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동소문동은 놀이의 천국이었다
고향이란 어느 특정한 장소이기보다는 그곳, 그 시절에서의 추억이기 때문이었지요. 그 추억이 생활의 순수한 놀이에서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처럼 아름다운 고향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은 그런 고향이자, 놀이의 천국이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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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뉴스의 범람 속에서 2016년을 살아냈다. 특종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고, 속보가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던, 지치고 고단한 날들이었다. 이런 순간에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들어 주는 건 과거, 특히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다. 삶에 지칠 때, 어린 날의 추억이 새겨진 동네로 문득 찾아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걸음걸음 마다 어떤 마음이 담겨 있다. 『놀이의 천국』은 잊고 있었던 유년시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비록 가난했지만 순수했고 사랑이 가득했던 1965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이 그 배경이다.

 

저자 최성철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서 대학교 2학년까지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살았음. 서울중ㆍ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삼성화재에서만 근무. 미국 지사장을 거쳐 정년퇴임. 1975년 월간 『시문학』지에 「자정의 도시」,「바람」, 「새의 죽음」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한동안 문학과 인생에 대한 회의 등으로 절필하였다가, 시에 대한 자구적 연구를 통한 스스로의 자각과 생의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가볍게 인터뷰를 시작해보고 싶은데요, 책에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사람들 등 다양한 인물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혹시 싣지 못한 (혹은 않은) 어린 시절 추억이 있으신가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실으려고 했지만, 기억의 한계 때문에 그렇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강 근처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당인리발전소 근처 같아요. 친구 몇 명과 함께 갔었는데, 강변에서 별안간 향기로운 사탕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 멀리 어디선가 불어오는 달콤한 냄새였는데요, 양평동이었던가요? 당시 거기에 제과공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피어나는 사탕과 과자를 만드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강 건너 우리들 있는 곳까지 퍼져 왔던 것입니다. 공해가 없던 당시의 하늘과 바람은 그 냄새를 강 건너까지 전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은 마음껏 그 사탕냄새를 마셨고 언젠가 제과공장에 꼭 한번은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아무도 거기에 가보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배고팠던 시절, 한강을 건너온 사탕냄새는 동네 친구들과 같이 나누었던 ‘건강한 배고픔’이었습니다. 그 사탕냄새는 당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책 속에 있는 딱지 속 빛나는 일등병처럼 말입니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타향 사람들보다 그리움이나 향수가 덜하다고들 합니다. 서울 출신으로서 지금도 서울에서 살고 계시는 작가님에게 ‘서울’은 고향으로서 어떤 의미인가요?


요즈음엔 고향이 서울인 사람이 지방인 사람들보다 많을 겁니다. 인구의 도시 집중현상이 나타난 결과겠지요. 그래서 도시인들에게 고향의 개념이 더욱 옅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런 평범한 도시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막연히 지방이 고향인 사람을 동경하기도 하였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향이란 어느 특정한 장소이기보다는 그곳, 그 시절에서의 추억이기 때문이었지요. 그 추억이 생활의 순수한 놀이에서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처럼 아름다운 고향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은 그런 고향이자, 놀이의 천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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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학교 시절, 이제는 저명한 사회학자가 된 송호근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게 힘들수록 사람들은 따듯했던 어린 시절 기억을 찾고는 합니다. 『놀이의 천국』은 그런 점에서 읽다 보면 한 편의 포근한 자장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을 쓰신 작가로서 집필하면서 느끼신 특별한 감정이 있을까요?


우리의 삶은 수많은 과정 속에서 마냥 서성이는 것들로 이루어 집니다. 그 모습이 꼭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깨끗했으면 좋겠습니다. 허나 그렇지 못한 것이 대부분 우리 삶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잠시 뒤를 돌아다봅니다. 잘 살아왔건, 잘못 살아왔건, 우리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주기적으로 말입니다. 저는 『놀이의 천국』을 쓰면서 이러한 뒤돌아보는 삶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현재의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면서 순수하고 깨끗했던 지난 날의 삶을 기억하며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지 않을까요?

