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연희 문학창작촌에서 오카다 도시키 작가, 유진목 시인과 함께 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오카다 도시키 작가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연출가로서 전 세계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전방위적 아티스트다. 이번에 알마출판사를 통해 소설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으로 국내 팬들을 찾았다. 작품에는 「삼월의 5일간」과 「내가 있는 여러 장소들」이 수록돼 있다.
유진목 시인은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와 시를 쓰는 젊은 문예 작가이다. 그녀의 질문을 시작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밀도 있는 대화가 오고 갔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카다 도시키 작가 덕에 연극과 소설 이야기를 넘나드는 북 토크가 이뤄졌다.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의 번역을 맡은 이홍이 역자가 이날의 통역을 도왔다.
오카다 도시키 X 유진목의 대화
유진목: 반갑습니다. 이 시간을 처음 여는 질문입니다. 오카다 작가님은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으로 제2회 오에 겐자부로 상을 받으셨는데요. 심사평에 ‘의지의 행위로서의 낙관주의’라는 말이 있어요. 정확히 무슨 말인지 작가님의 언어로 이야기를 해주시겠나요?
오카다 도시키: 네, 우선 여기까지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자면요, 언급해주신 ‘의지의 행위로서의 낙관주의’는 오에 겐자부로 씨께서 해주신 말입니다. 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 낙관하거나 비관할 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을 하면 무조건 낙관적 혹은 비관적인 상태가 된다’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바꾸어 말하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는 자기 스스로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느 상황이든 의지에 따라 평가합니다. 의지 행위로서의 낙관, 반드시 낙관이라서 좋은 것만은 아닐 테죠. 아마 그 점에 대해서는 유진목 작가와 오늘 이야기하는 중요한 테마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유진목: 절망은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잊을 만하면 또 다른 얼굴로 찾아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 없죠.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의 문제는 개인의 판단이에요. 작가님 말처럼 그것이 희망으로 나아갈 것인지 절망으로 나아갈 것인지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일단 소설 이야기로 쉽게 들어가기 위해 오카다 씨의 연극 이야기를 해볼게요. ‘구시렁구시렁되는 말투와 힘 빠진 신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은 오늘날 도쿄 젊은이들을 잘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작가님은 도쿄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길래 극 중에 이런 인물들을 표현할 수 있었나요?
오카다 도시키: 좋은 질문이네요. 화를 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감정 표출이에요. 그런데 화내고 소리를 지르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계속 외치고 있어야 할까요. 금세 ‘그만두자’는 생각이 들 거예요. 세상이 내 생각은 안 해주고 제멋대로 돌아간다면 바깥세상은 신경 쓰지 말고 ‘되는대로 해보자’는 식이 돼요. 그런 의미에서 힘이 빠져서 흐느적거리는 신체를 극 중에서 많이 쓰는 편입니다.
유진목: 한 인터뷰에서 영화나 소설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연극을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대학 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요. 궁금한 점은 다른 장르에도 매력을 느꼈던 사람으로서 스스로 연극이 지닌 한계는 무엇이라고 느끼시나요? 그럴 때는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시나요?
오카다 도시키: 네, 물론 연극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나 한계점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연극을 하게 될 때입니다. 그래서 ‘이런 발견이 가능하다니 역시 연극이란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연극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에 대한 답변은 간단한데요. 딴 걸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미술작품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영상도 포함되는데요. 저는 그걸 영상 연극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형식상으로는 영상이지만 저한테는 연극 작업입니다. 그 작업을 했을 때는 연극으론 표현할 수 없는 몇몇 부분들이 가능한 부분이 있으므로 그런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작업을 합니다.
예컨대, 무대 위의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청중이 바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연극에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영상에선 가능해요. 가까운 거리로 실제 영상을 투사를 시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영상이라는 게 계속 거기 있으면 사람이 발산하는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비슷한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싶네요.
