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바생이 호주 오너 셰프가 되기까지
이민은 수단이 돼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사 그 목적을 이루더라도 원하던 ‘행복한 삶’은 그 끝에 없을 수 있거든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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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다들 의사를, 대기업을 꿈꿀 때 꿈이라곤 맥도날드 정규직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넌 안 될 거라고 했으니까, 머리 터지게 공부하지 않은 너에게는 꿈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조금 별나고 독특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딱히 호주에 이민을 오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당장 도망칠 곳이 필요했고, 우연히 워킹 홀리데이로 갈 수 있는 호주가 눈에 띄었을 뿐. 그렇게 도착한 호주는 한국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일개 알바생도 손님의 부당한 요구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고, 고용주들은 스스럼없이 급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제공한 시간과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다.

 

호주에 도착한 지 딱 10년이 지나 레스토랑 두 개의 오너 셰프가 되었다. 대단한 부자가 되진 않았지만, 꽤나 괜찮게 산다. 나이에 얽매여 어떤 역할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연말에는 무려 3주나 가게를 닫고 여행을 떠난다. ‘삶의 질’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좀 느낀다. 그럼에도 가끔씩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왜 한국 사회에는 내 자리가 없었던 건지, 그렇게나 치열하게 살았는데도 왜 한국에선 괜찮지 않았는지. 이민 덕분에 행복해진 건지. 머나먼 멜버른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떠올린 소회를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에 담아냈다.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는 유쾌하고 즐거운 자아 찾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꺼려지는 어두운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는데, 그런 깊은 내용까지 고백하면서까지 이민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 같은 것이 있나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게 호주에 온 지 8년차 되는 해였어요. 그때는 1호점 수다가 자리 잡기도 전에 2호점 네모를 무리하게 오픈한 상태였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기도 했고 정체성 혼란 같은 문제가 뒤늦게 찾아와서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어요. 지금 잘 살고 있기는 한데 내가 애초에 왜 여기 와 있더라? 싶고. 어두웠던 20대 때의 기억들이 계속 밀려왔어요. 예민하고 우울했던 그때의 나를 잊고 새 출발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던 것 같아요.


사실 전 8년 동안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딴생각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워홀 때는 학비 모아서 유학하느라, 유학 때는 공부, 요리, 일까지 병행하느라, 취업하고는 미친 듯이 돈 모으느라, 가게를 열고 나서는 자리 잡느라. 그 좋아하는 책 한 권도 보지 못하고 정신 없는 생활을 보냈는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딴생각할 시간이 생기니까 금방 우울증이 도졌어요. 그래서 글을 한두 개씩 써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때의 나, 한국에서의 나와 이제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를 해야겠다. 글로라도 정리를 해야 앞으로 제대로 살 수 있겠다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저와 비슷한 한국의 20대 청년들에게 고민 상담이 엄청 들어오는 거예요. 힘이 된다고, 이런 말 해줘서 고맙다고. 그런 말에 저도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오랜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었어요.

 

책에서 쿠지 해변에 갔던 날 여기에 살고 싶다고 느꼈다고 말해주셨는데, 이외에도 멜버른에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을 것 같습니다. 멜버른에서 살고 싶다고 느낀 또 다른 강렬한 순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멜버른에는 법정공휴일 중에 ‘멜버른 컵데이(Melbourne Cup Day)’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냥 쉬는 날인가보다 했는데, 사람들이 다 차려 입고 머리에 깃털 단 모자를 쓰고 다니더라고요. 무슨 날이냐고 물으니 ‘경마’하는 날이래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마 경기 결승전이 있는 날이라 매년 이렇게 논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저는 엄청 충격적이었어요. 또 멜버른에 처음 왔을 때 가장 가까운 해변인 세인트 킬다에 놀러갔었거든요. 어둑어둑할 때 도착해서 부두를 따라 쭉 걸었어요. 그 끝에서 끄룩끄룩 하면서 이상한 새 소리 같은 게 들리더라고요. 가까이 가보니까, 펭귄들인 거예요! 진짜 충격 받았어요. 페어리펭귄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인데, 호주에 서식하는 건 알았는데 사람들이 떡하니 지나다니는 곳에 이렇게 가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때 유학을 결심하고 돈을 모았거든요. 세 곳에서 알바를 하면서 6개월이 지나니까 통장에 만 불이 모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아무리 일해도 통장에 천만 원 단위가 찍힌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부모님 집에서 살아서 세가 나가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알바 세 개 모두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고, 방값도 빠져나가는데 신기하게 그만큼의 돈이 모였어요. 그때 결심했던 것 같아요. 알바판에서 구르더라도 차라리 여기가 낫겠다, 갈 때 가더라도 돈 좀 벌고 가자. 이렇게요.

 

멜버른에 살고 싶다고 강렬하게 느낀 순간이 있다면, 한국에서 떠나고 싶다고 강렬하게 느낀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태어난 나라를 뜬다는 것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 중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순간들이 궁금합니다. 

 

알바를 진짜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못볼 꼴을 많이 봤어요. 성추행도 많이 당했고 갑질은 예삿일이었죠. 열아홉 살 때부터 맥도널드 수습 매니저 교육을 받았는데, 본사에서 사람이 온다고 하면 의자를 칫솔로 닦아요. 화분에 있는 이파리까지도 하나하나 광내라고 하고. 제가 못 견디고 그만둔 자리에 제 친구가 들어갔는데, 점장이 조언해준답시고 술 먹이고는 모텔로 끌고 가서 강간을 했더라고요. 친구는 그걸 폭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금까지 잠적 상태인데 점장은 한 달인가 쉰 후에 다른 매장으로 출근했어요.


