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시크의 아이콘 샤를로뜨 갱스부르는 프랑스 음악계 거장 세르주 갱스부르와 그의 뮤즈이자 자유분방한 여성상을 제시한 배우 제인 버킨 사이에서 태어났다. 엄마처럼 살짝 내린 앞머리에 무심하게 내려앉은 긴 머리칼과 길쭉한 몸매는 그에게 청초한 이미지를 부여했고, 모델로 시작한 연예계 커리어는 곧 영화, 음악으로 확장되었다. 현재 가수를 겸하고 있지만, 본업은 배우이며 리치 앤 포베리의 「Sara perche ti amo」가 OST로 삽입된 <귀여운 반항아>에 출연했다.
미발매 곡과 라이브를 담은 4집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Songbird in a cage」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전곡 작사를 맡은 갱스부르는 죽음을 직면한다. 음반 전반부에 포진된 괴기한 노래들은 죽음 이후의 물리적 상황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흰 천으로 덮인 창백한 피부와 부드러운 머리칼만 남은 채 움직임을 멈춘 영혼 그리고 남겨진 자의 상실감을 다룬 「Lying with you」의 미스터리한 기계음과 「Kate」 (죽은 언니의 이름)의 예측 불가능한 현악 편곡은 불가항력을 향한 모종의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다프트 펑크의 멤버 기 마누엘 드 오맹 크리스토(Guy-Manuel de Homem-Christo)가 참여한 여섯 번 째 트랙 「Rest」에 와서야 샤를로뜨는 먹먹하게 들리는 베이스를 따라 정제된 목소리로 떠난 자를 배웅하며 철저히 슬픔의 바다에 몸을 담근다.
음반은 죽음을 지나 산 자의 고뇌를 당혹스러울 정도로 경쾌하게 풀어놓는다. 비운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시 「Mad girl’s love song」의 구절을 옮긴 「Sylvia says」는 애시드 재즈와 펑크(Funk), 디스코가 버무려진 누 디스코 스타일의 편곡에 생존자로서의 삶의 방향을 갈구하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언니 케이트의 무덤에 다녀온 후의 감상을 담은 「Les Oxalis」는 아프리칸 리듬 퍼커션에 맞춰 가사를 읊는 사를로뜨의 독백에 이어, 딸과의 대화를 삽입해 죽음과 삶, 탄생으로 이어지는 운명을 역순으로 배치했다. 그야말로 인생 전체를 통괄하는 완전한 마무리다.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모른다. 그게 내가 괴이한 영화를 찍고, 폭력적인 음악(
하이데거는 죽음으로 선구(先驅-미리 달려가 봄)함으로써만 인간은 진실된 한 명의 개인이 된다고 했다. 정확히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행보다. 그는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무기력하게 떨고 있는 개인이 되길 주저하지 않고, 이미 던져진 세계에 다시 자신의 의지로 몸을 던진다.
정연경(digikid84@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