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 나서길 부끄러워했던 제주 소녀는 이제 제주와 육지를 넘나들며 사람들과 캘리그라피로 소통하는 대한민국 대표 캘리그라피 작가 캘리愛가 되었다. 작년 말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캘리愛 빠지다』에 이어 이번 봄 『캘리愛처럼 쓰다』 를 출간한 배정애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인기가 실감나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수업, 전시회, 행사, 간판 작업, 6권의 책 출간에 이르기까지 캘리그라피 전문가가 된 배정애 작가에게 캘리그라피는 일이 아닌, 즐거움이다. 그래서 그녀에겐 배정애 ‘작가’라는 호칭보다 ‘글씨 쓰는 걸 즐거워하는 배정애’가 더 어울렸다.
영어 통역을 전공해 21살의 어린 나이부터 13년간 제주그랜드호텔에서 근무한 배정애 작가는, 일본어 학원 선생님과 사제지간으로 만나 결혼까지 했다. 결혼과 동시에 호텔을 그만두고 학원 업무를 도왔던 그녀의 삶은 마흔 살을 기점으로 완전히 변했다. 꿈을 말하고 다니며 자신의 말에 책임지기 위해 꾸준히 연습했다는 배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전 제 삶을 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아프면 소문내라 하듯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소문내고 다니라’ 고 해요. 저도 우연히 SNS에서 캘리그라피를 접하고 제주에 배울 데가 없어서 못 하고, 그저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좋은 기회들이 생겼거든요. 꿈을 말하고 다니면 길이 열리기도 하고,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해서 말뿐이 아닌 행동을 하게 돼요. 저도 꼭 캘리그라퍼가 돼야지 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좋아서 하다 보니 기회가 왔고, 그걸 꽉 잡았어요.”
캘리와 사랑에 빠지다
캘리그라피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트위터에서 헤이데이 작가의 캘리그라피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배워보고 싶었는데 제주에 배울 데가 없어서 못 했어요. 막연히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이를 제 지인이 듣고 강좌 개설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막상 도전해보니 너무 어려워서 8주간 수업만 듣고 접었어요. 그저 헤이데이 작가의 전시를 가고, 그분과 얘기해보는 것에 만족했죠.
어려워서 포기했던 캘리그라피를 어떤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캘리그라피를 접은 지 1년쯤 지났을 때 캘리그라피로 장식된 바이브 앨범이 나온 걸 봤어요. 그걸 보고 다시 캘리그라피를 시작해볼까 해서 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캘리그라피에 다시 흥미를 느끼고는 그저 재미있어서 매일 2~3시간씩 글씨를 썼어요. 꾸준히 쓰다 보니 실력이 느는 게 보이기도 하고, 블로그에 게시하니 사람들이 칭찬도 해줬죠. 그러다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이 캘리그라피 전시를 열어보자고 기획해 주셔서 저의 첫 번째 캘리그라피 전시도 열게 됐어요. 전시회를 개최하며 제 작품이 판매되고, 간판 작업 문의도 들어오는 걸 보면서 내 글씨가 가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다양한 활동들이 자극제가 되어 2014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 학원도 시작했죠.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소개해주세요.
캘리그라피는 어찌 보면 단순한 글씨일 뿐인데, 그 글씨를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처음 헤이데이 작가의 캘리그라피를 보고 어떤 글씨는 기뻐 보여서 왠지 웃음이 나고, 어떤 건 슬퍼 보였거든요.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제가 전에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대사를 써서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걸 청각장애인 분이 보시고 그 대사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글씨를 보니 느낄 수 있다고 했어요. 저의 글씨를 기다려주시고 이를 통해 감정을 느껴주셔서 너무 감동했던 일화예요. 또 수강생 한 분이 그저 글씨인데 선물하려고 쓰다 보면 나 자신도 너무 좋고, 그걸 받고 좋아하는 상대를 보고 또 좋다고 하셨어요. 글씨로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캘리그라피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요즘 SNS 라이브 방송을 자주하시던데, 소통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저는 원래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걸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앞에 나가서 말할 일이 생기면 스스로 떨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죠. 호텔 일을 관두고 서비스 강사가 되고 싶어서 교육받았을 때도 앞에 나서는 게 너무 떨려서 그만뒀어요. 지나고 보니 그때 서비스강사로 교육받았던 것이 지금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전히 떨리긴 하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말하는 실력도 늘었죠. 제가 소소하게 경험했던 것들이 쓸모없던 게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것들이 다 쌓여서 저에게 도움이 된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알려주세요.
