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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행복할까?

고구마가 나를 미치게 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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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에 토마토 하나 넣어 먹기 위해서 우드척과 벌이는 사투를 읽고 있자면 고구마는 마트 가서 다시 사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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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두 가지로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쉽게 떠오르는 이분법으로는 개 파냐 고양이 파냐, 선호하는 건 빵인가 밥인가, 어른인가 어린이인가, 사용자인가 노동자인가 등등이 있다. 그리고 굳이 하나 더 덧붙이자면, 손에 들어온 식물은 아무리 누렇고 썩어도 금세 푸릇푸릇하게 살려내는 식물 금손과 꽃집 사장님이 아무리 키우기 쉽다고 극찬한 종이라도 잔인하게 말려 죽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모든 이분법이 그렇듯이 이쪽이냐 저쪽이냐가 쉽게 갈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세상에는 개와 고양이보다 토끼나 얼룩말을 더 닮은 사람이 있고, 어른 나이지만 마음은 어린이인 사람, 월급쟁이 노예여도 자본가가 되기 위해 비트코인이나 부동산을 사들이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이라고 평생 만난 모든 식물을 죽이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나는 스스로 식물을 죽이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얻은 씨앗으로 새싹까지는 키워냈지만 잎이 열 개를 채우기 전에 누렇게 변하고는 했다. 선물 받았던 선인장은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죽었다. 언젠가 해바라기를 키워보겠다고 큰맘 먹고 화분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바깥에 내놨더니 크고 아름다운 재떨이로 변한 적도 있다. 왜 바깥에 흙이 담겨있으면 다 재떨이로 생각하시는지?


이렇다 보니 대개 내가 먼저 식물을 키우겠다고 덤빈 적은 별로 없다. 식물이 딱히 귀엽다거나 잘 자라고 있는 걸 보면서 뿌듯해하는 성격도 아니다. 무언가를 키우기에는 금방 흥미나 애정이 식기 때문에 반려동물이든 반려식물이든 맞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고구마가 나에게 왔다.


마트에서 소분해 비닐봉지에 넣어 팔던 고구마를 채 다 먹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냈더니 물도 햇빛도 없는 부엌 구석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남은 다섯 개 모두 싹이 나왔다. 한두 개도 아니고 죄다 싹을 틔웠다니 조금 놀랐지만, 식재료로만 생각했던 고구마라 그저 아깝다고만 생각하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고구마는 더 자라 있었다. 비닐 안에서 싹이 크더니 숫제 잎까지 피웠다.


그쯤 되자 슬슬 이것도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난리인데 무참히 쓰레기통에 버리기에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도의를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양심이 쿡쿡 찔렸다. 마땅한 화분이 없어서 대충 국그릇에 물을 받아 고구마를 담았다. 다섯 개를 넣자 꽉꽉 들어찼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고구마들은 감옥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으로 어떻게든 누울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렸다. 뿌리가 얽히고설켜 국그릇 모양으로 원형을 이뤘다.


이쯤 되자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마트가 원예상도 아니고 먹으려고 산 고구마가 이렇게 잘 자랄 수가 있나? 나는 식물과 친하지도 않은데 얘가 이렇게 나한테 다짜고짜 들이대면 나는 이 친구들을 키워야 하는 건가? 조심스레 엉킨 뿌리를 하나하나 떼어서 다른 국그릇에 넣어줬다. 그리고 이 그릇은 지금 세 개로 늘어났다. 넝쿨처럼 늘어나는 줄기와 잎을 보고 있자니 알고 보면 나는 무언가 먹을 걸 키우는 데 재능이 있는 게 아닌지 잠깐 설렜다. 잘만 하면 더 키워서 고구마를 재배해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어 ‘고구마 키우는 법’을 검색하자 나처럼 식물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지만 버려 놨던 고구마에 싹이 텄다고, 키워서 먹을 수 있냐고 희망에 찬 사람들의 질문이 차고 넘쳤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들 알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지만) 관상용으로 즐길 수는 있어도 먹을 정도로 증식해서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도시 농부가 되어 자급자족해볼까 하는 상상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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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의 저자 윌리엄 알렉산더는 다 쓰러져가는 집을 매입해 집에 딸린 200평방미터의 땅에 정원과 밭을 가꾸기로 결심한다. (이미 첫 문장에서부터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 영화에서 보던 풀밭은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풀밭이었고, 직접 기른 토마토와 사과를 맛보려면 집에 전기 울타리를 두르고 온갖 농약을 뿌려대며 허리 디스크를 얻어야 했다. 몇 년간의 사투 끝에 저자의 집에는 다 먹지 못할 사과와 복숭아, 호박이 수확 철마다 넘쳐나지만 ‘애증의 감정을 오가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때마침 고구마에 싹이 났을 때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었다. 식물을 살리는 사람도 식물을 먹을 만큼 키우려면 죽을 만큼 괴로워야 한다. 파스타에 토마토 하나 넣어 먹기 위해서 우드척과 벌이는 사투를 읽고 있자면 고구마는 마트 가서 다시 사오고 싶어진다.


자연이 내 마당에 풀밭을 만들고 싶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왜 여태 내 마당에 풀밭이 없었겠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과 같은 완벽한 풀밭은 그곳의 풍토가 풀밭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목초가 웃자라지 않게 막아 주는 강한 바닷바람과 물이 잘 빠지는 흙,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여러 자연적 요인이 모여 완벽한 풀밭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단호히 결정한다면 어디에든 영화에나 나올 법한 멋진 풀밭을 만들어 가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시간과 튼튼한 허리, 그리고 성냥을 그어 대도 불이 붙을 만큼 날카로운 신경과 오만함이 필요하다.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186쪽


그러나 또 한편으로 무럭무럭 크는 고구마를 보고 있자니 내 입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왔지만 배부른 느낌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꾸 뭘 키우는구나. 늘 잊고 있다 그릇 바닥이 바짝 말라서야 물을 부어줘도 이렇게 푸르다니, 인간 노릇은 힘들어도 고구마 정도로는 살아야겠다는 반성도 들고 그렇다. 내가 고구마를 키우는 게 아니라 숫제 고구마가 나를 키우는 느낌이다.


어쩌면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적당히’ 관심과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동물이든 식물이든 ‘잘’ 키우려는 강박을 가지면 그때부터 피곤해진다. 인간 뜻대로 자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다들 농사의 신 자청비가 됐거나 신농이 됐겠지.


흙과 화분을 사서 고구마 1호부터 5호까지를 심어주겠다는 계획은 주말마다 차일피일 미뤄졌다. 정신을 차리니 벌써 여름이다. 옮겨심는 거 하나 못하는 인간을 만나서 고구마가 고생이 많다. 역시 나는 식물을 잘 못 키우는 사람 쪽이다. 하지만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가 다시 정원과 싸우는 사람보다는 물과 햇빛만 있으면 되는 고구마에 만족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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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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