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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즈 보헤미안, 마틴 젠커를 만나다

한국 재즈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재즈 베이스 주자 색소포니스트 제스 데이비스 사중주단 일원으로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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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뉴욕에서 살아야만 위대한 재즈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재즈와 교류할 수 있는 다른 나라에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국내에서 발매되는 재즈음반들을 관심 있게 듣는 재즈팬이라면 마틴 젠커(Martin Zenker)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3년 전에 발매된 <For The Years to Come>(에번스)은 국내에서 제작된 이 독일 출신 베이스 연주자의 음반이다. 혹시 서울 시내의 재즈클럽을 자주 다니는 재즈팬이라면 그의 얼굴을 기억할 수도 있다. 서울에 거주한 2008년부터 몇 년 간 그는 국내 재즈 동네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재즈 베이스 주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재즈계에서 나타난 그의 활동 이면에 그는 매우 다채롭고 오랜 경력을 지닌 연주자다. 그는 제임스 무디, 지미 캅, 에드 딕펜과 같은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사이드맨이었고 콘트 캔돌리, 발레리 포노마레프, 빌리 하트와 같은 베테랑 연주자들의 음반에 참여했었다. 아울러 그는 한국과의 인연으로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을 해외 무대에 진출시키는데도 많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재즈가 급성장 하던 시기에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한국 재즈의 모습을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을 통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인물이란 점이다. 그래서 8월 초 색소포니스트 제스 데이비스 사중주단의 일원으로 오랜만에 한국에 온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에는 제스 데이비스 쿼텟의 동료인 드러머 김민찬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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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몽골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지내는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재즈 학교가 설립되어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은 방학이라 울란바토르와 뮌헨으로 오가고 있다.

 

한국과는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독일에는 '월드 오브 베이시즈'라는 전문 베이스 악기점이 있다. 그곳 사장인 토비아스 페스틸은 가까운 친구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매우 고가의 악기 하나를 서울 시향의 수석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구입했다. 그 악기는 배송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들고 가야 하는 악기였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할 겸 그 악기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아 악기와 함께 서울에 왔다. 2003년도였다. 악기를 전달한 뒤 서울에 있는 재즈클럽을 수소문해 그날 밤 그곳으로 갔다. 이태원에 있는, 지금은 이사 가기 전에 위치한 '올댓재즈'였다. 그곳에 가니 크리스 바가, 켄지 오메 등 한국에 정착한 외국 재즈 연주자들과 김지석 등 한국의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바로 잼을 했고 그러자 크리스가 며칠 후 홍대 앞 팜이라는 곳에서 연주가 있으니 함께 하자고 했다. 며칠 더 서울에 머물며 팜에서도 연주하자 또 클럽 에반스에서도 연주할 기회가 생겼다. 이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서울에 오게 되었다.

 

오, 그런가? 그런데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연주자처럼 클럽에서 당신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2008년도부터다. 2003년에 한국에 온 뒤로 일본 등지로 연주를 오면 한국에도 자주 오게 되었는데 한국에 드나들면서 임달균 교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2008년에 자신이 일하는 경희대에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 상수동에서 살았다.

 

그때 당신에게 배운 연주자 중에는 누가 있는가?


(옆에 있는 김민찬을 가리키며) 민찬, 그리고 베이스를 연주하는 김대호 등 당시 모두 학생이었다. 이제 그들은 직업 연주자가 되어서 내게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지만. 특히 민찬은 내 한국인 동생이나 다름없다.

 

독일 음반사인 나겔 하이어에서 진푸름의 음반을 발매할 수 있게 해준 것도 젠커씨의 도움 아니었나?


맞다. 아울러 김지석의 음반도 나이겔 하이어에서 발매되었는데 그 역시 내가 그를 음반사에 소개시켜 주었다.

 

내 생각에 당신이 한국을 자주 방문하던 그 무렵에 한국 재즈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변화라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현재 한국 재즈계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도 한국 재즈계 전체에서 극히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3년도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에 비하면 연주자들의 숫자도 적었고 연주 실력도 훨씬 낮았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의 대부분은 당시에 가장 앞서 나가는 연주자들의 스타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모두들 조 로바노, 브래드 멜다우의 새 음악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런 음악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생각은 조금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재즈의 전통을 인식하고 보다 깊고 폭넓게 재즈를 바라보고 있다. 아트 블레이키, 버드 파월로 돌아가서 그곳에서부터 오늘날의 재즈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 그런 변화를 느끼게 되었나?


