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렛 문혜원’ 이후의 문정후
내게 음악은 식사와 같다.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
글ㆍ사진 이즘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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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이들에게 뷰렛은 낯선 이름이 아니다. 2002년 결성 이후 가녀린 감성과 선 굵은 얼트 록을 교차하며 섬세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뷰렛은 선명한 바이올렛 빛으로 기억 속에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보컬 문혜원은 단 하루도 추억 속에 머무르지 않았다. 전국 공연장과 클럽을 통해 팬들과 실시간으로 호흡하고 '뷰렛은 영원하니까!'를 외침과 동시에 뮤지컬 배우로도, 단독으로도 그는 음악을 절대 놓지 않았다. 인터뷰 전 예상대로 '음악은 본능이고 천직이다!'라 말하는 목소리에는 당당함과 자연스러움이 공존했다.

 

음악 인생 15년 만에 솔로 앨범 <대항해시대> 를 발매한 문혜원은 '옥으로 된 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새 이름 문정후로 활동을 시작했다. 섬세하고 진지한 메시지와 오케스트라 세션을 더한 앨범은 십 대 시절의 예민한 감성과 결혼 후의 성숙한 감성을 인생이라는 항해로 아우른, 개인의 인생을 모두와 나누고픈 문혜원의 새로운 도전이다. 부지런히 향후 활동을 계획하는 문정후를 홍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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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쇼케이스 이후 다양한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듣고 싶다.


가장 가까이 있는 공연은 3월에 홍대 네스트나다와 판교의 커먼키친, 4월 22일 광화문의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의 일정이다. 앨범 기획 때부터 기획했던 콘셉트인 1인 음악극 형식도 준비하고 있고, 연말에는 팬들과 함께 하는 송년회도 마련할 예정이다.

 

1인 음악극을 꾸려보고 싶다고 하였는데 흔한 형식은 아니다.


뷰렛과 뮤지컬 활동을 병행하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한때는 내가 여러 모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니 글, 음악, 연기 등 다재다능한 부분에서 재능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더라.

 

결정적인 계기는 뮤지컬 <서편제>였는데,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한 두 달 정도 배우면서 그 형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명창 한 명, 고수 한 명은 물론 대규모로도 구성이 가능하고, 국립극단과 길거리를 오가는 등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물이지 않나. 자유로운 방법으로 유연한 구성을 꾸려보고 싶은 열정이 생겼다.

 

<대항해시대> 앨범은 언제부터 준비했는가.


20곡 정도의 예비 곡을 만드는 과정이 4~6개월 걸렸다. 공연을 하면서 앨범을 구상했고, 몇몇 곡들은 이전에 써놓은 소설이나 에세이가 노래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여 앨범에 수록했다. 데모 작업을 마친 뒤 9월부터 본격적인 녹음을 했다.

 

앨범 발매 전에도 라이브 공연을 통해 수록곡들을 미리 부르기도 했다. 이때도 <대항해시대> 타이틀과 콘셉트를 염두하고 있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공연을 하면서 꾸준히 곡을 썼고, 노래를 불렀다. 이후 어떤 그림이 나올지도 예상치 못했다. '항해'라는 테마를 정하게 된 것은 데모 작업이 끝나고 앨범에 들어갈 곡을 추리던 때였다. 뷰렛에서는 할 수 없는, 클래식과 오케스트라 스케일을 겸비한 컨템퍼러리 팝을 목표로 정했고, 기획 과정은 스타일리스트, 뮤직비디오 촬영, 디자인하는 친구들 등 앨범 제작에 관련된 모든 친구들이 함께 회의하며 진행했는데, 자켓 작업을 맡은 동료가 '누나하면 긴 머리가 상징이니까, 긴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휘날리는 걸 주제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줬다.

 

'항해'라는 표현, 콘셉트 등 웅장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앨범인데 앨범의 메시지는 소박한 면이 있다.


각자의 인생이나 여정이 대항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 남들과 견주었을 때 크게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용기를 얻어 작업했다. 스케일도 큰데 메시지까지 무거우면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컨템퍼러리 팝이라는 표현처럼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나 토리 에이모스(Tori Amos)가 연상된다. 작업 하면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는지.


특정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이제껏 들어왔던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결과라 하고 싶다. 가사 없는 'Intro'도 고등학생 때 만든 곡이고. 시네이드 오코너와 토리 에이모스는 물론 내가 살아오면서 들었던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나온 결과인 것 같다. 특히 학창시절의 감성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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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도 10대에 쓴 곡이라고 들었다. 결코 평범하진 않았던 학창시절이었을 것 같은데.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데, 홍대에 처음으로 간 클럽이 드럭이었다. 그 날 라인업이 아주 화려했다 ? 크라잉 넛, 옐로우키친, 노브레인, 위퍼 ?. 알다시피 드럭이 좁지 않나. 무대와 내가 서 있는 곳이 너무 가까워서 공연을 보며 '아, 내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진지한 메시지가 '이방인'이나 'Crying over u'처럼 슬프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곡의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뷰렛 때부터도 단조가 드문데, 의도적인 방법인지?


특별히 그를 의도하고 만들진 않는다. 우선 노래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입히는 스타일이다. 멜로디와 코드를 작업하고, 계속 노래를 들으면서 그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소재를 연결하면서 주제를 이끌어낸다. 메시지가 먼저는 아니다.

