맛본다. 늘 무거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음악적으로 아쉬운 배합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내 것’을 향해 시선을 돌린 이 유쾌한 곁눈질이 한 번 더 다음 행보를 기다려보게 한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