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는 이기고 짐이 없고, 당신과 나 사이에도 이기고 짐이 없는데, 이제 당신은 이기고 지는 것이 너무 선명하여 슬픈 세계로 가는구료.” 고민정이 문재인 캠프로 영입된 다음 날, 시인 조기영이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어렵게 들어간 안정적인 직장, KBS에서 나와 청와대 부대변인(내정자)이 되기까지, 고민정의 결정에는 언제나 남편 조기영의 단단한 지지가 있었다.
지난 5월 22일 출간된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는 고민정, 조기영이 처음으로 함께 쓴 산문집. 고민정이 청와대 부대변인이 될지 예상하지 못한 터라, 두 사람은 당분간 책 홍보에 열중할 생각이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기로 했던 날, 고민정의 청와대 부대변인 내정 발표가 났고 간담회는 취소됐다. 수락했던 인터뷰까지 줄줄이 취소. 책을 엮으며 독자들과 깊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고민정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청와대로 출근했다. 어렵게 시간을 낸 주말의 한낮, 두 아이(은산, 은설)를 대동하고 나타난 고민정, 조기영 부부를 합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금 늦었다”며 인사를 건네는 조기영 시인, 오랜 외조의 탁월함이 여러 번 빛났다. 인터뷰 중 고민정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고민정의 전작 에세이 제목이 떠올랐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한 독자는 이 책을 읽고 “기분 전환용으로 읽었는데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를 읽은 독자들은 어떤 리뷰를 남길까. 짐작해본다면 “결혼, 해봐도 될 것 같아요”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두 사람의 글이 한 책으로 묶이지 않을까 예감했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고민정 편집자께 제안을 받은 게 2014년 봄이에요.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걸 실감해요. 잡지나 블로그에 썼던 글을 넣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시인 아내이다 보니 스스로 엄격해지는 거예요. 그냥 넘기면 안 될 것 같아, 원고를 수정하다 보니 백지에 쓰는 것보다 어렵더라고요. 한편 한편 다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에세이 저자로는 고민정 씨가 선배잖아요.
고민정 (웃음) 남편이 제 글에 대해 웬만하면 칭찬을 잘 안 하거든요. 그래도 잡지에 썼던 글보다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고 말해줬어요. 뿌듯했어요.
함께 책을 쓴 소감은 어떤가요?
조기영 ‘올 것이 왔다?’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책을 쓸 때는 덤덤했어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평소 글이라는 걸 자주 접하잖아요. 오랫동안 글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생각만큼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해요. 읽다 보면 뭔가 덜컹거리는 게 있어서 잘 안 읽게 되는데, 아내의 글은 종종 봐 왔으니까요. 친숙한 면이 있었죠.
고민정 그동안 저는 남편에 관한 글을 많이 썼지만, 남편은 저에 대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남편의 생각이 궁금했죠. 또 아이를 키우는 관점은 엄마, 아빠가 같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요. 저희 부부가 만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 남편이랑 같이 쓴 책이 나올 줄이야. (웃음) 제가 처음에는 글을 진짜 못 썼거든요. 남편 글을 책으로 보니까 역시 다르구나, 나는 아직 멀었구나 싶었어요. 글이 확실히 탄탄하더라고요.
조기영 아내가 워낙 바쁘니 글을 손질할 겨를이 상대적으로 없었죠. 저는 애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상황에서도 글을 쓰는 게 숙련이 돼 있는 사람이니까, 다르죠.
“250년 전 괴테의 한마디(“큰일들에 매진해보고 싶다, 배우고, 교육받고 싶다, 마흔이 되기 전에”)가 날 마구 흔들어댔다”고 하셨어요.
고민정 괴테가 서른일곱 살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한 말이에요. 궁정에서 보낸 11년의 생활을 뒤로 하고 이탈리아로 2년간의 여행을 떠난 뒤, 그는 자신이 문학을 위해 태어났다는 걸 분명히 인지해요. 이후로 그의 인생은 달라지죠. 굉장히 짧은 글이었지만 30대 후반인 제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마음속 아우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사춘기 소녀처럼 고민이 많아졌어요. 그 전까지는 나이로 인한 마음의 병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마흔을 목전에 두고 방황이 시작되더라고요.
