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모든 걸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예우를 다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국가가 안보 위협에 빠졌을 때, 누가 그들처럼 목숨을 걸고 우리와 우리 가족과 나라를 위해 싸우겠습니까?” 정상규 저자는 말했다. 평범한 한 청년이 독립운동가들의 빛 바랜 흔적을 찾아가면서, 그 정보들을 모아 앱을 만들고 책을 쓰게 된 이유였다.
그는 지난 2015년 ‘독립운동가’라는 이름의 비영리 앱을 개발해 배포했다. 이 앱을 설치하면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의 서거일마다 알람을 받아볼 수 있고 해당 인물의 약력과 사진, 업적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 앱은 186명의 숭고한 삶을 증언하고 있고, 그 가운데 67명의 이야기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에 담겼다.
광복을 맞은 후 72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앞에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쌓여있다. “서거일이 역사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가 고작 186명”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삶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축적한 부와 지위는 아직까지 건재하다.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은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외면당하고, 자신의 안위만 추구한 이들은 호의호식하는 곳.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헬조선’이라 부른다. 모두가 탈출을 꿈꾸는 이 땅이 ‘자랑스러운 조국, 지켜야 할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기억돼야 할 사람들과 응당 비난 받아야 될 사람들을 가려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에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가 있다.
미국 영주권 포기하고 ‘헬조선’으로 돌아온 이유
‘독립운동가’라는 앱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2015년에 앱을 만들었는데, 당시에 가장 이슈가 됐던 게 국정화 교과서였어요. 왜곡되거나 획일화된 역사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죠. 그런데 문제는 근현대사 교과서나 한국사 시험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독립운동가의 수가 너무 적다는 거였어요.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운동가가 2만 명인데, 교과서에는 채 20명도 안 나와 있는 거죠. 이 숫자가 계속 반복되고 있고요. 각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교과서들을 다 봤는데도 등장하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왜 이 사람들만 중요한 거지?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게 ‘독립운동가’ 앱을 만든 시작이었어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앱 사용자가 책 집필을 부탁한 적도 있다고요.
저학년 자녀를 둔 분이셨는데, 아이한테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들려주고 싶으셨대요. 그런데 앱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조금 한계가 있다고, 책으로 내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책을 한 권 썼었거든요. 『Ryan 정이 말하는 미국 유학의 모든 것』 이라고, 그 책을 쓸 때도 굉장히 오래 걸렸고 많이 힘들었어요. 책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실 망설였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를 쓰신 이유가 있나요?
그때 지하철에서 대학생 무리와 마주쳤어요. 하필 제 귀에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들렸고요. 무슨 소리인가 하고 듣다 보니까 다들 이민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무슨 나라냐고 하면서요. 그 말을 듣는데 굉장히 화가 나더라고요.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나라인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닌데, 몇몇 소수의 인물들로 인해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젊은이들이 이민 간다는 소리를 하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앱에 글을 남겼는데 많은 분들이 ‘앱이나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그런 의견들이 모이면서 책을 출간하는 데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할 수만 있다면 헬조선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말해요. 저자님의 선택과는 정반대예요.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쓴 『Ryan 정이 말하는 미국 유학의 모든 것』이라는 책이 큰 원인이었어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나 교환학생들을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모았던 자료들을 모아서 쓴 책이었는데요. 그 책의 서문에 ‘이 책을 읽고 성공적으로 유학생활을 마무리 지은 후에 미국에서 성공해서 국위선양 해 달라, 당신들이 대한민국의 가능성이다, 당신들은 미국 사람이 되려고 미국에 온 게 아니다, 그 초심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을 적어놨거든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잊고 살았더라고요. 공부하면서 영주권이라든지 많은 기회에 노출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미국 사람이 돼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책을 다시 보게 된 거죠. 마침 한국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고요.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고요.
귀국 후에는 군에 자원 입대했어요.
급히 한국에 왔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버지 병세가 훨씬 더 안 좋았어요.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덜 중요한 것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죄송했어요. 후회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군대에 가야 될 나이더라고요. 일반 병사로 갔다가는 매일 부모님을 모시기 힘드니까, 오래 걸리더라도 장교로 복무하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딱히 고민도 안 하고 공군 장교를 준비했죠. 지금도 ‘내가 만약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끔찍해요. 그래서 제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고요. 한국에 와서 더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군대라는 조직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깨달음을 얻고 성장했어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오래된 역사가 아니에요. 제 아버지가 70대이시고, 친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를 겪으셨거든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예요. 옛날이야기가 아닌 거죠. 그런데 점점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본주의가 팽배해지다 보니까 계속 경쟁만 하고 자신의 능력만 올리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겉으로 보이는 재주는 많은데 인문학적 소양이나 국가관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요. 점점 세계는 하나가 돼가고 있는데 자기 나라에 대한 역사라든지 최소한의 안보관, 국가관이 없으면 어떻게 국격을 갖추고 당당하게 세계를 무대로 나아갈 수 있겠어요. 좋은 학교를 나오고 외국어를 잘해도 국가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거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대답도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민들도 알아야 하지만,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더더욱 이들을 기억하고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독립운동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책을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은데요. 그만큼 분노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어요. 저자님도 그러셨겠죠?
