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밝은 편집자와 진실한 저자의 서사
문장으로 쓴 글보다 인생으로 쓴 글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인데, 김달님 작가는 인생으로도 글을 썼지만 문장이 무척 아름다웠다.
글ㆍ사진 프랑소와 엄
201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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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보다 끝인상이 중요하다. 그러나 첫인상이 없으면 끝인상도 없다. ‘프랑소와엄의 북관리사무소’ 다섯 번째 주인공을 찾던 중, 출판사 ‘어떤책’에서 신간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흔히 쓰지 않는 가름끈과 독자 엽서를 고수하는, 어쩐지 첫 책부터 다정함이 느껴졌던 1인출판사 ‘어떤책’. 프랑소와 엄은 어떤책의 네이버 블로그를 틈틈이 보고 있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신간 소식을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의 두 사람』 은 어떤책의 눈밝은 편집자 K가 만든 책이라서 읽게 됐는데, 안 읽었으면 너무 서운했을 귀한 책이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두 개나 놓치게 만든 김달님 작가의 첫 에세이. 이 책은 “부모가 예감하지 못한 시기에 갑작스레 세상에 온” 작가와 50의 나이에 기꺼이 작가의 늙은 부모가 되어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김달님 작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놓인 50년, 그 좁혀지지 않는 시간을 조급해 하며” 이 책을 썼다. 엄마를 모르고 자란 아이가 끝내 울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촌스럽고 상투적이지만, 한마디로 반했다. 프랑소와 엄이 주로 반하게 되는 책들은 자기고백 서사가 짙은 책들이다. 창작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자기 서사. 그 서사를 잘 깎아 쓴 책을 보면, 풀썩 주저앉게 된다. KO를 당하고야 만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김달님 작가의 글은 카카오 브런치를 통해 접하게 됐다.  『나의 두 사람』 의 밑바탕이 된 작가님의 매거진 <마이 그랜드마더 그랜드파더>는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작이었다. 프랑소와 엄도 알겠지만 브런치북 대상작이 되면 특정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달님 작가의 글이 대상작이었으면 아마 읽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대상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얘기는 무척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의 두 사람』 을 읽은 출판계 한 동료가 먼저 묻더라. 출판사에서 이 원고를 검토하고도 어떻게 책으로 출간할 생각을 못했지?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문장으로 쓴 글보다 인생으로 쓴 글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인데, 김달님 작가는 인생으로도 글을 썼지만 문장이 무척 아름다웠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좋아서 글을 읽는 데 느끼는 피로감이 적다. 김달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글이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아주 잘 헤아려졌다.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에서도 평범하지 않았을 노력과 감정들이 너무 잘 헤아려져서 이건 또 무슨 재주지? 싶었다.

 

작가와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카카오 브런치팀을 통해 작가 연락처를 받았다. 첫 전화 통화에서 작가가 창원에 사는 걸 알았는데, 사실 창원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지리에 문외한이라 전라도인지 경상도인지 늘 헷갈리는데, 서울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통화를 마친 다음에야 창원이 어디인지 검색해 봤고, KTX로 서울역에 오려면 편도 기차 요금이 5만 원이 넘는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무식해서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을 그 먼 데서 큰돈 들여 오게 한 거구나 싶어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첫 미팅 때 일단 송구하다는 생각이 많았다.

 

앗, 듣는 나도 진땀이 흐른다.

 

(웃음) 첫 미팅 때 김달님 작가가 노트북을 가져왔는데, 브런치에 올리지 않은 30여 개의 글이 더 있었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과정에서 김달님 작가가 엄마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반부에 ‘하고 싶은 말’이라는 글이 있었다. 책에는 빠진 에피소드인데, 내용이 이렇다. 어느 여성 커뮤니티에서 “타임슬립으로 나를 낳기 전인 젊은 엄마를 만나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 세 가지가 “아빠랑 결혼하지 마”, “엄마 인생 살아”, 그리고 “나 낳지 마”였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막 눈물이 났다. 김달님 작가가 자신을 낳자마자 떠나 버린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나 낳지 마”라면 아, 그건 정말… 하며, 울음이 북받쳐 올라오려고 했다. 그런데 시종일관 담담하던 김달님 작가가 들려준 다음 이야기는 자신이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달님 작가는 여성 커뮤니티의 설문조사를 보며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할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내 눈물이 부끄러웠다. 내가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그냥 엄마 없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는 방증 같아서 부끄러웠다. 낳아 주신 엄마는 떠났지만, 사랑을 주신 할머니는 늘 곁에 있었는데, 어쩌면 여느 엄마보다 더한 사랑을 주셨는데, 내 생각이 너무 좁았다. 하지만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은 내가 엄마와 만난 적 없는 사람과 만났다는 사실로 가득 찼다.

 

브런치 마지막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더라.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 뵙고 싶어요. 읽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프랑소와 엄도 책을 읽는 내내, 김달님 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일단 자랑부터 해야겠다.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경주 집에 가 보았다는 사실을. (웃음) 아마 『나의 두 사람』 을 읽은 독자라면 김달님 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나는 경주 집에 가서 할아버지가 할머니 이발해 주시는 모습도 직접 보았고, 할아버지가 아카시아꿀을 넣고 타 주신 카누 커피도 맛보았다. 할머니는 바퀴가 달린 낮은 의자에 앉으셔서 내게 김달님 작가가 ‘그림 같은 우리 집’이라는 글을 써서 상장 받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책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노년의 삶의 질은 내 생활에 꼭 맞는 집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고 왔다. 부지런하신 할아버지,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의 생활에 꼭 맞는 집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리뷰가 궁금하다.

