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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분노

아무리 봐도 인생 그냥 복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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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지사 세상 이치는 무엇일까,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 가지고 뼈 빠지게 고민하면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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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식당에서 혼자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식당 주인이 나한테만 물을 안 줬다.  오늘은 다른 식당에서 혼자 물냉면을 먹었는데 가만 보니 나만 빼고 모든 테이블에 물주전자가 있는 것이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지...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혹시... 나이 많은 여자라서? 내가 힘없게 생긴 나이 많은 여자라서 이런 일을 당하나??’  문득 내 옷차림새를 다시 훑어봤다.  잘 때 입는 옷은 절대 아닌데 이대로 이불 속에 들어가도 편한 차림새이긴 하다만  ‘... 그렇다고 내가 물 서비스도 차별당하나?!!’  한 동안 잊고 지냈던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분노'가 갑자기 치밀어 올랐다.  언젠가 SNS를 통해 어떤 실험 결과를 봤는데, 팔뚝을 두 쪽 다 문신으로 덮어버렸더니 아무리 여자라도 사람들이 절대 무시 못했다.  그런데 또 다른 여자는 가슴에 커다란 장미 다발 그림을 문신했다가 그만 부작용으로 커다란 장미 다발 모양의 흉측한 흉터만 얻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냉면집의 물주전자는 비빔냉면을 시키면 같이 나오는 육수 주전자란다. 큰일 날 뻔했다.

 

대학 동창들이 연이어 결혼했다. 나는 독신인데 언제까지 남의 결혼식과 돌잔치에 봉투를 뿌려야 되느냐며 4년 전부터 영원한 불참을 선언했다.  사실은 그 때 너무 참석하기 싫고 축하해주기도 싫은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는데 거절할 명분이 너무 없어서 그냥 그런 선언을 해버렸다가 이번에 다 무너졌다. 올 상반기에만 여섯 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래도 돌잔치는 영원히 안 갈 것이다.

 

한 동안 못 보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되게 잘 어울리고 지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는 건지 싶은 거다.  일단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함과 동시에 마주친 상대가 나를 보는 눈빛에서 내가 그 동안 뭔가 잘못한 게 있을까 눈치를 살피는 순간 내 얼굴이 먼저 빨개지고 이런 나 때문에 나는 더 당황한다. “언니, 어디 놀러 갔다 왔어?  얼굴이 왜 이렇게 새까맣게 탔어?” 그러는데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 그게 원래 너무 빨개지면 이렇게 새까매져...’ 도망치고 싶다, 결혼식 같은 그런 거.

 

우리 엄마의 한 지인은 젊은 나이에 요실금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도중 의사는 그 분의 몸 안에 먼지만한 실을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작아서 그런지 미국에 있는 전문 병원까지 가도 끝내 못 찾아내고 20년을 넘게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한다.  그게 먼지만큼 작아도 그렇게 아프단다.  청춘을 그 고통으로 다 보내고 장년으로 접어들자 드디어 실이 불어나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게 됐단다.  그래서 마침내 실을 꺼냈는데 대체 그 먼지만한 실이 그게 뭐라고 사람 평생을 그래 좌지우지 하나, 그 뒤로 그 분의 삶이 180도 달라지셨단다.  문자 그대로 ‘새 삶이 시작됐다’고 한다. 

 

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지사 세상 이치는 무엇일까,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 가지고 뼈 빠지게 고민하면 뭐하나.  먼지만한 실 하나가 20년을 단절시키는데. ‘새 삶’에 방점 찍고 애써 긍정적인 해석은 하지 말자.  아무리 봐도 인생 그냥 복불복이다. 

 

요즘 시도 때도 없이 ‘항문 운동을 수시로 하라’는 문자를 받는다. 발신자는 우리 엄마다. 운전할 때도 일할 때도 어차피 그건 몰래 해도 아무도 모르니까 항문 조이는 운동을 계속 하라고, 그래야 요실금을 막을 수 있다고 그러신다. 20년을 단절시킨 실을 생각하면 아무리 인생 복불복이라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그냥 둘 순 없다.  생각난 김에 항문 운동을 하면서 오늘의 냉면집 육수주전자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래, 그건 전부 다 육수 주전자였다.  그럼 내 물은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물 셀프는 없었는데 그게 내가 여자라서 그런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그럼... 다들 물 대신 육수를 마시나??  보통 냉면집에 가면 다들 물 안 마시고 육수 마시나???

 

**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관심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조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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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미(영화감독)

1973년생.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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