조기영 아내의 고민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래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됐구나’ 싶었어요. 캠프에 들어가기 전부터 해온 생각이니까요. 아내가 갖게 된 삶의 방향이 느껴졌던 대목이죠.
남편의 글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고민정 마지막 쪽에서 나왔던 것 같아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저희가 올해로 결혼 12년이에요. 결혼 10주년 때, 제게 시를 써줬는데 한 구절이 책에 나와요. “세월을 사용하기로 사랑만 한 것이 있으리오.” 많은 사람이 저희에게 ‘어떻게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면서 사냐?’고 하는데, 저희도 때로 싸우고 실망하고 분노도 치밀어요. 제가 가출한 이야기도 책에 썼잖아요. (웃음) 그런데, 다만 노력하는 부부인 것 같아요. 이 노력 가운데는 서로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같이 때문에 하는 노력도 있어요. 우리가 공부를 통해서 뭔가를 얻고 싶어 하잖아요. 사랑은 노력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들 하지만, 저는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을 때, 그리는 모습이 같아요.
조기영 아내랑 제가 10살 차이가 나잖아요. 여자들은 기대 수명이 더 길다고도 하고. 연애 초기 때만 해도 “나는 백 살까지 살 거야”라고 했는데, 지금은 노년이 더 길어졌어요. 외롭고 쓸쓸한 노년이 되지 않으려면 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꿈이 있는 상태에서 노년을 맞이하면 두렵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민정 씨도 글 쓰는 일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노년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민정 씨가 소설도 시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쓰기만큼 노년을 풍성하게 하는 건 없을 것 같아요.
시인으로부터 시를 써보라는 권유를 듣다니… 참, 좋네요.
고민정 (웃음) 확실히 글을 쓰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쓸 때는 아주 농축된 스트레스를 받지만, 잘 완성됐을 때 오는 희열이 있어요.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두 분의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은 특히 남편, 아내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 싶었어요. 서로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고요.
조기영 저희 사는 이야기를 종종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는데요. 글은 아무리 솔직히 쓴다고 해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크게 보일 수 있거든요? 책을 읽고서, ‘우리도 이렇게 살자’라고 하면 서로가 힘들어져요. 이런 삶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되죠.
꽉꽉 채운 시로 사랑 받으면 좋겠다
고민정 씨의 전작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는 제목부터 남편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단 말이에요? 이번 책에서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나오는데, 영화 같더라고요. 많이들 아시지만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였잖아요.
조기영 반했죠. 아내한테. (웃음) 시를 쓰는 사람은 거짓말을 잘 못해요. 시를 쓰는 사람이 쓰는 소설은 대개 작가의 삶의 궤적, 현실과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고민정 저희 부부를 너무 특별하게 안 봤으면 좋겠어요. 11살 차이가 나는 시인과 아나운서, 이런 타이틀로 보면 조금 남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같아요. 남편 나이가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정신연령은 보통 남편들이랑 똑같죠. 저희는 특별하지 않아요. 저희가 결혼할 때, 기자들이 취재를 왔어요. 저는 그게 너무 놀라웠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하는데 저는 시인을 좋아한 거잖아요. 우리의 사랑도 사람들의 모습 속에 다 있다고 생각해요.
조기영 예술은 ‘다름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냐’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랑은 소중하고 아름답죠. 그런데 고민정이라는 사람이 좀 알려져 있다 보니, 좀 특별하게 봐주신 거죠.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직업을 특별하게 봐주는 면이 있지만,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웃겨지는 거잖아요. 여러 직업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기영 시인의 시가 궁금한 독자라면 책을 꼼꼼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몇 편이 실렸는데요. 평소 시를 다른 지면에 발표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조기영 2000년에 시집을 냈는데 지금은 절판했어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등단을 준비하고 꿈을 꾸는데, 이 방식들이 좀 획일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좀 잘못됐다는 생각이에요. 시를 쓰는 삶 자체를 살면, 시인인데 어느 순간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게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구 사회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시를 쓰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시인으로 불려지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개인적으로도 반성의 지점인데, 좋은 시는 많지만 생각보다 좋은 시집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호연지기일 지 모르지만, 저에겐 천 년 뒤에도 남을 시집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로는 생계가 어렵습니다. 물가는 오르지만 고료는 참 안 올라요.
