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제 사진 때문에 절판된 것 같아요 (G. 최민석 작가)
오늘은 입담이 기대되는 소설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이 분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것 같아요. 솔직하고, 담백하고, 재밌는, 그러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쓰시는 분입니다. 최민석 소설가님, 모시고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2017. 12. 21.)
글ㆍ사진 김하나(작가)
20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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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삶은 이야기였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단지 이력서에 몇 줄 써질 경력에 불과하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밤하늘의 별처럼 잠들지 않게 하며, 이불을 덮고서도 그 속에 빠져 새벽을 맞게 하는, 즉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여전히 흘러가고 있기에, 또 하루를 온전히 살게 하는 바로 그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삶은 그 사람의 묘비에 새겨질 몇 줄의 이야기였고, 그 사람의 후손들 입에 담겨질 영웅담과 추억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이름만으로도 눈물 맺히는 사연이었다.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이 써 온 이야기였고, 그 사람이 꿈꿔 온 이야기였고, 그 사람이 지우고 싶은 이야기다. 짧건 길건 인생을 살아온 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지나온 삶을 퇴고하고 싶다. 나는 그렇기에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퇴고할 수 없기에, 다시 쓸 하루치의 원고지가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최민석 작가의 소설 『풍의 역사』 속 한 구절이었습니다. 결국 소설가란 누군가의 삶을 써내려가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찾아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나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요. 문득, 지난 방송에서 제현주 작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나요. 좋은 인생이란 사후적인 종합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내가 좋은 삶을 살았는지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겠죠.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채워가야 할 빈 원고지가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 - 최민석 작가 편>
김하나 : 작가님의 책을 읽어 보면 가장 큰 특징이 뭐냐 하면, 주 5일 글을 쓴다는 거예요. 저는 너무 놀라운 지점이었어요.


최민석 : 6일 쓸 때도 있습니다. 바쁘면 7일 쓰고.


김하나 : 세상에. 요즘도 그러시나요?


최민석 : 요즘은 글감이 별로 없어서...


김하나 : 사실 초기부터 글감이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최민 : 요즘은 청탁도 없고 글감도 없고 영감도 없고 끈기도 없고, 그래서 되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김하나 : 되게 올곧게...(웃음)

 

김하나 : 『꽈배기의 맛』은 사실 많은 사연이 있죠.


최민석 : 무슨 사연이 있나요(웃음)?


김하나 : 개정판이잖아요.


최민석 : 아, 그렇죠.


김하나 : 예전에 나왔던 책 제목을 제가 한 번 외워 볼게요.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


최민석 : 오우!


김하나 : 이 제목을 최민석 작가님의 아버님도 못 외우신다고 했잖아요.


최민석 : 저랑 김하나 작가님 둘밖에 없습니다.


김하나 : 이제 우주에는 두 명이 있습니다. 제가 방송에 오기 전에 ‘청.방.좌.눈’ 이렇게 외웠어요.


최민석 : ‘청.방.좌.대’


김하나 : 아, ‘청.방.좌.대’라고 불리나요?


최민석 : 네, ‘눈물의 대서사시’이기 때문에.


김하나 : 이 책이 몇 년도에 쓰신 책인가요?

 

최민석 : 2010년도부터 2012년까지 쓴 거죠. 그리고 책이 2012년 9월에 나왔다가 11월에 절판되는 운명을 맞이했죠.


김하나 : 원래 책의 표지에 최민석 작가님 사진이 들어간 것도 절판의 요인이 됐을까요?


최민석 : 요인이 아니라 사실 그게 전부죠. 그것 때문에 망했죠.


김하나 : (웃음) ‘최 작가 사진 때문에 판매가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면서요.


최민석 : 그 뒤로 책날개에도 제 사진을 안 넣어요. 『풍의 역사』, 『베를린 일기』,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 전부 다 제 사진이 없습니다. 저는 『쿨한 여자』 때부터 사진을 빼려고 했는데...


김하나 : 그런데 사실, 잠시만 말씀드리자면, 너무 똑같은 그림이 있어요. 사진이 없어도 알아볼 것 같은 너무 똑같은 그림입니다.


최민석 : 아, 네(웃음).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에도 사진이 없습니다. 저는 사실 사진 넣는 거 안 좋아합니다.

 

김하나 : 실제로 작가님을 만나면 독자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생각보다 이 사람 꽤 멀쩡하잖아? 심지어 이성적이야!’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고요. 독자들이 작가님에 대해서 갖고 있는 선입견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최민석 : 저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데... 제대로 살면 안 됩니까, 저는(웃음)? 인간이 건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웃음)? 만나서 왜 다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김하나 : 모르시겠어요(웃음)?


최민석 : 아마 글을 읽고 뭔가 독자들의 상상이 덧대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왜 하시는 말씀이 멀쩡한 거죠?’ 하시는데요. 그리고 제가 글쓰기 강의를 종종 하는데...


김하나 : 글쓰기 강의, 진짜 궁금한데요?


최민석 : 강의에 오면 제 교재가 있는데, 실망하셨다는 거예요. 왜 교재가 있냐는 거예요. 왜 이렇게 준비를 했냐는 거예요. 교재가 있어야 뭘 같이 읽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일지 몰랐다’고 하시는 거예요. 조금 당황스럽기는 한데, 저도 계획도 하고 계획대로 실천도 하고 건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평범한 시민입니다. 투표도 꼬박꼬박 하고.

