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미래,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답이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급조된, 대안적 선택에 가까웠다. 미국의 경우 현재는 거의 이야기되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집중한다. 미국에서도 도입을 했으니 글로벌 스탠다드로써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다. 왜곡이다. 나는 이런 한국의 경우를 ‘정치적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보고 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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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의 정치적 슬로건이다.”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매일경제>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고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신장섭 교수의 말이다. 그간 기업과 경제에 관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제언을 해오며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 『금융전쟁, 한국경제의 기회와 위험』 , 『김우중과의 대화』  등을 쓰기도 한 신장섭 교수는 지난 3월 29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한국이 경제 독재 상태여야만 가능한 말이다. 경제 독재라고 했을 때 재벌을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재벌이 경제 독재자인가? 아무리 재벌이라도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 않은가. 그것이 한국 사회인데 어떻게 이것을 경제 독재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 문제를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파헤치는 근본적인 문제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경제민주화란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적 슬로건이라고 본다.”

 

신간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의 진로』 출간을 기념한 이날 간담회에서 신장섭 교수는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로 인한 국내 경제 정책의 오류를 비판하고 국민연금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현실적인 제언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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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자산이다


먼저 신장섭 교수는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의 진로』 를 출간하게 된 배경에 대해 “2015년부터 미국의 주류 행동주의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면서 이념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급하게 『경제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라는 책을 썼다. 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경제민주화의 연장선에서 논의가 되는데 이것 또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의 진로』 를 펴낸 이유다.”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그 뜻대로 번역하면 ‘집사준칙’(執事準則)이다. 고객을 위해 일을 대행하는 주체가 정말 고객을 위해 제대로 일하도록 하는 규범이다.(중략) 그렇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고객이 돈을 맡긴 뜻에 맞게 기관투자자들이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만드는 준칙이어야 한다.(5-6쪽)

 

집사, 즉 스튜어드가 돈을 맡긴 고객을 위해 성실히 일해야 한다는 개념이 스튜어드십 코드이지만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를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이상하다. 돈 맡긴 사람들의 집사가 아니라 자기들이 주식 투자를 한 기업을 관리하는 집사로 환치해서 사용이 되고 있다.”고 신장섭 교수는 비판했다. 책에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을 스튜어드십 코드 집행의 전위대로 만들려 한다.”(11쪽)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 신장섭 교수는 이와 같은 흐름에 어떤 맹점이 있는지 분석했다.

 

“국민연금이 기관투자자를 통해 기업에 관여도 하고, 압력도 넣으면 기업이 더 건전해진다는 전제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국민연금은 기업 개혁 수단이 아니다. 국민 노후 자산이다. 실질적인 공기업으로 볼 수 있는 국민연금의 자산은 공기업 가운데 가장 많다. 성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2040년이 되면 최대치가 예상이 되는데 2050년이 되면 기금이 급감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기금이 급격히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이후에는 국민연금이 한국 최대의 부실 공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국정 3대 과제’ 안에 넣어야 할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문제가 이토록 시급한데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국내 30대그룹 주요계열사 평균 9%가량의 주식을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신장섭 교수는 62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민 노후자금을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고, 국민연금의 힘을 ‘기업개혁’을 하고 ‘공정경제’를 실현하는 데에 사용하겠다는 방침”(11쪽)만을 표명한 정부의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를 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급조된, 대안적 선택에 가까웠다. 미국의 경우 현재는 거의 이야기되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집중한다. 미국에서도 도입을 했으니 글로벌 스탠다드로써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다. 왜곡이다. 나는 이런 한국의 경우를 ‘정치적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보고 있다. 2015년 금융위원회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처음 얘기했을 때와도 다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슈 등을 거치면서 굉장히 강한 정치적 색을 띄게 되었다. 대통령의 재벌 개혁 방안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들어간 것이다. 세계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공정경제 실현 수단으로 이야기되는 곳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연금 사회주의?

 

“기관투자자들이 실제로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투기’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거다. 이들이 가치 상승에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주식을 갖고 있는 기업에게 경영을 잘하라고 압력하고, 실제 기업의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아주 적은 비율에 불과하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 부분을 크게 강조한다.”

 

이른바 ‘기관투자자 행동주의’,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압력을 넣어야 궁극적으로 기관투자자에게 돈을 맡긴 고객들이 좋아진다는 이 개념에는 여러 의문점이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개입하고 기업의 가치상승을 도와 주식의 상승을 기다리는 “인내심 있”는 기관투자자는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며, 심지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 가치를 왜곡하기까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외면하고 “오직 스튜어드십 코드에서는 자신들의 주식 투자가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 즉 집사 의무를 다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신장섭 교수의 설명이었다.

 

“미국에서 기관투자자 행동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80년대다. 지난 30년 이상 동안의 결과를 보면 이것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높였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자율규제’라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금 한국은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활용에 이용하고 있는 것에 의문이 든다. 이것은 나아가면 ‘연금 사회주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서 정부가 원하는 정책 어젠다를 기업에 활용하겠다, 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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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국민연금 운용은 엉망이었나


신장섭 교수는 각 국가의 연금제도가 운용 방식이나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국민연금의 2000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금운용수익률이 6.1%로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하며 ‘국민연금 개혁론’의 빈틈을 파헤쳤다. 신장섭 교수는 국민연금에 대해 “기금 운용 면에서 봤을 때 세계에서 가장 잘 운용된 연금”이라고 말하고 “물론 한국은 중진국으로써 채권수익 비중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수익은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표를 던졌고, 이것이 최순실 국정 농단과 연결되어 국가적 비판을 받으면서 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치적 스튜어드십 코드’가 되었다고 본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투표 직전까지 삼성물산의 주가가 15~20% 올라가는 상태로 계속 유지가 됐다. 내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까지 합병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주명부확정기(주주총회에 앞서 한 달가량 주주명부에 변동이 없도록 하는 기간)에도 주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이 기간은 합병 찬성이나 반대와 관계없이 유일하게 수익률 기준에서만 매매가 이루어지는 때인데 심지어 합병 반대표를 던졌던 외국인 투자자들도 주식을 팔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전체적으로 수익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표를 던진 것이고, 국민연금은 수익에서 괜찮다고 생각하며 찬성표를 던진 것이니까 국민연금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신장섭 교수는 “사실 관계에 입각해 현재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직성과 전문성이 다 떨어진”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폐기하고 “기업의 장기가치 상승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가 제대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장섭 교수는 건설적 기관-기업 관계를 위해 다음의 7가지 제안을 던지며 간담회를 마쳤다.
 
1. 주주제안에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 합리화를 의무화하자
2. 장기투자자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자
3. 관여내용 공시(公示)를 의무화해야 한다
4. 기관투자자 투표의무화는 폐기해야 한다
5. 포괄적 ‘수탁자 규정’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6. ‘5%룰’은 더 강화해야 한다
7. 투표와 관여는 투자결정 부서에서 함께 관장해야 한다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의 진로신장섭 저 | 나남
기관투자자 행동주의의 역사와 실패를 고찰하고, 영국과 미국에서 대안적 선택으로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의 허상을 밝힌 후, 한국에서 변질 도입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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