유튜브 수업은 잘못 얘기하면 끊고 새로 찍어야 하고 혼자서만 계속 말해서 힘든데, SNS 라이브 방송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라 재미있어요. 특히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던 걸 초보분이 질문해주시면 이런 걸 모를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저도 모르는 질문을 다른 분들이 알려주셔서 공부하게 돼요. 캘리그라피는 실수를 많이 해봐야 다음에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 라이브 방송에서 실수담을 공유하면서 해결책을 의논해요. 또 라이브 방송으로 숙제를 내드리면 많은 분들이 숙제를 하고 결과를 남겨주셔서 놀라요. 막연하게 혼자 쓰는 거보다 숙제를 내드리면 꼭 하게 되니 은근히 숙제를 기다리는 분도 많아요. 특히 혼자 공부하시는 분들께 SNS로 피드백 드리면 좋아하세요. 라이브를 통해 덩달아 저도 힘을 받는거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시는데, 제일 처음 수업했던 학생들 기억나세요?
그럼요. 기억나죠. 저의 첫 학생 중 두 분은 아직도 캘리그라피를 하고 있어요. 한 분 배운지 일 년 반 됐을 때 저랑 같이 행사도 나가고, 요즘은 자체적으로 강의도 많이 하세요. 다른 분은 중간에 조금 쉬셨다가 다시 시작하셔서 최근 처음으로 원데이 클래스도 열고 판매도 해요. 처음에 같이 시작했던 분들과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요. 이전에 헤이데이 작가님에게 캘리그라피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계기가 되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게 끝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끝까지 가줘서 고맙다’ 라고 하셨거든요. 요즘은 제가 그 마음을 학생들을 통해 느끼고 있어요.
배정애, 캘리愛 작가가 되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가님 책과 전시에 관해 얘기해볼게요. 첫 번째 책 『캘리愛 빠지다』를 쓴 과정이 궁금해요.
제가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해서 블로그에 드라마 대사를 써서 자주 올렸어요. 그러다 보니 특정 대사를 써달라는 사람들 요청이 많았는데, 한 분이 <그들이 사는 세상> 대사를 부탁하셨어요. 출판사에서 이전부터 제 블로그 작업을 눈여겨 보다 결정적으로 그 글씨를 보고 연락 했대요. 그때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책들이 없었겠죠?
한창 컬러링 북이 유행할 때라 캘리그라피가 들어간 컬러링 북 『러브, 마이러브』를, 다음엔 뜯어서 사용하는 컬러링 책 『참 좋은 당신께』, 아들러 심리학 필사 책 『필사의 발견 오늘, 행복을 쓰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님 20주년 기념 책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를 순서대로 출간했어요. 그러고 나서 비로소 『캘리愛 빠지다』를 1년간 준비해 출간했죠.
최근 『캘리愛 빠지다』가 5판까지 나왔는데, 좋은 반응이 어떠세요?
한 학생이 글씨를 쓰다 힘들자 ‘포기하지 말자’ 라는 말을 계속 썼어요. 그걸 보고 본인에게 하는 말이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계속 그 말로 연습했어요. 최근 그 분 실력이 엄청 늘어서 비결을 물으니 제 책을 3번씩 반복해서 따라 썼대요. 책으로 꾸준히 연습하니 자신감도 붙고 선도 좋아지는 걸 보고 내 책이 도움되긴 하구나 싶었어요. 초보자와 중급자 모두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나중에도 활용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어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업했는데, 결과도 좋아서 힘이 나요.
책을 내고 변화한 게 있다면요?
이전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책을 내면 좋은 글을 써주신 거에 감사했는데, 이제는 그 감사 인사를 제가 듣게 되니 신기해요. 서울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했을 때 빨리 마감되거나 부산에서 오신 분이 있다는 얘기에 놀라기도 하고요. 제가 열심히 쓴 책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으니 그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출판사 대표님의 말을 자꾸 되새기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사주시고, 수업을 들으러 와주시고, 라이브를 듣는다고 시간 내주는 분들께 자꾸 감사하게 돼요.
이번 신간 『캘리愛처럼 쓰다』 은 어떤 내용인가요?
『캘리愛처럼 쓰다』 는 따라 쓰기 책이에요. 이전 책이 활용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온전히 연습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어요. 따라 쓰기 책을 요청하는 분이 많아 이번에는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 쓰면서 연습할 수 있게 구성했어요. 여러 도구를 사용하고, 테마를 만들어 상황 별로 쓸 수 있는 문장으로 구성하고, 왜 이렇게 써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적어뒀어요. 그야말로 글씨 쓰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연습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랍니다.
캘리그라피에 대한 궁금증을 풀다
작가님의 원래 필체와 캘리그라피 서체가 다른가요?
원래 제 서체는 되게 강하고 수직적이었는데, 귀엽고 동글동글한 서체도 연습했어요. 캘리그라피 행사에 가니 사랑한다 같은 다정한 말을 써달라고 부탁하는데, 원래 서체로 쓰니 너무 무서워 보였어요. 그래서 이젠 상황에 따라 강한 글씨를 쓰기도하고 귀여운 글씨를 쓰기도 하죠.
글씨와 더불어 직접 그림 그리시는데, 캘리그라피를 잘하려면 그림도 잘 그려야 하나요?
