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장호르몬 주사는 확실히 키가 크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맞추면 되겠네요?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글ㆍ사진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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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imagetoday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경험이 있죠. 아이를 벽에 세우고 얼마나 컸는지 표시했던 기억 말입니다. 매일 봐서 그런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은데 몇 달 전보다 훌쩍 커버린 걸 보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해준 것도 없이 잘 커준 아이가 고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따뜻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이가 커가면서 키에 대한 집착으로 바뀝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나중에 얼마나 클지, 키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심지어 취업을 할 때,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한 젊은 여성이 TV에 나와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고 했던 배후에는 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단 궁금한 것부터 알아봅시다. 키가 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키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주 많지만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유전입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죠?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둘째는 영양입니다.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북한의 젊은이들은 우리 젊은이들에 비해 평균 20cm이 작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한두 가지 영양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양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적절한 칼로리와 단백질, 비타민과 미네랄이 모두 중요합니다. 칼슘이 뼈 성장에 좋다고 칼슘 보충제를 먹이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저는 신자가 아니지만 ‘내일 먹을 것을 오늘 걱정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은 우리 몸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몸은 내일 쓸 칼슘을 저장하지 않습니다. 칼슘이 부족하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잉의 칼슘은 모두 소변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콩팥에 부담을 주게 되는 거죠. 또 하나,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떤 영양소든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지 보충제로 섭취하면 몸에 나쁜 것 같습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통해 섭취한 비타민은 몸에 좋지만, 비타민제를 통해 섭취한 비타민은 오히려 몸에 나쁘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고기, 생선, 달걀, 콩 등을 통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해야지, 피자에, 햄버거에 정크푸드를 잔뜩 먹고 단백질은 따로 보충제를 먹겠다는 건 한참 잘못된 겁니다.

 

셋째는 호르몬입니다.


성장호르몬이 가장 중요합니다. 역시 자연적인 방법으로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는 방법이 좋지, 주사를 맞는 방법은 권하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성장호르몬 분비 촉진법은 적절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입니다. 요약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뛰어 놀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는 이렇게 교과서적인 말에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건 원칙일 뿐이고 반드시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편법이라 비난을 받든, 꼼수라 지탄받든 개의치 않습니다. 원칙대로 살면 손해를 보았던 역사에서 체득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물불 안 가리는 심정이 되면 사기꾼들에게 속기 쉽습니다. 키를 키워준다는 보약, 건강식품, 숨어있는 키를 찾아준다는 마사지, 기치료 같은 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속지 마세요.

 

거짓말이 아닌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장호르몬 주사입니다. 본디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쓰기 위해 개발되었지요. 하지만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아닌 정상적인 아이도 성장호르몬을 맞으면 급속 성장이 일어납니다. 예전에는 ‘어차피 자랄 키가 빨리 자랄 뿐 최종 신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문가들은 최종 신장도 어느 정도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성장호르몬 주사는 확실히 키가 크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맞추면 되겠네요?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선 주사 자체가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관절이 붓고, 아프거나, 두통이 생기거나, 당뇨병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면역 반응이 일어나거나, 드물지만 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심리적, 사회적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키가 작은 것은 병이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거의 매일 주사를 맞는 아이는 스스로 환자라고 느끼거나, 키가 작은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것, 나쁜 것이라는 관념을 갖게 됩니다. 주사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보통 성장호르몬 치료비로 1년에 1천만원을 잡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치료를 받아 키가 커지고, 가난한 아이들은 키가 작은 상태에 머무른다면 미래의 언젠가는 정말로 키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가 돼버릴지도 모릅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하나요?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자신에게 만족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어려운 이웃을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돈만 있다면, 좋은 대학만 나온다면, 저 차만 몬다면, 저 명품백만 든다면 하는 식으로 ‘조건부 행복’을 추구해서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조건도 끝이 없거든요. ‘키가 조금만 크다면’ 또는 ‘코가 조금만 더 높다면’이란 조건 또한 고급차나 명품백에 대한 욕망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충족되면 곧바로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듭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완벽에 대한 반론』이라는 저서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제안합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 능력과 성취는 '선물로서 주어진 것(giftedness)’이며, 자유로워지려면 ‘자신의 기원을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떤 시초’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물로 주어진 것을 기획하고, 지배하고, 틀에 맞추려고 할 것이 아니라 경외하고, 감사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권고합니다. 또래보다 작다고 몇 년씩이나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혀 부모가 정한 기준에 드는 아이를 ‘만들어’낸다면 대체 그건 뭘까요? 특정 대학 무슨 과를 보내기 위해 어려서부터 경시대회 입상 기록을 모으고, 돈을 주고서라도 봉사 실적을 쌓아 아이의 삶을 ‘기획’하는 건 뭔가요? 1킬로그램짜리 광어만을 길러 출하시키는 양어장이나, 근수가 많이 나가는 소를 키우기 위해 항생제며 호르몬을 먹이는 목장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자녀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해 줄까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가을에 피는 꽃도 있고, 심지어 겨울에 피는 꽃도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잘생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못난 사람도 있고, 공부 잘하는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딱히 잘하는 게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키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도 있고, 뚱뚱한 사람, 얼굴에 점이 있는 사람, 머리가 곱슬곱슬한 사람도 있고요. 그러나 모든 사람은 고귀하며 반드시 사회에 쓸모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울려 함께 울고 웃고 기대며 사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키가 작다고 고민하는 아이에게 부모나 의사가 이런 말을 들려주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완벽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저 / 김선욱 감수 / 이수경 역 | 와이즈베리 |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밝은 전망과 어두운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고 말한다. 밝은 전망은 인간을 괴롭히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와 예방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고, 어두운 우려는 우리의 유전적 특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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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호르몬 #키 #성장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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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