조기영 그렇죠. 저는 고민정 씨를 만나서 경제적 기반이 해결됐잖아요. 문인들에게 이런 기반은 많지 않죠.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좀 다르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생이라는 시간 가운데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서, 꽉꽉 채운 시로 사랑 받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문인들이 교단으로 많이 가는데, 저는 좀 비판적이에요. 삶의 어떤 안락한 기반을 갖고 시를 쓴다는 게, 타협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어요.
고민정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 달라요. 이 사회가 시인들이 시만 쓰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세상이 안 되기 때문이니까요. 시스템의 문제라고 봐요. 일년에 시 한 편을 써서 생활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강연 같은 건 안 해도 되죠. 하지만 그런 사회구조가 안 되기 때문에 특강도 하고 칼럼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국가가 문화예술인에게 여러 가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기영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민정 씨가 정치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당신 죄책감 갖지 말아. 그럴 일 아니야
많이 바쁘시죠? 일상이 어떠신가요?
고민정 새벽 6시 반쯤 출근해요. 빠르면 8시, 보통 9시쯤 퇴근하고 회식까지 하면 12시쯤 들어와요. 아직 발령이 난 건 아니라서요. 언론에는 부대변인이라고 나왔지만, 아직 내정자예요. 공식적으로 발령이 나기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려요.
조기영 2월부터 저는 한 마디로 말하면 ‘독박 육아’예요. 대선이 끝나면 이 생활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장전에 돌입했어요. (웃음)
첫째 은산이 7살, 둘째 은설이가 4살이에요. 책을 보니, 민정 씨는 처음에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했다고요.
고민정 신혼 때는 생각이 없었어요. 둘이서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해서 둘이서만 살고 싶었어요. 은산이를 낳은 게 결혼 6년 만이었는데, 긴 시간 동안 남편이 저를 설득하려고 했다면 생각을 못했을지도 몰라요. 남편이 기다려줌으로 인해서 저 스스로 변화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낳자고 한 것도 제가 먼저예요. 저는 애들이 종이접기를 하다 낑낑대고 있으면 가서 도와주는데, 남편은 기다려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애들은 곧 하더라고요.
조기영 민정 씨한테만큼은 못 기다려줘요. 확실히 아들과 딸을 대할 때는 달라져요. 사내 아이는 확실히 남자 대 남자, 본능이 불꽃 튀는 순간이 있어요.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하면 굉장히 부드럽고 자상할 거라 생각하는데, 아들을 대할 때는 다르더라고요.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일하는 엄마로서의 어려움, 민정 씨의 글만 읽어도 정말 실감이 나는데요.
조기영 초기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미안함, 죄책감 같은 게 많이 옅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확실히 부담을 덜 갖는 것 같은데, 아마 저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고민정 남편이 정말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육아나 살림을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아내에게 “당신 죄책감 갖지 말아. 그럴 일 아니야”라고 툭 한 마디 해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돼요. 누군가에게 이해 받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남편에게 항상 고마운 점 중에 하나예요.
조기영 돕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죠. 제 할 일이니까요. 저희도 분명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이런 단단한 마음이 갑자기 툭 떨어진 게 아니에요. 꼭 투쟁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우리 안에서도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예요. 예술도 마찬가지잖아요. 과정이 있어야 결실을 맺는 것처럼 부부 관계도 가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고민정 저희에게는 책이 큰 힘이 됐어요. 사람들의 조언도 많이 듣고 반성도 하고, 때로는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제 인생관을 만들어준 건 책인 것 같아요. 이번 저희 책도 한 챕터마다 책 속 구절이 등장해요. 어쩌면 그 구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될지도 몰라요.
조기영 어느 사회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건, 독서 총량이 많은 나라,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좀 더 사람다운 사회가 된다는 거죠. 간접 체험으로써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책이 아닐까 싶어요.
조기영 시인님은 프로필 소개에 ‘주부’라는 직업을 가장 먼저 적었어요. 작은 수치지만 아빠들의 육아휴직도 늘어나고, 주부 아빠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기영 저는 모계사회가 맞다고 생각해요. 점점 더 강해지고 있고요.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봉건 사회를 거치면서 기형적으로 변화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은 다소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사고방식이 강하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여성성이 수렴되는 사회가 옳은 방향이라 생각해요.