유진목: 작가님의 연극 이야기로 계속 이어갈게요. 2013년에 한국에서 <현위치>라는 연극이 상당히 화재가 됐었죠. 저도 보려고 했지만, 연일 매진이라 못 봤어요. 그러다가 대담을 준비하면서 대본을 읽게 됐고 현시점에도 어울리는 듯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한 마을의 호숫가에 나타난 이상한 구름을 보고 마을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불안해하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동일본 대지진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죠. 물론 작품 내에선 그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요. 자국이 겪고 있는 재난과 불안감을 녹여낸 시의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는데요.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개인의 불안은 공동체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오카다 도시키: 제가 이 질문을 듣고 많이 생각하는 것은 내가 속한 이 공동체가 일종의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 그 일원인 본인도 똑같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는 점인데요. 불안이 만연해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선택지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동체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이죠. 아마 그 이유는 교육의 영향일 수 있을 것 같고요. 공동체에 대한 비판의식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분명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마주치게 되죠.
유진목: 우리는 역사에 속해 있고 상처는 흘러갈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좀처럼 실제로 이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오카다 도시키: 사회를 변화시킬 때 반드시 누군가는 다치게 돼요. 사회 변화로 인해 더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하는 사람들이 생겨요. 그렇지만 지금 사회가 문제투성이라면 반드시 바꾸는 게 맞겠죠. 사회 변화는 바로 나타나지 않아요. 아주 길게 봤을 때 50년, 혹은 100년에 거쳐 변화가 나타나야 하고, 그래야 그 변화가 옳은 것인가 생각하게 돼요.
덧붙여, 시와 소설 이야기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시와 소설을 읽는 것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독자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상상력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시, 소설, 연극 등 뭘 보여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변화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죠. 이런 입장에서 봤을 때 상상력을 가진 독자들은 장기적 관점으로 봤을 때 큰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거예요.
유진목: 이야기를 듣다 보니 평소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해소가 되네요. 문학을 통해 상상하고 고민하고 예상해봤던 일들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공감이 가네요.
제가 연극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소설보다 명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소설은 연극보다 좀 더 희미하고 주제가 옅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소설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소설 속 인물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말할 때 확신에 차서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자기방어적 태도가 있는 인물들을 내세운 계기가 있을까요?
오카다 도시키: 사실 저의 솔직한 감각으로 썼다는 점이 반영됐어요. 저 스스로가 도망갈 길을 만들어 놓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은 작은 일에도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은 뭘까요. 보통 본인의 의지로 그 길을 갔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때론 어떤 길을 택할 때 개인의 의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감각을 살려서 이 작품을 썼죠. 예를 들어서 ‘러브호텔로 가자’라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아닌, 갈까 하다가 어정쩡하게 간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런 느낌을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3월의 5일간’ 같은 경우에는 중간까지 실제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글을 썼습니다. 그 중간 부분이 이라크 전쟁 발발 전에 라이브하우스에 가서 퍼포먼스를 봤다는 것이죠. 현실 속의 저는 퍼포먼스를 본 후 얌전히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다가 나한테도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덧붙여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죠. 뭐랄까, 하나를 택함으로써 나머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도 남아있다’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진목: ‘3월의 5일간’에서 제가 마지막에 이르러 굉장히 감동받은 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왕좌왕했던 인물들이 그 5일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지점에서였어요. 남겨진 여성은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기차를 타지 않고 머물러 있다가 시부야로 향하죠.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결말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쭙고 싶어요. 미국 대선에는 혐오와 차별에 관한 주제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혐오나 차별에 대해 어떤 규제가 있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 규제가 풀려버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예술이란 장르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로서 이 사안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오카다 도시키: 마지막에 제일 어려운 질문이 왔네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리고 차별을 하는 사람들한테 당신은 성차별,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은 시대죠. 과연 이런 시대에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가 문제일 텐데 저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작가님께서 말씀해주셨듯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걸로 끝나면 안 되겠죠. 이렇게 느끼게 된 게 바로 올해 같네요.
저도 예술가로서 소설을 쓰고 연극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혹은 독자이자 관객으로서, 또한 자유를 추구해온 사람으로서 자유의 중요성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추구했던 자유가 차별이 되는 근원이 되는 무언가와 연결이 돼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우리가 중요시해왔던 자유가 이대로 이뤄진다면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까지가 현재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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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오카다 도시키 저 | 알마
새로운 문학을 찾는 독자라면, 또 속사포 같은 연극 대사 속 오카다 도시키 문학의 심층이 궁금했던 독자에게 추천하는, 알마 인코그니타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자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책의 장정 또한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김상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성심성의껏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iuiu22
201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