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타고나길 ‘사유하는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현실의 우리에게 ‘생각’이란 참 어렵고 고된 일이다. 아이디어 회의가 코앞에 다가온 처지라면, 신규 기획안 보고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어디 좋은 생각 해내는 방법 없을까?’ 그런데 여기, ‘좋은 생각에 법칙 같은 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가 일하는 곳은 그 어느 업계보다 창의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진검승부를 벌이기로 유명한 광고회사. 생각하는 일이 직업인 16년차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유병욱 저자는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법칙은 없지만, 평균 이상의 확률로 좋은 생각을 만드는 태도와 과정과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생각의 기쁨』이 작가님의 첫 번째 책이에요. 독자 분들에게는 새로운 작가의 출현일 텐데요. 어떤 광고들을 만드셨고, 어떤 카피들을 쓰셨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책으로 인사드리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아직은 작가라는 단어가 어색해요. 하지만 광고 일은 꽤 오래 한 편이고, 운 좋게도 사람들이 들어봤음직한 카피들도 몇 개 썼어요. e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 카피를 2년 반 정도 썼고, 의자 브랜드 시디즈의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캠페인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맡아 하고 있어요. 수지가 CM송을 불렀던 ‘착한 드링크’ 비타500 광고도 많이 기억하시더라고요. ABC마트의 ‘세상의 모든 신발’ 광고, ‘너 이름이 뭐니?’라는 노래를 양희은 씨가 유쾌하게 불렀던 신한금융투자광고, W&Whale(더블유앤웨일)이란 밴드와 함께 했던 ‘see the unseen’ SK브로드밴드 광고, ‘문제는 가슴이 아니라 브라다’라는 카피의 비너스 광고도 있었네요.
생각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신선했습니다. 창의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창의력이란 어떤 것인가요?
재능이 아니라 단련이 필요한 것. 시간의 힘이 필요한 것. 광고 일을 하면서 창의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그들을 만나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입니다. 제가 만난 주변의 창의적인 사람들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중요한 건 ‘태도’ 같아요. 새로운 자극을 만나면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올 자극을 미리 재단하지 않고, 깊이 감탄하고, 그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자꾸 되새기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창의적이었어요. 제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탄과 단련의 반복’을 통해 조금씩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그래서 창의력은 ‘장착’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다고 봅니다. 창의력에도 법칙이 있으니, 이 책만 읽으면, 이 강의만 들으면 창의적이 될 거라는 말을 제가 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해요. 박웅현 작가님께서 써주신 추천사 중에 ‘우리는 너무 자주 천둥번개를 기대한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저도 100퍼센트 동의하는 바입니다.
오랫동안 광고 현장에서 일하셨기 때문에(16년), 좋은 생각을 하는 ‘방법’을 ‘사례’ 중심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더 수월하셨을 텐데, 오히려 ‘태도’와 같은 기본기에 대해 짚어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지나간 성공은 ‘훈장’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지만, 그 훈장은 실전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케이스 스터디의 함정이죠. 사례는 개별적인 것이고, 다시 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성공 사례에 집착하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히려 전 주어진 일을 깊이 생각하고, 주위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고, 일단 결정하면 돌아보지 않고 완성도를 높이는 일련의 태도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으로 치면 이게 기초체력이고, 폐활량이고, 단단한 하체라고 생각해요. 경험상 이런 본질적인 부분이 강한 친구들이 훨씬 즐겁게, 오래 일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작가님을 위기에서 구해준, 좋은 생각을 해내는 팁에 대해서 한 가지만 말씀해주세요.
