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잇 애시드의 진주인공, 샘 레이의 앞선 앨범들이 역시 그랬듯,
찬찬히 뜯어다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앨범이다. 개개의 곡들 단위에서도, 커다란 앨범의 단위에서도 샘 레이의 사운드는 종잡을 수 없이 다채롭다. 다양한 재료들을 준비해두고 급격한 분위기 전환과 돌발적인 변칙, 공격적인 사운드 교차를 시시각각 적용해가며 아티스트는 갖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낸다. 피아노 리프와 전자음의 드론을 교차해 만들어나가는 「Never Alone In A Dark Room」에서의 잔잔한 앰비언트가 「Climbing up the big red tree」의 독특한 전개 속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강렬한 일렉트로니카로 금세 뒤바뀌고 「Nice to see you」의 둔탁하고 완력 강한 드릴 앤 베이스 풍 사운드는 「This is as close to heaven as I get」이 만드는 차분하고 몽롱한 일렉트로니카로 빠르게 전환된다. 보컬 파트를 통해 팝적인 컬러를 은근하게 내비치는 「Fucking to songs on radios」와 렉 앤 레퍼런스의 격정적인 보컬 퍼포먼스를 이식한 「As we speak (feat. Wreck & Reference)」, UK 개러지 식으로 잘게 비트를 쪼개 놓은 「‘Ok’」, 「Never alone in a dark room」 식의 일렉트로니카를 다시 가져와 왜곡된 톤의 알앤비 보컬, 비트를 얹어놓은 「: )」 등의 곡들에서도 다분히 실험적인 아티스트의 면모가 보인다.
아티스트의 강점은 단순히 사운드를 얼마나 독특하고 폭 넓게 구사하고 있는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갖은 소리들끼리 결합된 이 일렉트로니카 앨범은 작품 내에 다양한 사운드 이미지들을 그려낸다. 샘 레이는 이 측면에 있어서도 대단한 아티스트다. 많은 수의 조형을 통해 자유자재로 분위기를 전환해가며 트랙마다의 상을 확실하게 주조해낸다. 뿐만 아니라 통상의 기준으로부터 빗겨서서 실행한 독특한 사운드 디자이닝을 통해 아티스트와 앨범 그 자신의 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로 인해 감상의 주도권은 상당수 창작자와 작품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앞서 언급한 여러 구성 요소들과 「Pull」에서 횡행하는 노이즈, 「know」의 후경에 깔리는 보컬 루핑 등의 장치들이 앨범 속의 고요와 평화와 몽환과 혼돈의 공간으로 들어온 타자를 자기 식대로 끌어안고 뒤흔든다. 아티스트의 컬러를 고스란히 담아낸 여러 이미지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작품 너머의 상대방에게 강력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앨범에 자리한 묘한 결합 규칙은 상당히 낯설다. 아티스트가 구사하는 어휘와 어법이 추상적이고 불확정적인 탓에 작품과 감상과의 동기화를 쉽게 이루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
이수호 (howard19@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