고민정 생각이 조금 다른데요. 저는 한편으로 남성들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남자든 여자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게 제일 좋잖아요.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자신의 꿈과 상관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배워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취미를 배우기보단 특기를 가르치는 거죠. 그래서 좀 짠한 마음이 있어요. 요즘 젊은 아빠들은 평일에는 야근하고 주말에는 애들이랑 놀아주기 바빠요.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들도 많은데, 너무 남자들이 혼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죠.
부부관계가 좋은 이유가 여기서 보이네요?
고민정 항상 그래요. 남편은 여자 편들고, 저는 남자 편들고. (웃음)
조기영 대한민국 평균치랑은 다르게 지내니까요. 아내는 남성화가 돼서, 퇴근하면 저에게 혼내죠. 왜 이렇게 집안일을 제대로 안 했냐고. (웃음) 저는 주부 입장에서 불합리한 거예요. 집에서 살림이랑 육아로 얼마나 힘들었는데, 화를 내니까. 웃기면서 또 당황스럽고. 이렇게 변화해 가는 것 같아요.
고민정 우리 부부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려요. 어쨌든 저희가 조금 알려진 사람이니까요. 저희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이 작은 사회 안에서 평균치와 다른 남녀 역할을 하면서 살 때, 어떤 좋은 화학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드릴 수 있잖아요. 하나의 실험이라고 할까요. 여자와 남자를 너무 가르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열정과 확신이 있으면 한 번 가도 괜찮아
청와대 부대변인으로서 특히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고민정 너무 많지만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제가 시인의 아내이다 보니 문화예술인에 시선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에요. 다른 일반 직장인과 비교했을 때, 생활하기가 쉽지 않은 직종이기도 하고요. 꿈을 키워나가는 데 있어서 세상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게라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어요. 꼭 청와대에 들어왔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방송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어요. 대학원에서도 미디어문화를 공부했고요. 시스템 때문에 눈물 흘리는 문화예술인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시스템은 한 두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니까요. 어떤 문화예술적 코드가 사람들에게 흡수돼야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는 거니까요.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 당사자, 그리고 국민의 합의, 이 세가지 합이 맞으면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믿어요.
조기영 새 정부의 출발을 좋게 보고 있어요. 아내가 문재인캠프에 합류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는데 시를 쓰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어요. 본인의 삶 자체가 시이기도 하고요. 음악으로 따지면 고전주의, 낭만주의가 있잖아요. 문 대통령은 고전주의죠. 정해진 틀 안에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현실의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예술적 기질도 보여요. 사실 아내가 캠프에 합류하기 전에 약속을 하나 받을 생각이었어요. “대통령이 되면, 퇴임 후에 당신이 사는 집 앞에서 시 콘서트를 하자”는 거였죠. 제 개인적인 내면의 조건이었는데, 다른 말을 많이 하느라 정작 말은 못하고 나왔어요. (웃음)
조기영 시인이 쓴 글 ‘당신을 문재인으로 보내며’가 큰 주목을 받기도 했잖아요. 사실 두 분을 함께 영입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던 걸로 알아요.
조기영 그럼 소는 누가 키워요? 저는 아이들을 키워야죠. (웃음)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길 바랐고, 저는 직접적인 참여보다 지원하는 형태이고 싶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분이에요. 그래서 믿음이 갔어요. 안과 밖이 다르면,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설명하기 어려워요.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요.
고민정 우리는 늘 고민해요. 이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가보지 않은 길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있어 망설이거든요. 그 때, 한 번 새로운 길을 가보라고 탁 건드려주는 사람이 제게는 남편이었어요. 아나운서의 꿈도 마찬가지였고요. 캠프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너무 많은 고민을 했어요. KBS는 안정적이고 정년이 보장된 곳이니 몇 년 뒤에는 후회하지 않을까, 안정적인 이 삶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했어요. 그때 남편은 저를 탁 건드려주며 “당신에게 열정과 확신이 있으면 한 번 가도 괜찮아”라고 말했어요. 그 한 마디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죠.
캠프에 합류했을 때, 부대변인으로 내정됐을 때도 많은 분이 박수를 보내줬어요.