저는 전문대 출신에다가 학점도 안 좋았고, 맥도널드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 받고 다니는 어린 여자애였는데, 당연히 가는 곳마다 무시당했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아는데, 마냥 무기력해졌던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네 나이 몇 살이면 뭐는 해야 한다, 너도 내년이면 몇 살인데 이거 안하고 뭐 하냐. 계속 듣다 보니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20대 초반, 앞길이 창창한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 말이죠.


사실 그때는 막연히 다른 곳에서 사는 걸 꿈꾸기는 했어도 제가 이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여기서 못 살겠다는 생각은 수없이 했지만 방법을 몰랐고 용기도 없었죠. 그러다가 알바비를 모아서 처음으로 혼자 태국에 20일 정도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스쿠버다이빙 강사, 가이드, 게스트하우스 사장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해외에서 사는 게 생각보다 완전히 딴 세상 이야기는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이민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면 작가님은 멜버른에 살게 되면서 참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습니다. 성격이든, 생활이든, 직업이든.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라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성격이 변했어요. 제가 자존감이 낮고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거든요. 예민해서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라, 오히려 마음도 잘 안 열었고 쿨한 척하기도 했어요. 스스로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잘 될 거야! 믿어보자!’ 이런 생각을 안 했어요. 어차피 안 될 거 너무 힘 빼지 말자, 이런 생각으로 임했는데 상대방도 그걸 알았겠죠.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한테도 쿨한 척했던 것 같아요. 상처받기 싫어서 최소한만 원하고, 최소한만 표현하고.


지금은 그래도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게 됐어요. 이건 제가 환경이 변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30대 중반이 되면서 조금 유해진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직장에 다니긴 했어도 딱히 ‘내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어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비행기 탈 때처럼 서류에 직업을 써야 할 때, 그냥 얼렁뚱땅 학생이라고 썼거든요. 지금은 셰프, 비즈니스 오너라고 당당히 써요. 그리고 또 이번에 책을 출간하게 되었으니 작가라는 직업도 적어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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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호주의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느끼는 점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떠나온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가지만 꼽아주세요.

 

떠나온 주제에 제가 뭐라고 한국 사회에 무언가를 바랄 수는 없겠죠. 그래도 굳이 하나를 말하자면,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한국은 지금 굉장히 급변하고 있고 가치들도 많이 부딪치잖아요. 기성세대와 젊은 청년들은 서로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조직의 안녕과 단체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이 어느 정도 희생하는 건 오히려 보람이고, 긍지라고 여겼던 기성세대가 저희 세대를 본다면 이기적이고 근성이 없다고 보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희 세대가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건 일하기 싫고, 고생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조직의 발전이 내 개인의 발전과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데?’라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거든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소통도 어렵고, 원하는 결과를 함께 만들어내는 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20대, 30대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의 능력을 조직으로 끌어오고 싶다면 그들의 문화와 배경,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면서 다가가는 게 어떨까요? 전 세대에서 먹혔던 방법이 다음 세대에게도 먹히기는 힘들잖아요.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가 독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는 사실 이민 성공기와는 거리가 멀어요. 워홀 실패 사례, 역이민을 하는 사람들, 이민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등등 호주 생활과 이민의 민낯에 대해 제 경험을 빌어서, 부끄러워도 최대한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이민을 꿈꿀 때, 저에게 ‘이민’은 인생에 한 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서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 같은 거였어요. 새 출발, 인생 리셋. 이민의 무게와 현실을 몰랐던 저에게 이민은 실체 없는 동경이었던 것 같아요. 현실 감각이 없었던 거죠.


반면 제 주변에는 이민을 원하기는 하지만 막연히 두렵기만 하다고 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막막하고 두려울 뿐이라며 이민을 꿈도 꿀 수가 없다고 말하는 그 친구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색안경이 쓰여 있는 거예요. 이렇게 ‘이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막연히 동경하거나, 혹은 막연히 두려워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색안경이 우리의 시야를 가릴 때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돼요. 그러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이민을 꿈꾸는 청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이민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민이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고 실체가 있는 어떤 장치, 혹은 제도라는 것도요. 그 때의 저에게 이민이 동경이고 현실도피였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의 이민은 ‘스스로 더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과정’이길 바라요.


영주권을 따낸 선배 이민자로서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어떤 조언을 주고 싶으신가요?

 

영주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이건 가끔 ‘영주권이 목표’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해주는 말이거든요. 이민도 그저 하나의 관문이고 이걸 넘는다고 끝이 아니라고. 영주권은 입시나 취업과 비슷한 한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라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왜 수험생 때는 원하는 대학만 들어가면 그다음은 잘 풀릴 거 같잖아요. 또 그 다음에 대학 졸업생들은 원하는 회사만 들어가면 잘 살 것 같고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그 후 갈 길이 첩첩산중이에요.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영주권은 어떻게든 땄는데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케이스를 많이 봤거든요. 마치 ‘전공은 아무거나 해도 돼’ 하는 생각으로 대학교 이름만 보고 달려간 수험생과 비슷해요.

 

이민은 수단이 돼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사 그 목적을 이루더라도 원하던 ‘행복한 삶’은 그 끝에 없을 수 있거든요. 왜 이민을 원하는지, 왜 꼭 이민이어야 하는지, 이민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계속 스스로 물어가며 이 길을 걷는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박가영 저 | 미래의창
‘삶의 질’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좀 느낀다. 그럼에도 가끔씩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왜 한국 사회에는 내 자리가 없었던 건지, 그렇게나 치열하게 살았는데도 왜 한국에선 괜찮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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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