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나선을 품고 있는 높은음자리표,
콧수염을 닮은 파이와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무한대.
이런 걸 처음 그린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어느 날 무심결에 한 낙서나 끄적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만든 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기호들은
그렇지만 우주의 아름다운 비밀을 열어주지요.
기다리는 사람이 문 입구에 나타났을 때
손을 들며 환하게 웃어주는 것.
식당에서 먼저 일어나 신발을 꺼내 신기 좋게 놓아주는 것.
우리 소매를 삶 쪽으로 끌어당겨주는 건
사소하지만 사려 깊은 것들입니다.
‘빈 방 있슴’
‘아침식사 됨니다’
밤늦은 객지에서거나, 춥고 허기진 밤의 끝이거나
그럴 때 뜻밖의 위로가 되는 건 이런 말들입니다.
또 어느 날은
“밥 먹었어요?” “우리 이러면 어떨까”
이런 말이 난데없이 너무 좋아서 이 세상을 사랑해버리게 됩니다.
나중에, 그 나중에 가장 사무치게 그리울 것들,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입니다.
단 한 권의 작품집으로 위대한 SF소설 작가가 된 테드 창.
정교한 기교와 미묘한 감정이 결합된 문장.
그 문장으로 빚어낸 SF안에서의 삶.
테드 창의 작품에는 바로 그러한 우리 각자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책, 임자를 만나다' 이번 시간에서 이야기 나눌 책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인간의 삶의 조건을 해석하는 철학적인 SF 소설
1) 책 소개
단 한 권의 작품집으로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 단편소설 작가 중의 한 명"이라는 명성을 얻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되는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스터전상, 캠벨상, 아시모프상, 세이운상, 라츠비츠상을 모두 석권하였다.
죽음을 모티프로 한 SF가 있다면 당연히 SF다운 방법으로 삶을 그리는 작품도 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그 성공 예라 할 것이다. 그중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세워 외계 지성과의 조우를 통해 인류가 맞이하는 인식의 변화를 그린 '네 인생의 이야기'는 <시카리오> 등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로 만들어졌다.
2) 저자 : 테드 창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전 세계 과학소설계의 보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소설가. 동시대 과학소설 작가들의 인정과 동시대 과학소설 독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가이다. 작품이 매우 드물어 1990년 등단 후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이 완성도 높은 중.단편 15편뿐이다. 현재까지 그의 유일한 작품집인『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그중 8편이 실려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전 세계 15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1990년 발표한 첫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역대 최연소 네뷸러상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았으며,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스터전상, 휴고상, 네뷸러상을 휩쓸며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과 지지를 받았다. 「인류 과학의 진화」 등 두 작품이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독일 과학소설계의 네뷸러라 불리는 쿠르트 라스비츠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과학소설계의 네뷸러라 불리는 세이운상을 네 차례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전 세계 독자들의 기대 속에, 2017년 초 출간 예정인 두 번째 작품집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사고실험의 향연을 통해, 과학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상상력과 소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철학적 사유를 선사한다. 그중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다른 외계 지성과의 조우를 통해 인류가 맞이하는 인식의 변화를 그린 「네 인생의 이야기」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2016)로 만들어졌으며, 지성의 향상으로 인한 인식의 변용과 초지능 대 초지능의 대결을 그린 「이해」 역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 221-222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낯선 나라에서 찾아온 묵직한 소설.
찬호께이의 미스테리 소설 『13.67』은 분명 그런 소설일 것입니다.
홍콩 작가 찬호께이의 이 소설은 1967년과 2013년 사이에 벌어진 여섯건의 범죄 사건이 이어져 이야기를 완성해 나갑니다. 그 속에서 홍콩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묵직한 메세지까지 즐길 수 있는 이 작품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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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susunhoy
2017.05.16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해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시도 중요하지만
밥은 중요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