보훈처에 등록돼 있는 독립운동가는 2만 명이나 되는데, 서거일이 확인되는 사람은 너무 적어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 거죠. 제가 그 입장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씁쓸하더라고요.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누구는 기록에 남아서 후손들이 혜택을 입고 국가가 예우해주고, 누구는 생사도 모르게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거잖아요. 그들에게는 무슨 예우를 해주고 있을까요?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후손도 없는데, 무슨 예우가 있을까요. 후손이 없으니까 묘소를 관리할 수도 없을 거고 지원금도 없을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화가 나더라고요.
관련 자료를 모으시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료가 너무 많으니까요. 국가보훈처에는 없지만 독립기념관이나 광복회 자료에는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리고 그 자료들에는 고문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보면서 소름이 돋거나 가슴 아프고 눈물 날 때도 있었죠. 제 입장에서는 그 내용들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계속 곱씹고 소화시켜서 다시 써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감정 이입을 하게 됐고,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책을 쓰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앓이가 심해지고, 항상 힘들고 지치고, 역사의식이 조금이라도 결여돼 있는 사람한테는 저도 모르게 예전보다 비난의 수위를 높이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지셨겠어요.
처음부터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고, 그런 사람을 계속 보고 옆에 두고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사명감 비슷한 게 생기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무서운 것 같아요. 누군가 ‘독립운동가’ 앱에 등록되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있다고 제보해주면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도 ‘집에 가자마자 이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제 일이라고 생각되더라고요. 저한테 생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렇게 2년 넘게 생활하다 보니까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지고요. 저에게 힘을 주시고 같이 동참해 주시는 분들이 계속 생겨요. 그래서 저도 보람과 힘을 많이 얻었죠.
‘독립운동가’ 앱의 운영비용은 자비로 충당하신다고요.
앱을 혼자서 다 관리하다 보니까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매달 10만 원 정도의 금액이 나간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앱과 관련된 일을 제가 다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니까 다른 일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누군가는 앱에 광고를 실으라고 하더라고요. 회원이 10만 명쯤 되니까 광고 수입을 가지고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독립운동가’ 앱에 광고를 싣는 게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독립운동가들을 알리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광고를 실어서 돈을 번다는 게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독립운동가’ 앱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회원 분들께도 약속 드렸어요. 그 약속을 지키고 있고요.
기업들이 후원해줄 법도 한데요.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은 없으세요?
없었어요.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언론사에서 다뤄주지 않으니까 기업에서 알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언론에서 많이 다뤄주면 사회적인 책임이나 의의에 관심 있는 기업들이 나서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어요.
독립운동가들이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어요. 심지어 사회적 약자인 이들도 있었다고요. 그 사실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통계를 확인해 보니까 당시에 힘이 있었거나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더라고요.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직업을 보면 농부들, 천민들, 기생, 고아, 고등학생 같은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었어요. 거기에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이었죠. 항일의병도 정식 교육을 받은 군인이 아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낫, 호미, 곡괭이를 들고 일본 군인들과 싸운 거죠. 평범한 국민들이 독립운동을 한 거예요. 결국 그 사람들은 가슴으로 대화한 거예요. 이성이나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설득한 게 아니라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이걸 물려주지 말아야겠다’ 그런 순수한 마음과 가슴이 움직이는 말들로 뭉친 거예요.