네, 본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본질만 가지고 살 수 없죠. 전략만큼 전술도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영국 유학시절 창의성에 대한 수업을 듣다가 배운 팁이에요. 경쟁자가 하는 방식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하더군요. 아마 어떤 식으로든 패턴이 있을 거라고요. 거기서 딱 하나 또는 두 개를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바꿔보면, 놀라운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게 별게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그렇다면 제작하시는 과정에서 ‘생각의 기쁨’을 오롯이 느꼈던 광고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시디즈의 아이용 의자 ‘링고’ TV광고를 만들 때였어요. 아이 의자는 엄마가 구매를 결정하는 만큼, 카피도 엄마들이 지갑을 열기 좋은 방향으로 써서 광고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했습니다. ‘의자라는 이름의 투자’나, ‘생각에도 성장판이 있다’ 같은 카피였죠. 하지만 광고주 쪽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은 좀 달랐어요. 카피를 설명하기 전에 제가 예시로 들었던 ‘엄마 무릎에 앉던 아이가 스스로 의자에 앉기 시작한다는 건, 뛰어 놀던 아이가 생각으로 놀기 시작한다는 것’이란 문장이 더 좋다고 하시는 거였어요.
매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가가, 판매에 바로 도움이 되는 메시지보다 의자에 대한 근본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지지를 보내고 싶었고, 더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튜브에서 ‘생각이 자라는 의자’ 광고를 찾아보시면 아이가 의자에 앉으면서 흰 공간이 우주 공간으로 바뀝니다. 대체로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는 장면인데, 광고감독은 실제로 거대한 흰 박스를 만들어서 열어보자는 생각을 이야기하더군요. 광고 음악도 평소라면 기존에 있던 곡을 골라 썼을 텐데, 이 광고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곡을 만들어봤습니다. 미세한 디테일들이지만 실은 이런 것들이 차이를 만듭니다. 광고주의 생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생각, 광고감독과 오디오 프로듀서의 생각이 한 방향을 보고 섞이니 결과물도 만족스러웠어요. 생각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생각의 기쁨』에서 사소한 생각을 크게 키우는 사소하지 않은 태도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언급해주셨는데요. 그중에서 이것만큼은 정말 꼭 지켰으면 하는, 가장 중요하다고 꼽고 싶은 태도는 어떤 것인가요?
책 속에 ‘동굴 속으로’라는 소챕터가 있어요. 짜내지 않는 것. 평소에 틈틈이 채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평소의 시간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누구나 야근을 하고, 때론 주말을 반납하고 일을 하다 보면, 쉬는 시간엔 그저 잠을 청하기 바쁩니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나를 채우는 행동은 사치스럽게 느껴지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 생각이 중요한 일을 하신다면, 그 일을 오래 하게 만드는 힘은 ‘평소에 나를 채우는 시간’에서 옵니다. 지금 이 영화, 이 책이 내 일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릇에 물을 채우는 심정으로 나를 채워두는 것. ‘스퀴즈 아웃(Squeeze out, 짜내는 것)’ 대신 ‘스필 오버(Spill over, 넘쳐흐르게 하는 것)’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시도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습관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장을 수집하시는 것 이외에도, 카피라이터로서 ‘더 좋은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또 다른 일상적인 습관이 있으시다면 하나만 더 말씀해주세요.
주위에 좋아하는 사람 있으시죠? 연애의 감정 말고, 그 사람의 생각이 좋고, 말하는 방식이 좋고, 세계관이 좋은, 그런 좋아하는 사람이요. 그런 그 또는 그녀에게 요즘 뭘 좋아하는지, 무엇에 매력을 느끼는지를 틈틈이 묻습니다. 어떤 음악이 좋은지, 어떤 소설을 인상적으로 읽었는지, 어떤 드라마에 빠져 있는지 같은 질문이요. 제목을 받아 적고, 음악은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둡니다. 그리고 시간 날 때 그 콘텐츠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저는 ‘들어가본다’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콘텐츠는, 나 역시도 좋아하게 될 확률이 높거든요. 그렇게 틈날 때마다 내 세계를 확장해보는 연습을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평소의 시간’과도 이어지는 내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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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쁨 유병욱 저 | 북하우스
“생각의 기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16년차 카피라이터가 말하는 사소한 생각을 크게 키우는 사소하지 않은 태도에 관하여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루튼
2017.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