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태어났을 때 마누라와 두 손을 맞잡고 굳게 다짐했던 게 하나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애한테 “안돼, 하지 마.”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특별한 까닭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지나친 통제를 받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고, 마누라의 어린 시절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애가 태어날 무렵에 우연히 육아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게 됐는데,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육아전문가의 말이 일종의 최면처럼 남았을 뿐이다. 그 육아전문가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말은 아이들의 성장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했고, 그 대표적인 예로 “안돼, 하지 마.”를 꼽았다.
그런데 그 다짐을 지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마누라와 나의 굳은 다짐은 결국 애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속절없이 깨지고 말았다. 내게 최면을 걸었던 육아전문가는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돌본 적은 있는 걸까 의심스러웠다. 물론 “안돼, 하지 마”라는 말만큼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있는 힘껏 ‘노오력’은 했었다. 애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동전 따위를 입 속으로 집어넣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또 애가 정복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손이 닿는 가구마다 기어오를 때도 어쩔 수 없었지만. 또 애가 친구의 장난감이 탐이 나서 친구의 얼굴을 깨물 때도 어쩔 수 없었지만. 마누라와 나는 애한테 수도 없이 “안돼, 하지 마.”를 반복했고, 애가 점점 커갈수록 그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됐다.
누군들 애한테 “안돼, 하지 마.”라며 통제하고 싶을까. 만약 내가 생계를 혼자 책임지느라 애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면, 그 내면의 갈등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다행인가?) 당시 내 돈벌이는 형편없었고, 내 돈벌이만으로는 세 식구의 앞날이 캄캄하기만 했다. 마누라는 애의 돌이 지나자마자 애를 사설 어린이집에 맡겼고, 오로지 반공정신 하나로 무장한 군인처럼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마누라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갈기듯 일거리를 닥치는 대로 끌어안았고, 나는 람보 같은 마누라의 참전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육아와 집안일을 마누라와 공평하게 나눌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애가 말을 배울 무렵에는 눈을 뜨자마자 “나가자”라는 말부터 했다. 그럼 나는 애와 함께 해가 질 때까지 동네 산책을 다녔다. 동네 산책 중에 애가 잠이 들면 한쪽 어깨에는 곤히 잠든 애를, 나머지 한쪽 어깨에는 애 자전거를 짊어져야만 했다. 햄릿이 그랬다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놀고 있네. 만약 햄릿이 매일 자기 아이와 또 그 아이의 자전거를 한꺼번에 짊어졌다면, 그 따위 사치스러운 고민은 진작 때려치웠을 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그가 4대 비극을 쓰는 동안 지 대신 자신의 아이를 돌봐준 여자가 있었다는 걸. 앞서 얘기한 육아전문가가 참고했을 법한 『에밀』의 저자, 세계적인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도 마찬가지다. 지 대신 자신의 아이를 돌봐준 여자 혹은 공공시설(루소는 자신의 다섯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겼다고 한다)이 없었다면, 『에밀』을 쓸 시간도 없었다.
반면 자유 영혼의 대명사 한대수 형님은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딸 양호를 얻었다. 하지만 옥산나 형수님이 하필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바람에 한대수 형님은 양호를 거의 혼자 돌봐야 했다. 게다가 치료 중인 옥산나 형수님도 틈틈이 돌봐야 했다. 한대수 형님이 출연했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한대수 형님은 양호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도중에 유모차를 멈추고 허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던 한대수 형님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죽겠네.”
나는 감히 말하건대, 한대수 형님의 이 한마디가 셰익스피어와 루소가 세상에 남긴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와 루소는 독박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그런데 재밌는 건, 이 독박육아는 오랜 세월 동안 여자들의 몫이었다. 과거의 아버지들은 셰익스피어와 루소처럼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 대체로 무관심했고, 엄마들만 분주하게 자식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집집마다 엄마들은 잔소리의 대명사가 됐고, 또 그 엄마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은 ‘치맛바람’으로 불리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의 그 ‘치맛바람’은 지금의 사교육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엄마들이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고, 또 자기 자신에게 쏟아야 할 열정을 자식의 미래에만 투자하면서 생긴 결과니까. 과거의 아버지들이 엄마들의 독박육아를 방치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아버지들은 과연 어떤가? 과거의 아버지 혹은 16세기의 셰익스피어와 18세기의 루소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애 볼래, 아니면 밭 맬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독박육아를 한 번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밭을 매겠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다른 집 아버지들에 비해 경제적 능력이 모자라서 그 진실을 뼛속들이 깨달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대신 마누라의 경제적 능력이 그만큼 커졌으니까. 또 우리 집에서는 적어도 “안돼, 하지 마” 같은 잔소리가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다. 애한테 잔소리는 오히려 내가 더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 처음의 다짐은 어떻게 됐냐고? 아, 말 안 했던가? 마누라와 나는 일찌감치 두 손을 다시 맞잡고 처음의 다짐을 수정했다.
“자책하지 말자. 우리는 잘하고 있다”라고.
권용득(만화가)
영화 <분노>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자기 생각을 일단 글로 쓰는 놈이야.” 영화 속 형사들이 발견한 살인범의 결정적 단서였는데, 제 얘긴 줄 알았지 뭡니까. 생각을 멈추지 못해 거의 중독 수준으로 글쓰기에 열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술을 먹습니다. 틈틈이 애랑 놀고 집안일도 합니다. 마누라와 사소한 일로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가끔 만화도 만들고요.
채널예스
2017.06.14
papafish
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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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