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꿈의 제인>의 한 장면
<꿈의 제인>(2016)을 보러 온 관객이 제일 먼저 압도당하는 순간은 아마 구교환이 연기한 제인의 첫 등장 씬일 것이다. 이민지가 연기한 소현은 내레이션으로는 “거기라면 누구라도 날 데려가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모텔방을 찾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화면 속 소현은 피가 흐르는 손목을 욕조에 담근 채 생을 포기하려는 중이다. 욕조 속에 퍼지는 검붉은 피에 마음이 덜컥 주저 앉으려는 찰나, 누군가 쿵쿵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면 그 곳에 제인이 있다. 펄이 들어간 아이셰도우 끝에 긴 속눈썹을 드리운 채, 제인은 붉은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길게 담배 연기를 뱉는다.
이윽고 그 입술에서 마법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안녕? 돌아왔구나?” 돌아왔다는 말은 대상이 잠시라도 그 공간에 속했던 적이 있어야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갈 곳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어 모텔방에서 혼자 죽음을 택하려던 소현에게, 제인은 너도 돌아올 곳이 있었노라고 말해준다.
제인은 영화 내내 입술 너머로 아무 것도 변변히 넘기지 못한다. 삼킨 게 있으면 그만큼 게워내고 야위어 간다. 안으로 넘어가는 게 없는 대신, 밖으로는 쉬지 않고 위로가 흘러 나온다. 제인은 소현이 그은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고는 그 위에 입김을 호호 불어주고, 불행을 벗 삼아 살아가는 태도와 시시한 행복에 대한 철학을 들려주며, 두 사람 사이 어색한 슬픔이 내려 앉았을 때조차 못 부는 휘파람을 불어 기어코 소현을 웃게 만든다. 구교환은 그런 제인의 표정과 목소리를 꾸미기 위해 다른 누구를 흉내 내는 대신, 특유의 높고 얇은 금속성의 목소리와 섬세한 얼굴 근육을 고스란히 제인의 것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도톰’의 미성숙함과 ‘두툼’의 투박함을 모두 피해가는 구교환의 입술은 말의 도마가 되어 필요한 위로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정량으로 썰어낸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제인의 태도는 일정 부분 구교환 본인의 것이기도 하다. 그가 감독한 일련의 단편들에서 웃음과 눈물은 늘 등을 맞대고 있었다. 친구의 집들이에 초대받지 못한 열패감을 이기려 몸부림 치는 남자의 저녁을 그린 <웰컴 투 마이 홈>(2013), 과거에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을 만나고 다니는 주인공 ‘기환’의 눈으로 독립영화인들의 현실을 그린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3), 대책 없이 커버린 선인장을 식물원에 두고 왔다가 다시 별 대책도 없이 찾으러 가는 여자들을 그린 <걸스 온 탑>(2017)은 모두 슬픈 현실을 유머로 다독이는 특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 구교환은 삶의 불가피한 고단함을 알고 있지만, 그 고단함을 부정하거나 과시하듯 보여주기보단 웃음으로 슬며시 덮고 능청을 부리는 쪽을 택한다. 마치 제인이 입술을 말아 못 부는 휘파람을 억지로 불어 소현을 웃기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꿈의 제인>이 들려주는 꿈의 여정이 제인의 입술로 시작해 제인의 입술로 끝나는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구교환이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에서 불행을 외면하지 않되 웃으며 견디는 태도를 그린 것처럼, 제인은 클럽을 찾은 관객들에게 말한다.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불행 속에서도 웃어 보이겠다는 의지를 머금은 그 미소가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오래오래 흔들었다. 그것은, 구교환의 입술을 통해 나왔기에 더 믿고 싶은 약속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wngml9512
2017.06.21
이 부분이 너무 좋네요. 영화를 보면서 제인의 말에 위로받던 관객들이 많이 공감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