 

프랑스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이 1965년 성북동과 어울리는데요. 예상치 못한 프랑스와 한국의 크로스오버라고 생각됩니다. 처음에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위트릴로의 화집을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이 뭉클 하고 움직였습니다. ‘몽마르트의 풍경’이라든가, 그 옛날 ‘파리의 거리’, ‘코팽의 막다른 골목’ 등, 저를 순식간에 1965년 성북구 동소문동으로 데려다 놓았지요.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와 풍경들이 세밀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먹던 껌 이름까지 기억이 났으니까요. 그렇게 화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위트릴로의 그림 구석구석에는 순수한 외로움의 그림자가 스며 있습니다. 아주 곱고 깨끗한 외로움이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랑의 모습이지요. 그 그림을 한동안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바로 유년의 기억과 어린 날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위트릴로의 그림 속에 제가 살았던 성북구 동소문동의 모습이 세밀화처럼 살아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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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위트릴로, <라팽 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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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스 위트릴로, <몽니스 거리>

 

어느 순간 복고가 유행하더니 이제는 60, 70년대 거리를 복원시킨 공간이나 가게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과거를 찾는 이유와 추억을 돌아보며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각자의 길을 열심히 살아가다가 잠깐 길을 멈추고 자기 삶을 뒤돌아보면 어떨까요? 그래, 잘 했어, 라는 긍정과, 아냐, 잘못했어, 라는 부정이 각각 몇 퍼센트씩 될까요? 제 생각에는 대개 부정과 아쉬움이 긍정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인생의 칠할 정도가 후회와 아쉬움입니다. 참, 아쉽게 살았지요. 그래서 그러한 미흡한 과거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더욱 잘 살아나가야겠다고 다짐도 하게 됩니다. 복고를 통해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서 잠시 격정적이었던 내 삶이 천천히 순화됨을 느끼지요. 분노가 사라지고, 웃음과 평온이 찾아오게 되지요. 무엇보다, 나 자신을 격려하게 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희망적으로 자신을 안아주고 다독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5년에 시인으로 등단 하신 뒤, 절필 하시다가 삼십여 년 만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글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등단은 대학교 2학년 때, 시 추천을 통해서였습니다. 오직 책들이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自學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 시쓰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별안간 정신이 마비된 것처럼 창작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작품 모두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스스로 위선이라고 느껴 온 자괴감 때문이었지요. 아마도 문학의 진실에 대한 저의 무지에서 온 편협한 생각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시쓰기를 그만 두고 오직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하며 한 직장에서 오랜 기간 근무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집, 평론집, 시이론집 등 책읽기는 그만 두지 않았습니다. 수백 편의 시들은 모으고 읽으며 서서히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다시 시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시는 삶의 증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삶은 진솔하고 치열한 것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 관한 시와 에세이를 쓰시는 작가로서 도시의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저는 도시인들의 하나하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고독감을 느낍니다. 그들은 행복한 얼굴로 위장을 하고,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실이 탄로날까 봐 얼른 군중 속으로 숨어버리곤 하지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면, 고독과 우울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상실감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발달된 문명, 편리한 생활체계, 복잡하고 소란한 삶의 주변이 그들을 더욱 외롭게 만들지요. 도시처럼 외로운 공간은 없습니다. 도시인처럼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저는 그들의 내면세계, 심연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의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 상실감을 꺼내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서 말입니다. 『놀이의 천국』이 작으나마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놀이의 천국최성철 저 | 노란잠수함
『놀이의 천국』은 우리 모두 잃어버린, 새로운 세상-그러나 원래 있었던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책에서의 그 세상은 가난했지만 유년의 순수와 가족의 사랑이 가득했던 1965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 동네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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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철 #놀이의 천국 #성북구 동소문동 #추억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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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jiopop

2017.02.21

책 표지가 너무 따뜻하고 예쁘네요.... 글도 좋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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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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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철

돈암초등학교를 거쳐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를 졸업했다. 문학을 시작으로 사람 사는 모습을 찾아다니다가 ‘인문학’이라는 큰 바다를 만나 여전히 그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도 그는 즐겁다. 문학, 인문학 모두 사람 사는 모습을 이리저리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나이 들어서 그럴 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삶에는 정도나 정답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열심히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그러다 보면 기러기도 만나고, 바위도 만나고 하다가 어느 날에는 작은 배 한 척도 만날 것이며, 그 배를 열심히 몰고 온 사람들과 짙어져 가는 석양 밑에 앉아서 그동안에 있었던 자신과 그 사람들 인생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눌 것이다. 그는 일등은 못하더라도 잘 만든 도구 하나 가지고 영원한 ‘감성 장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좌충우돌하더라도 항상 즐겁다. 오늘도 그는 열심히 헤엄친다. 따뜻한 뭍에 도착할 때까지……. 『도시의 북쪽』, 『어느 경주氏의 낯선 귀가』 등의 시집을 냈으며, 에세이집으로는 『놀이의 천국』, 『내려올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광장에서 별을 보다』가 있다. 최근에 진땀을 빼며 쓴 인문학책으로는, 『우리 신화로 풀어보는 글쓰기』와 『나는 대한민국 역사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