 

<대항해시대> 의 웅장한 스케일은 사실 '웃지 않는 공주' 등 뷰렛에서 동화 시리즈나 판타지로 먼저 발현된 바 있다.


'웃지 않는 공주'는 교원(뷰렛 기타리스트)이가 먼저 제목을 '웃지 않는 공주'였음 좋겠다고 얘기한 거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노래 내용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같아서 붙였고, '성냥팔이 소녀'도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이 꼭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리게 하여 만든 제목이다. 어린 시절 동화를 정말 많이 읽었는데 그 순수한 감성이 작업할 때 묻어나는 것 같다. '뷰렛에서는 이렇게 해야지', '문정후에서는 이렇게 해야지' 등 구분지지는 않았다.

 

사춘기의 감성을 담고 있는 곡도 있는 반면 '유하'나 '오늘 밤 결혼해줘'는 결혼을 했기에 나올 수 있는 곡이라 생각한다. 결혼 후의 변화가 있을까.


다른 이와 삶을 함께하게 되니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더라. 무의식적인 부분에서 거부했던 사소한 여러 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뷰렛 시절에는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었다면, 결혼 후에는 곡이나 메시지를 한 차례 걸러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잭 더 리퍼>, <노트르담 드 파리>, <헤드윅> 등 뮤지컬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초창기 뷰렛과는 사뭇 창법이 달라진 모습이다.


지금 이 목소리가 나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다. 예전에는 밴드 보컬이라면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변주를 줬는데, 사실 타고나기는 소프라노 스타일이었다. 만약 뷰렛 때처럼 계속 긁고 목을 혹사했다면 지금쯤 노래를 부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뮤지컬을 배우면서 나의 내츄럴 보이스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기교 없이 올바른 발성을 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80살 넘어서도 패티김 선생님처럼 계속 노래하고 싶다.

 

셀린 디온, 휘트니 휴스턴이 셜리 맨슨, 코트니 러브를 시도한 거랄까.


시절이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너무 맑게 부르면 또 내가 쓴 가사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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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서 특히 표현이나 창법에서 신경 썼던 곡이 있나.


대부분 창법에서 신경을 썼는데 그나마 높지 않은 '대항해시대'를 가장 편안히 부르게 된다. 곡을 녹음할 때도 보통은 보컬 디렉터가 있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보컬을 잡아가느라 오래 걸렸다. 앞의 녹음과 뒤의 녹음본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골라내는 과정도 모두 직접 했다.

 

문정후와 뷰렛 활동을 공존하고 있는데 향후 뷰렛의 활동에도 문정후의 색이 더해질지?


뷰렛과 문정후는 구별해서 갈 것이다. 뷰렛은 뷰렛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원이의 작업 비중이 점점 커지는 등 밴드 멤버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로 방향을 잡을 것 같다.

 

문정후라는 이름은 언제 정한 것인가.


옥홀 정, 만날 후. 옥으로 된 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의미다. 중성적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지만 스스로 익숙하지 않았는데 2~3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제 2의 음악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으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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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렛으로 데뷔한 지도 15년이고 뮤지컬 배우도 오래 했지만 솔로 앨범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금 늦은 출발이라고도 생각되는데.


오히려 적당히 잘 나온 것 같다. 좀 더 어릴 때 작업을 했으면 치기어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대항해시대> 는 거짓됨이나 군더더기 없이 진솔하게 만든 앨범이다. 뷰렛 활동을 할 땐 회사의 영향이나 외부 환경, 팬들의 기존 인식 등 다양하게 고려할 점이 많은 반면 솔로 앨범은 작업 단계부터 나 스스로 주도해서 만들었다.

 

2002년 데뷔한 이후 휴지기 없이 꾸준히 음악을 하고 있다.


내게 음악은 식사와 같다.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 밥을 안 먹을 순 없으니까. 하나의 노래를 만들고 그 곡을 구성하면서 마침내 하나의 결과로 나오는 과정, 그리고 그 완성본을 제일 처음 혼자 듣게 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다. 음악은 본능이고 천직이다.

 

뮤지컬, 뷰렛, 문정후가 각각 문혜원에게 어떤 존재인가.


뮤지컬은 다른 사람이 쓴 대본과 캐릭터를 이해하고 소화한다.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향한 고민을 하게 해준 작업이다.

 

뷰렛은 나의 20-30대 젊은 시절의 나다. <대항해시대> 의 마지막 곡 '사춘기'가 십대 시절의 문을 닫고, 그 이후부터의 이야기가 뷰렛이다.

 

문정후는 지금의 나다. 그려왔던 것들, 아이디어, 다양한 장치와 실험 등 자유로운 운동장과 같다. 뷰렛은 기존에 잡힌 틀과 색깔을 유지해야 하지만 문정후는 온전히 내 의지와 생각대로 갈 수 있다.

 

마지막 이즘의 공식 질문. 인생의 앨범 3장이다.


펄 잼(Pearl Jam)의 : 전성기 때 에디 베더를 만난다면....으!
뷰욕(Bjork)의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의

 

뮤지컬 스코어도 꼽는다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불공평한 이 세상'
<대장금>의 '내가 가겠소'
<서편제>의 '원망'

 

 

인터뷰 : 김도헌, 정유나
사진 : 박수진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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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