그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보훈이라는 것, 그리고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이 특정 계층들만 하는 일이 아니고, 우리 같은 평범한 국민들이 70년 전에는 독립운동가가 됐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나선 거였다고요. 그걸 알게 되면 독립운동가들과 거리감이 줄어들 거고, 만약 우리나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우리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거잖아요. 그런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쟁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윤세주 장군’
책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따로 다루셨어요.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10/1도 안 돼요. 훨씬 더 많죠. 당시에 여성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건 훨씬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사회였고, 여성은 군대를 갈 수 없었잖아요. 나랏일은 남자들이 하는 거라는 인식도 있던 때였죠. 여성은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해야 했으니까 ‘독립운동 하러 가면 아이들은 누가 키우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여성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과부가 많아요. 남편이 독립운동 하다가 전사하고, 그에 영향을 받아서 본인이 독립운동을 하게 되는 거죠. 대표적인 경우가 남자현 열사예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 씨가 연기했던 인물이죠.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제가 자료를 조사할 때 약 400명 정도 있었어요. 그 중에서 기록이 남아있는 분은, 제가 파악했을 때 200분 정도였는데요. 사진도 없고 글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글이라고 해도 당시 신문 기사에 이름이 언급된 정도죠. 사진이 남아있는 경우는 정말 찾기 힘들어요. 이 책에서는 그 중 일부를 꼽아서 특집으로 다룬 거고요.
박열, 김상옥, 남자현, 김원봉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영화화됐습니다. 아직 조명 받지 못한 이들 가운데 ‘이 사람의 이야기는 작품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인물이 있나요?
너무 많아요. 지금 스토리펀딩을 통해서 열두 분 정도를 선정하고 있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분은 윤세주 장군이에요. 의열단의 창립 멤버로 의열단장 김원봉과 죽마고무였던 분인데요. 의열단은 처음에 소수정예로 운영되다가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당이라든지 군대의 형식을 갖추게 돼요. 그때 김원봉 선생이 약간 정치 쪽으로 빠졌다면, 윤세주 장군은 실질적으로 군대를 이용해서 중국의 공산당과 합작하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어요. 마지막에는 4천 명의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일본군 40만 명과 전투를 벌이다가 순직하셨죠. 그 전투에서도 본인이 앞에 나서서 이끄셨고,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후퇴하라고 부하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어요. 마지막까지 ‘단결해서 적들을 사살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고요.
윤세주 장군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열단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다 보면 윤세주 장군과 김원봉 단장은 정말 자주 등장해요. 지금 김원봉이라는 인물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윤세주 장군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이 분의 일대기가 굉장히 이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계속 전투만 하셨기 때문에 그냥 전쟁 영화 같거든요. 그런 점에서 얼마든지 영화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의열단에서는 단 한 명도 배신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봐요. 윤세주 장군도 그런 역할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국을 위해 기득권을 버린 위대한 가문’도 특집으로 다루셨어요. 대표적으로 이시영, 이회영 선생의 일가가 널리 알려져 있죠.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부가 있는 상태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들이 있고요. 당시 계급으로 천민이거나 백정인데 아버지와 아들이 의병장으로 활약한 경우도 있어요. 양진여 선생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하는데요. 그 분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너무나 감사했고요. 그런 분들 한 분 한 분이 의미가 있죠. 그런데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대로 된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요. 이런 걸 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죠. 저는 이런 분들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당시에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인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런 분들이 더 재조명이 돼서 알려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진정한 명문가라고 생각하거든요.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게 ‘쉽게’ 썼어요
독립운동가의 약력과 함께 그들의 정신과 신념을 나타내주는 말들이 수록돼 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굉장히 많은데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은 남자현 열사예요.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선생님도 떠오르는데, 그 분들은 잊혀진 영웅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고요. 남자현 열사는 돌아가실 때 이런 유언을 남기셨어요.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거든 너의 자손들에게 똑같은 유언을 하여 내가 남긴 돈을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하라’. 그런데 자손들이 그 말씀대로 해요. 실제로 광복이 되고 나서 김구 선생에게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줬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지난해에 군에서 제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보훈과 관련해서 사회적 약자라든지 유공자들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보훈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녹록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이제는 열정 외에 실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 법 지식을 쌓아서 조금 더 현실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국내에 많은 로펌들이 있는데 왜 사회적 로펌은 없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들의 로펌이 없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제가 앞장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책의 수익금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실질적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막연하게 이분들을 십시일반으로 돕자고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것보다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재능 기부를 한다든지, 어떤 플랫폼을 갖춰서 사람들을 모으는 게 필요해요. 그렇게 해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런 부분부터 바뀌면 정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인명사전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집필한 게 아니고,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게 쉽게 썼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어린 세대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이런 책을 통해서 어릴 때부터 국가관, 역사관이 생기면 애국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것들이 형성돼서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 사회의 기득권들 가슴 속에 국가관과 애국심이 지금보다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정말 영향력 있는 사람들까지 가슴 속에 국가관을 품어서 세계무대에서도 당당함과 자격을 갖췄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때 시민의식이 향상되고, 진정한 광복과 독립이 이뤄지고, 진정한 선진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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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정상규 저 | 휴먼큐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과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었고,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였습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gaster83
201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