고민정 너무 감사했지만, 저는 이게 비단 인간 고민정이 예뻐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저를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흔을 앞둔 나이, 두 아이의 엄마, 가장이기도 한 워킹맘으로 저를 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이 자리가 마냥 기쁘고 그런 마음은 없어요. 저의 실패는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의 실패일 수도 있으니까요. 굉장한 책임감을 느껴요. 평범한 사람이 가난한 시인과 결혼해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정치적 감각 없이 굳은살 없이 정치를 하게 됐을 때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조기영 언론과 정치는 어쨌든 영역이 다르잖아요. 정치 영역에 들어서면 반은 적이 될 수 있는데,생각 보다 비난이 적었어요. ‘까방권’이라고 하세요? 까임 방지권의 준말인데, 언론계에는 두 사람이 있대요. 손석희 앵커와 고민정.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했어요. 어떤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요. 저희가 잘해내야죠.
경제적인 고민 안 할 수 없잖아요. 안정된 직장에서 나오는 일, 뜻만 가지고는 어려운 게 현실이고요.
고민정 그렇죠. 2월부터 6월까지는 당장 저희한텐 월급이 없었어요. 물론 퇴직금이라는 좋은 제도 덕분에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지만요. 지금도 퇴직금으로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초조함, 불안감은 없어요. 올해로 제가 서른 아홉인데 아직은 상당히 젊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15년 동안 사회생활 하면서 만든 무기로 우리 아이들 밥 굶기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지금 세상은 직장이 전부가 아니에요. 하나의 도구인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은 너무 길잖아요. 한 직장에 올인하는 것보다 내 능력을 개발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글도 그래요. 적더라도 인세는 제게 큰 도움이 돼요.
조기영 시인으로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저로서는 (웃음)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굉장히 존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민정 저희가 이렇게 달라요. (웃음)
조기영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봐도,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이 다르잖아요. 하지만 내용은 같기 때문에 궁합은 잘 맞았죠. 민정 씨가 경제적인 것을 고민하지 않은 건, 명품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라는 사람을 만나서 직간접적으로 가난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 실행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이 친구가 명품을 계속 경험했다면 포기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특히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고민정 아이 엄마, 아빠들이 많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도 결혼이 지옥이 아니다,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결혼한 사람들은 안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잖아요. 좋은 이야기는 바탕이 되고, 힘든 일은 툭툭 튀어나올 뿐인데 말이에요. 결혼을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해볼만한 일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결혼을 하고 싶다면, 어떤 상대를 만나면 좋을까요?
조기영 ‘이 사람과는 끝까지 가겠구나, 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상대를 만나는 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어떤 삶의 자세를 가졌는지, 반대 의견을 냈을 때, 비판을 견딜 준비가 되었는지도 중요해요. 남자들은 소유 의식이 강하잖아요. 소유라는 개념으로 결혼을 보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꿈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조기영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나가서 말했지만 전 이미 꿈을 이뤘어요. ‘시를 평생 쓰겠다, 멋진 사랑을 해보겠다’, 이 두 가지를 이뤘으니까요. 그래서 전 욕심이 없어져버렸어요.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 두 아이가 큰 통과의례 없이 사춘기를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중이병은 절대적인 질병이니까요. 아이랑 큰 파도 없이 지났으면 좋겠는데 인생이란 우리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고민정 씨는 항로를 잘 헤쳐나갈 것 같아요. 부부 중 누구 하나가 잘 나가고 그러면 질투한다고 하잖아요. 저한테는 그런 게 없어요. 꿈을 다 이뤄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독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고민정 힘든 시기를 겪는 분들이 많은 걸 알아요. 하지만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진 않았으면 해서요. 한 번 부딪혀볼 만한 세상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왔고 이 책도 썼어요. 돈이 좀 없어도, 미래가 좀 불투명해도, 아이가 두 명이나 생겨도 한 번 부딪혀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조기영 책은 장식용으로 참 좋은 도구죠. 장식용으로 사놓았다가 어느 날에는 냄비 받침대로 사용해도 좋고요. 어쩌다 책을 폈는데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러시면 좋겠어요.
엄지혜
eumji01@naver.com
jiya9511
2017.06.22
avenir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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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