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음식일기』는 푸드 포토그래퍼의 일기입니다. 포토그래퍼 앞에 유독 ‘푸드’를 붙이는 이유는, ‘푸드’가 그의 유일한 피사체이기 때문입니다. 포토그래퍼들은 저마다 풍경, 인물과 같은 피사체를 통해 사건을 전하기도 하고, 어떤 감수성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푸드 포토그래퍼는 ‘푸드’에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낸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미술책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정말 좋아해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이미지보다는 이미지가 주인공인 책을 좋아합니다. 이미지 중에서는 ‘사진’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10년 전에 린코 가와우치라는 일본 사진작가에 홀릭한 적이 있습니다. 홀릭 시기를 지나, 지금은 마음의 리스트에 넣어두고, 전시 소식과 사진집 출간 소식에 귀를 쫑긋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린코 가와우치 사진집 『cui cui』
린코 가와우치의 사진집 중에서 『cui cui』(2007년)는 많이 알려진 편인데요. 개인적으로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집입니다.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건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이 있습니다. 일견 매끈하고 아름답고 팬시해 보이지만, 그가 포착한 일상에는 어쩌면 '죽음'이 더 크게 자리하는 듯 보입니다.
이 책의 표지도 흥미롭습니다. 일본 요리 에세이처럼 표지는 음식재료 사진이고, 표지에 앉은 크기는 역시 일본 요리 에세이에서 자주 보이는 구도입니다. 린코 가와우치의 사진집의 표지는 대부분 이 구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린코가 ‘일상성’을 자신의 사진뿐만 아니라, 사진집에도 폭넓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작가는 2006년에 『린코 일기』라는 단행본을 두 권 낸 적이 있어요. 문고판 사이즈의 작은 책이었습니다. 1,2권에 각각 반년 분량이 들어가 있어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사진일기장입니다.
이 일기의 놀라운 점은 '포토그래퍼의 핸드폰 사진 일기'라는 것입니다. 2006년의 핸드폰은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의 해상도로 인해, 인쇄된 사진은 정말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정도입니다. 내용은 정직하게, 일기입니다. 오늘 먹은 음식, 만난 사람, to do list 등... 그러나 매일의 기록이기에, 계절감과 포토그래퍼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어요. 이 책을 꼭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또는 하고 있는 방법으로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와 좋은 작가를 소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독자들이 예술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이즈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고본이 아니면 출간하기가 어려웠어요. 지금에야 손에 착 안기는 작은 사이즈의 책들에 대한 저항감이 없지만, 2006년만 해도, 문고본 사이즈의 책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 가을이었던 것 같아요. 도쿄에서 이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와타나베 유코, 『365일, 작은 레시피와 매일의 일』
일본의 요리 연구가 와타나베 유코가 사진으로 쓴 일기인데요. 보는 순간 린코 가와우치의 일기가 떠올랐습니다. 매일매일의 기록, 사진으로 쓴 일기, 365일이 모두 담기기 때문에 드러나는 계절감, 직업인의 일상... 모두 동일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디자인도 『린코 일기』를 떠올리게 했지요.
아, 한 예술가의 사진일기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겠다.
린코가 포토그래퍼로서 담은 계절감은, 주로 풍경이었어요. 그런데 요리 연구가가 사진일기를 쓰니, 거기엔 요리의 계절이 담기고, 사진 찍는 법 대신 레시피가 담기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새해 첫날 요리, 특별한 날 먹는 요리 등을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명절과 계절감이 담긴 책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에 『린코 일기』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콘셉트, ‘포토그래퍼의 일상 일기’라는 기획을 10년 만에 떠올렸습니다. 이 콘셉트까지 담은 책은 어떨까.
저는 해외 푸드 포토그래퍼들의 인스타그램을 즐겨 봅니다. 그들의 사진은, 사진이 맨처음 등장했을 때, 예술 내에서 자리를 획득하기 위해 명화의 구도를 따라했던 것처럼, 네덜란드 정물화나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이 묘사한 일상적인 풍경을 많이 차용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포토그래퍼들은 아예 추상사진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순전히 상업용으로 ‘푸드’를 찍는 게 아님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17년 포토그래퍼의 일기를 낸다면, 푸드 포토그래퍼의 사진일기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하는 것, 삼시세끼 챙겨먹기. 이보다 더 일상적인 게 있을까요. 만 10년 동안 마음에 품어두었던 ‘포토그래퍼의 일기’를 다시 꺼내들었을 때는 ‘푸드 포토그래퍼의 1년치 일기’가 되었습니다.
#김연미, 『365일 음식일기』
이 책의 작가 김연미는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직업을 가졌습니다. 푸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이가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포토그래퍼는 사진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푸드 포토그래퍼로 불리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훌륭한 푸드 스타일링만으로도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스타일리스트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사진은 찍는 사람의 태도와 생각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작가 김연미는 요리 재료에 담긴 계절의 이야기와, 생산자의 이야기, 흙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입니다. 포토그래퍼들이 그렇듯, 발로 뜁니다. 재료의 산지를 찾아가서 직접 흙 냄새와 바람 냄새를 맡고, 생산자의 노고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담기에, 그를 푸드 포토그래퍼라 부릅니다.
1년 동안 매일, 제철 재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과일이나 채소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도 소환해냅니다. 어떤 상차림에는 신혼부부의 행복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제철재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철이 언제인지도 알 수 있지만, 언제가 가장 늦은 때인지도 나와 있습니다. 저자가 한 재료의 계절이 가는 걸 아쉬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흙 냄새와 바람 냄새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에 담긴 것은 테이블에 잘 세팅된 재료들이지만, 만약 그것들이 반짝여 보인다면, 포토그래퍼가 사진에 제철재료의 정확한 때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을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미영(이봄 대표)
이미지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출판일도 미술책 편집자로 시작했다. 지금은 미술 교양서도 내고, 명화 에세이도 내고, 만화도 내고, 요리책도 낸다. 모두 아트북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며, 해외 유명 예술 출판사가 요리책 전문 출판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주냐
2017.04.26
매일 무엇을 담는 사람의 정성이 보입니다
제 때 찾아오는 사람,제 때 먹는 요리
제 철을 맞아 찾아오고 떠나는 재료에 대한 애틋함과 설렘이 느껴집니다
제 때 다가갔다 제 때 물러나는 철 모르지 않은 사람으로 누군가의 일기에 적혀있을까 나란 사람은 ..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