글쎄…… 그 점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스스로가 그런 변화에 함께 하고 싶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 점을 늘 강조했다. '브라이언 블레이드만 듣지 마라. 아트 블레이키부터 들어라' 그런 점을 젊은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줬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둘 2012년 무렵에는 그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바람직하고 괄목할 만한 변화였다. 그 당시 어느 날이 기억난다. 그날 연주를 마치고 민찬의 연습실에 모두 들렀다.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1961년 음반 한 장을 모여서 들었다. 모두 그 연주를 들으며 열광했고 빠져들었다. 10년 전 서울이었으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5년 전이라면 어땠을까? 확신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러한 변화 속에서 연주자들은 최근의 음악을 그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재즈의 풍부한 내용을 자신의 음악 속에서 통합시켜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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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생활하기 전 당신의 음악활동을 소개해 달라


1991년에 난 뮌헨 음악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이후 25년 간 프리랜서 베이스 주자로 계속 활동했다. 물론 그 사이에 몇 년은 내 밴드를 이끌기도 했는데 '우게츠'라는 이름의 밴드였다. 이 밴드로 다섯 장의 음반을 냈다.

 

'우게츠'? 시더 월턴의 곡 말인가?


맞다. 그 곡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 기간을 제외하면 나는 여러 밴드의 사이드맨으로 활동했다. 제임스 무디의 유러피언 밴드, 트럼펫 주자 발레리 포노마레프 밴드에서도 여러 해 있었는데 그는 '70년대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트럼펫 주자로 그와 함께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투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러머 지미 콥의 녹음에도 참여했는데 뉴욕의 아바타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또 내 경험에서 잊지 못할 순간은 명 드러머 에드 딕펜의 생애 마지막 밴드에서 연주했던 때였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빌리 하트와도 함께 연주하면서 녹음도 했고 현재도 기회가 되면 함께 연주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명 드러머와의 연주가 많았다.


빌리 하트, 지미 콥, 에드 딕펜....... 그리고 민찬(웃음). 베이스 연주자에게 드러머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드러머에게 베이스 주자도 마찬가지지만. 서로는 형제같은 존재다.

 

서울에 오기 전에는 어느 도시에 주로 있었나?


1990년부터 2006년까지 나는 뉴욕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살았다. 그때 난 트럼펫 주자 발레리 포노마레프의 사이드맨이었다. 아울러 그와 함께 미국과 남미, 유럽, 아시아, 호주의 여러 도시들을 투어할 수 있었다.

 

미국, 남미, 유럽, 아시아, 호주.......당신에게는 재즈 오디세이 한 권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재즈 연주자들이란 모두 긴 투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서울에서도 다양한 음악회에서 연주할 수 있지만 재즈 연주자로서 더 많은 무대에서 연주하려면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서 연주하는 투어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다양한 도시를 경험했을 텐데 그 중에서 왜 서울이 당신에게는 특별했는가?


서울은 이제 현지 재즈 연주자들의 실력이 굉장히 센 도시 중 하나다.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고 나는 그들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맨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니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켄지 오메 같은 뛰어난 연주자가 서울에 있었고 난 그를 통해 여러 연주 기회를 잡았다. 그 무렵 김지석도 알게 되었는데 그 역시 훌륭한 연주자였고 미국에서 공부 중에 한국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연주자들이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곧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켄지, 지석, 달균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대단히 즐거웠다. 그리고 그러한 실력의 연주자들이 빠르게 계속 늘어갔다. 서울은 정말 흥미로운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은 재즈 연주자라면 뉴욕에 가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재즈의 많은 일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꼭 뉴욕에서 살아야만 위대한 재즈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재즈와 교류할 수 있는 다른 나라에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유럽도 그런 지역 중에 하나다. 나는 독일에 있는 한국 문화원과 접촉해서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독일에서 연주하는 작은 축제를 몇 년간 기획했다. '재즈 코리아'라는 이름의 축제인데 매해 계속되고 있다. 임달균, 김지석, 진푸름, 김민찬 등이 참여했고 그 중 몇몇은 독일에서 음반도 발매했다.

 

독일 정부는 재즈를 적극 지원하는가?