처음엔 그림을 정말 못 그려서 동생한테 부탁하거나 했어요. 하지만 행사 나가서 그림 그려달라고 부탁하시니 그림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리는 그림은 되게 간단한 거예요. 글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그림이어야 하니까요. 어디 가서 맘에 드는 조명이나 선인장을 발견하면 사진 찍어두고, 나중에 그걸 보면서 똑같이 그려요. 그림이든 글씨든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데, 가만히 관찰하면서 똑같이 그려야지 하면 관찰력이 늘면서 잘 그리게 돼요.
캘리그라피에 활용되는 도구가 굉장히 다양하네요. 도구 소개 좀 해주세요.
가장 흔히 쓰는 붓 펜은 가방에 엽서랑 붓 펜, 물감만 있으면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딥 펜은 잉크를 찍어서 쓰는 펜으로, 쓰면서 나는 소리가 좋아 많이 쓰는 펜이에요. 워터브러시는 물을 넣으면 색깔을 낼 수 있는 펜이에요. 포일을 이용한 캘리그라피도 있는데, 이건 글씨를 써서 레이저 프린터로 프린트하고, 그 위에 포일을 두고 열을 가해서 만들어요. 커피로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요. 밀크커피를 타 놓고 편의점 도시락 젓가락으로 커피를 찍어서 쓰는 거예요. 흔히 나무젓가락으로 쓰는데 이 편의점 도시락 젓가락이 특히 좋더라고요. (웃음) 캘리그라퍼는 도구 제한이 없어서 잡고 쓸 수만 있으면 어떤 재료도 도구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화장품 가게에 가도 저 화장품으로 어떤 글씨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해요.
제주에 살다
제주도에는 언제부터 사신 거예요?
원래 육지에 살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가족들이 전부 제주로 이사 오면서 계속 제주에 살았어요. 흔히 제주에 산다고 하면 이주하신 줄 아는데 원래부터 제주에 살았어요.
제주에서 캘리그라피를 해서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캘리그라피를 제주에서 해서 더 좋은 점은 자연을 보며 작업 할 수 있는 거예요. 저 자연을 어떻게 글자로 표현할까 싶은거죠. 아무래도 마음이 여유로우니 더 감성적이게 되어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있고요. 제주어로 캘리그라피 작업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건 ‘걱정이 반찬이면 상다리가 부러진다’ 라는 제주 속담을 쓴 거랍니다.
이효리 씨의 ‘소길댁’ 로고를 쓰신 거로 유명하잖아요. 어떤 연유로 쓰게 됐나요?
제주에서 열리는 하루 하나 마켓에 캘리그라피 작품을 판매했어요. 거기에 효리 씨도 나와서 옷을 팔아서 판매자끼리 알고 지냈죠. 그러다 효리 씨가 다음 달에 직접 고른 콩을 팔건데 거기에 쓸 ‘소길댁’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쓰게 됐어요. 제의받고 저도 되게 놀랐던 일이에요.
캘리愛의 꿈
사람들에게 캘리그라피가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세요?
사람들이 캘리그라피를 너무 멀지 않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캘리그라피를 해 보기 전엔 글씨 쓰는 거니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는데, 막상 해보면 어려워서 금방 포기하거든요. 스스로 나는 재능이 없어서 못 한다고 가둬두는데 그걸 깨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캘리그라피는 실력의 차이가 아닌 시간의 차이거든요. 시간을 투자해서 계속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캘리그라피니까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요즘 다 문자나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세상이잖아요. 엽서 한 장을 쓰더라도 캘리그라피를 이용해서 진심을 전달했으면 해요.
좀 더 욕심내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전에 한 학생이 선생님은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마흔이 넘었는데도 이걸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이 나이에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 만으로요. 저는 큰 꿈을 꾸기보다는 지치지 않고 갔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캘리그라퍼로 활동하다 생계랑 연계가 안 돼서 그만두는 분이 많아요. 혹은 캘리그라피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관두시는 분도 있고요. 내가 쓰고 싶은 글씨와 누군가 써달라고 해서 쓰는 글씨에는 분명 차이점이 있거든요. 전 이런 기복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지금처럼 꾸준히 글씨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싶어요.
작년에 신간 작업을 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제가 쓰고 싶은 글씨를 쓰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전시회 한 번 더 할 수 있게 글씨 작업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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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愛처럼 쓰다배정애 저 | 북로그컴퍼니
글씨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감성 캘리그라퍼, 캘리애(愛) 배정애의 두 번째 책. 출간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단숨에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첫 책 캘리愛 빠지다가 캘리그라피의 이론을 쉽고 충실하게 담았다면, 이 책은 ‘쓰기’에 방점을 찍고 매일매일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워크북으로 꾸몄다.
신수인(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좋은 글을 읽는 독자이며, 동시에 좋은 글을 쓰는 필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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