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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운을 우리가 결정했던 게 아닐까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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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판계의 저 미담들, 그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 한 권을 갖고 싶었던 '강은경'이라는 작가의 바람에 내가 아주 작게나마, 그러나 기꺼이 호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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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이야기를 해 보자면, 두 시즌이 있다. 봄에는 책 제작비 1천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우수콘텐츠 사업에 응모한다. 여름에는 책 한 권당 1천만 원어치를 팔 수 있는 세종도서 사업에 서류를 제출한다. 두 사업의 결과가 발표되는 6월말, 11월말이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데 기분은 내내 우울하다. 한번 생각해 봤다. 이 시즌이 되면 이토록 기분이 안 좋은 이유를. 그건 내가 로또를 사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남의 손에 내 운을 맡기는 것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타인의 운을 내가 결정하는 때도 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다. 출판사에는 꾸준히 원고가 들어오는데 안타깝게도 출판사가 투고 원고를 출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원고를 굳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이유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고, 애초에 투고 원고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여러 차례 거절당한 원고가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미담이 수백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출판계를 떠돈다. 유명해진 저자의 이름만큼이나 그 원고의 가치를 최초로 알아본 편집자의 이름도 함께 회자된다.

 

분명 그런 미담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이번에 어떤책은 투고 원고를 출간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1,400매 정도 되었는데, 파일을 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빌 브라이슨, 더글러스 애덤스, 메리 로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글, 흔히 ‘영미논픽션’이라 불리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사로잡는 원고였다. 지적이며 재치 있고, 좌충우돌하는 캐릭터가 펄펄 살아 있는 실제 이야기.

 

낮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여성 작가였다. 15년 편집자 경력에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밭에서 토마토를 따는 작가와 일해 본 경험이 없었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사는 작가에게서 이토록 나를 매혹하는 글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출판계약을 맺기 위해 작가를 처음 만난 날 알게 된 두 가지는 작가가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는 것, 서른 개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거절의) 답장을 준 곳이 여섯 곳뿐, 나머지는 묵묵부답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기분이 어떨지는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무려 원고를 1,400매나 썼는데 말이다.

 

의외로 작가님은 담담했다. 그러니까, 이 작가님에게 원고 거절은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매해 꾸준히 거절당했으니, 어떻게 보면 거절당하는 게 직업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작가는 1년 내내 단편소설 세 편을 쓰고 다듬어 연말에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중간중간 공사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드라마 촬영장에서 보조 출연을 하고, 밭에 나가 수확을 도왔지만, 밤에는 어김없이 골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썼다. 그러고는 1월 1일이 되면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작가의 1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했을까, 30년 동안.

 

나는 출판계의 저 미담들, 그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 한 권을 갖고 싶었던 '강은경'이라는 작가의 바람에 내가 아주 작게나마, 그러나 기꺼이 호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투고를 하고 기획안을 내고 지원사업을 신청하고 보금자리주택에 서류를 낼 때, 우리는 정말 남의 손에 우리의 운을 맡겼던 걸까? 어쩌면 그럴 때조차 우리의 운을 우리가 결정했던 게 아닐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자리를 빌어 글 쓰는 일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이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날은 서른두 번째 출판사에서 원고를 퇴짜맞은 날이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퍽큐!’를 날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다가 마치 날아가는 참새 똥구멍이라도 본 사람마냥 몸을 흔들며 웃어젖혔다. 푸하하핫! -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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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옥(어떤책 대표)

2015년 1인출판사로 독립하면서 세상물정을 익히기 시작한 편집자.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기에 책을 만든다. 될 책, 안 될 책에 관해서는 감이 없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잘 아는 편이어서 독자로서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을 펴내고 있다.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강은경> 저14,220원(10% + 5%)

식당, 공사판, 과수원에서 일하며 신춘문예에 매달려 온 지 30년, 그는 결국 소설가가 되지 못했고 그래서 좌절했지만, 덕분에 이 에세이를 썼다 아이슬란드 여행 전문가들마저 혀를 내두른, 아주 지독한 여행기 “고단하고 유쾌하며 대책 없고 쓸쓸하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다.”_소설가 정이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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