바라는 것만큼 많지는 않다. 클래식 음악에 지원하는 금액에 비교하면 그 액수는 보잘것 없다. 그래서 난 정부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연주를 해오면서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재즈를 적극 지원하면 이런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간섭하려는 것 말이다. '당신은 꼭 독일적인 재즈를 연주해야 하오', '당신은 반드시 한국적인 재즈를 연주해야 하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재즈는 음악일 뿐이다. 내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의 즐거움, 나의 기쁨을 위해서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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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재즈의 미래가 불안하다, 재즈는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점에 대해서 많은 도시를 다니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나는 재즈가 본질적으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재즈는 초창기에 오락음악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연주자들은 그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했고 새로운 컨셉트를 찾으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 그러니까 1960년대 말이 되었을 때 재즈는 너무 어려운 음악, 더 이상 재미가 없는 음악이 되었다. 만약 마크 터너가 새 음반을 냈다고 하자.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음반이 나오면 하루 만에 모든 사람들이 새 음반이 나왔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된다. 이틀이 지나면 새롭다, 멋지다, 여러 평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옛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즐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재즈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던 시절의 작품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같은 곡을 2~3년 간 계속 연주하고 싶다. 연주할 때 마다 새롭게 연주하면 연주자의 기량은 발전하고 관중들도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마일스 데이비스도 그렇게 했다. 우리가 이번에 함께 연주한 제스 데이비스도 좋은 보기다. 그는 스탠더드를 연주하지만 매번 새롭게, 신선하게 연주한다.

 

몽골에서의 일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한국에서 사는 동안 몽골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역시 방문을 해보니 재즈클럽도 없었고 교육기관도 없었고 재즈 신(Jazz Scene)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의 음악대학에 한 사람을 만나니 재즈교육에 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몽골에 있는 독일 문화원에서도 재즈교육을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서 몽골 음악대학 내에 '괴테 뮤직 울란바토르'라는 과정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줄여서 'GMUB'라고 부른다. 2014년부터 시작되었고 현재 30명의 학생이 있다. 이제부터 몽골에서의 재즈는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인데 나는 그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김민찬씨도 그곳에 간 적이 있나?


김민찬 : 마틴이 그곳에서 학교를 설립했을 때부터 여러 번 참여하고 연주도 여러 번 했다. 그곳은 우리로 말하자면 한국예술종합대학교와 같은 가장 큰 국립 예술대학이다. 그 학교 내에 재즈 전문 과정을 만든 것이다. 여담이지만 몽골 사람들은 중국인, 일본인 보다 한국 사람과 외모가 거의 똑같다. 나도 구분 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도 나를 보면 몽골 사람인 줄 안다. (웃음)

 

가급적이면 몽골에서 오래 머물 생각인가?


몇년 동안 나는 몽골에서 내 노력의 거의 100%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강의 시간도 줄이고 학교의 조언자, 컨설턴트로 내 시간의 50% 정도만을 쓸 계획이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 문화원, 대사관을 잘 연결해 몽골에서 몽골과 해외 재즈 연주자들의 교류를 만들 생각이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점점 줄일 것이다. 그 다음해엔 25%....... 그 다음에도 절반으로 줄이고, 그리고 나면 언젠가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 (웃음)

 

끝으로 몽골에서의 교육 말고 오로지 아티스트로서 계획이 있다면 이야기 해달라.


재즈 베이스 연주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다. 여러 해 동안 학교에 있었던 경험을 책으로 완성하고 싶다. 새로운 음반 녹음 계획 같은 것은 아직 없다. 단지 한 멤버들과 오랫동안 꾸준히 연주하면 앨범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마틴 젠커 쿼텟의 음반도 그렇게 나온 것이다. 우리는 스튜디오에서도 아무런 편집 없이 마치 라이브 녹음하듯이 원 테이크로 녹음을 마쳤다. 재즈 음반은 그렇게 녹음해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 당일 마틴 젠커가 속한 제스 데이비스 쿼텟은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연주를 했고 그 다음 날 아침 또 다른 연주를 위해 그들은 통영으로 떠났다. 통영 연주 뒤에 마틴은 다시 뮌헨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틴 젠커가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할 때 김민찬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 사람 역마살 낀 진짜 재즈 보헤미안이에요.”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건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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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Martin Zenker Quartet - For The Years To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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