 

며칠 전 김달님 작가가 할머니 할아버지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다. 동영상 속 두 분은 외출복 차림으로 『나의 두 사람』 을 들고 계셨다. 처음부터 독자로서 두 분을 염두에 두었고 그래서 평소보다 본문 글씨도 더 키웠다. 돋보기를 쓰셔야 읽으실 수 있겠지만, 돋보기를 쓰고도 작은 글씨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님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세요?” 이렇게는 못 물어봤다. 쑥스러워서. (웃음)

 

연재 당시 제목이 ‘마이 그랜드마더 그랜드파더’였다. 책 제목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제목에 영어가 들어가면 거리감이 느껴진다. 처음 붙인 가제는 “나의 늙은 엄마 아빠”였다. 그런데 김달님 작가의 세련된 글과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 듯했다. 그럼 “내가 기억할게요, 당신이 잊는다 해도”로 할까 했는데 작가님 글이 산뜻한 느낌을 주니까 짧은 제목으로 가자고 결정한 제목이 ‘나의 두 사람’이다. 제목도 그렇고 보도자료도 그렇고 바깥이 아니라 책 안에서 모든 재료를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내 곁에 소중한 사람이 생각났다. 더 살뜰히 그들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고마웠다.

 

아이가 셋이라는 독자분이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아 주셨다. 그동안 많은 육아서들을 읽었지만 멘토로 삼고 싶은 책이 없었는데  『나의 두 사람』 이야말로 진정한 육아서고, 두 분이야말로 자신의 멘토시라고. 나도 이 책을 편집하며 내 아이들을 많이 생각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육아랍시고 하는 많은 것들이 사랑과는 동떨어진 것일 때가 많지 않나 반성했다. 또,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다. 아직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아이들이 제 발로 잘 걷고 뛰는 연령대인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아닌가. 엄마랑도 『나의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엄마에게 “이 책을 만들면서 엄마가 전부일 수도 있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더니 엄마가 맞다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뒤늦게 엄마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엄마도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엄마가 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 “낳았다”는 사실 자체에는 없다는 데 동의하신다. 

 

표지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왠지 모르게 다정한 느낌이 들어 자꾸만 보게 되더라.

 

디자이너에게 표지와 본문 디자인 관련해서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했다. 영화 <우리들>처럼 밝고 화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진을 이용할 것. 표지에 쓰인 사진은 김달님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사진 부분에 UV코팅 처리를 했더니 유광 인화지 느낌이 나서 좋다.

 

박준 시인, 은유 작가에게 추천사를 받았다. 저자와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사를 부탁하는 것은 어려운 일 아닌가?

 

어떤책은 추천사 청탁이 많다. 신인작가의 첫 책이 많았던 탓도 있고, 추천사를 디딤돌 삼은 입소문 마케팅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천사 청탁할 때는 그분들에게 추천사를 꼭 써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서 제안해야 성공률이 높다. 은유 작가는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보다 우리 사회가 불우하다거나 실패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자기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멋짐’이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쓴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을 불우하거나 실패했다고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글이 많이 나올수록 사회적 편견이 많이 깨지리라는 것은 당연하고. 추천사 청탁 드리며 “ 『나의 두 사람』 은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딱 그런 책”이라고 강조했다. 은유 작가에게 받은 추천사는 내 생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아서 소름도 돋았고, 보도자료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아이디어도 얻었다.

 

그렇다면 박준 시인에게는?

 

2014년에 김달님 작가가 박준 시인에게 받은 사인 이미지를 보냈다. 당신의 팬이고, 당신의 글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이제 첫 책을 내려 한다고. 박준 시인은 정말 다정하신 분이다. 여운이 오래 가는, 계속 곱씹게 되는 추천사를 보내 주셨다.

 

추천사가 궁금하신 분들은 필히 책을 사셔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감사하다. (웃음) 책을 사기 전, 예스24에서 미리 보기로 ‘뒤표지’를 보셔도 된다.

 

김달님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한동안 기쁨을 앓았다. 첫 책을 지금의 출판사에서 낼 수 있게 된 걸 큰 행운으로 여긴다.” ‘앓았다’는 표현에 빙그레 웃게 되더라. 편집자이자 대표 독자로, 이 책을 특히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나?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사랑이 무엇인지 각자 나름의 답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따뜻한 힌트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 누구에게라도 사랑은 꽃핀다는 사실 덕분에 나 또한 많은 위안을 받았다.


 


 

 

나의 두 사람김달님 저 | 어떤책
‘조손 가정’.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아이’. ‘엄마 없는 아이’. 이런 말들로는 단정지을 수 없는 삶의 무수한 결들이 ‘아이’의 문장에 실려 책이 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나의 두사람 #김달님 작가 #아름다운 문장 #눈밝은 편집자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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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9.01.21

이연재 끝내지 마세요 채널예스연재물중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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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버드

2018.05.18

글만 읽어도 따듯한분이라는 것이 느껴지네요. 좋은 인터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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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엄

알고 보면 전혀 시크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