 

김하나 : 신인 시절의 나에게는 있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것이 있다고 하셨어요. 뭘까요?


최민석 : 배짱, 대담함, 그때의 총기, 그때의 영감, 그때의 끈기, 그때의 팬클럽 회장(웃음)...


김하나 : (웃음)얼마 전에 메일 받으셨다고 했죠?


최민석 : 네, 제가 첫 책이 나오기 전에 감사하게도 팬클럽이 생겼어요. ‘최민석의 쿨한 팬들’이라는 팬클럽이 있었는데...


김하나 : 『쿨한 여자』 때문에 생긴 건가요?


최민석 : 그렇죠. 그 단편소설을 보고 이 분들이 소설 공부를 하는 분들인데, 팬클럽을 만들어서 정모도 하자고 하고 재밌는 활동을 했던 분들인데요. 얼마 전에 저한테 ‘팬클럽 운영을 폐쇄하겠습니다’라는 메일이 왔더라고요.


김하나 : 그걸 또 왜 메일을 보내줘(웃음)...


최민석 : (웃음) 그리고 그때 당시의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지금 다 결혼을 해서 잘 살고 계세요. 저도 결혼을 했고. 저희는, 당연히 연애 공동체는 아니었지만, 자연 발생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달팽이처럼 거북이처럼 저희 삶의 껍질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찾을 수 없어요. 이제 머리조차 찾을 수 없어요.


김하나 : (웃음) 팬클럽 분들도 참 어울리네요.


최민석 : ‘쿨한 팬들’. 그러니까 정말 이름처럼 된다고, 정말 쿨하게 헤어졌어요.

 

김하나 : 신인 시절에 나에게 있었던 것들-배짱, 대담함, 끈기, 이런 것들이 점점 없어진다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도 있을까요?


최민석 : 눈치, 신경 쓰기, 굽신거림(웃음)... 옛날에는 제가 청탁 거절도 그렇게 자주 했거든요.


김하나 : 네, 엄청 대쪽 같은 작가이셨던데요.


최민석 : 요즘은 웬만하면 다 합니다. 최근에는 어제 하나 거절했고, 그거 빼고는 진짜 웬만하면 다 합니다. 인터뷰도 불러주면 다 가고.

 

김하나 : 팟캐스트도 이렇게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해도 오시고요.


최민석 : 아유, 땀이 나요(웃음).

 

김하나 : ‘나는 B급 문학을 지향하는 자’라고 하시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A급 문학’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최민석 : 일단 제 스스로 그렇게 평가했기 때문에, A급이라는 건 제가 정한 기준에 도달한 문학인 거죠.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소설로써 부끄럽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건, 일단 순문학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주제의식이 좋아야 되는 거죠. 주제가 좋아야 되고. 그 다음 서사 구성이 훌륭해야 되는 거죠. 똑 부러질 만큼 훌륭해야 되고, 스타일도 굉장히 멋있어야 되는 거죠. 그 스타일이라는 건 문체와 문장과 전개 방식인데. 저는 좋은 글의 세 가지 요건을 통일성, 문단 간의 응집력, 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의 흐름이 굉장히 좋아야 되는 거죠. 이런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잘 갖춰진다면, 저는 그걸 A급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김하나 : 그렇다면, 그런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비켜 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최민석 : 그럴 때도 있고요. 생각하기에 ‘이건 아직 내가 할 영역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일부러 B급 문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요.


김하나 : 그러면 내가 어느 정도 연마를 거친다면 A급을 지향하는 부분도 있는 건가요?


최민석 : 해야죠. 작가는 당연히 하나만 해서는 안 되고요. 작가 생활의 좋은 점이 뭐냐 하면, 글쓰기는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저희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 은퇴 시기가 굉장히 늦어요. 운동선수들은 연봉과 몸값이 굉장히 높지만 굉장히 짧게 활동하고 은퇴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는 루게릭병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으면 70대까지도 작품을 쓸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하나의 스타일만으로, 제가 올해 갓 마흔이 조금 되었는데, 하나의 스타일만으로 남은 30년 동안 계속 쓸 수가 없는 거죠. 지금까지 써 온 몇 권의 방식으로 시작을 했다면, 저는 스릴러에도 관심이 있고요. 당연히 순문학으로 출발을 했으니까 순문학도 계속 쓸 거고, 장르 문학도 관심이 있고, 사랑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고, 가족 드라마에도 관심이 있고, 여러 가지를 쓰고 싶은 거죠. 그래서 ‘A급 문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제가 스스로 정한 훌륭한 문학의 기준에 도달하는 작품을 쓰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김하나 : ‘B급 문학을 지향하는 자’인데 또 ‘A급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지향점은 거기에 있기도 한 것이군요.


최민석 : 네, 그렇습니다.


김하나 : B급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B급과 A급을 오갈 수 있으면 더 좋겠네요. 왜냐하면 더 다양할 테니까요.


최민석 : 그렇죠. C급, D급, A 플러스급, 다 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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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