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마트에서 드러눕는 아이들을 보면서 뭘 느끼길 바라냐면요. “나는 엄마랑 놀고 싶어. 아빠랑 놀고 싶어. 친구랑 놀고 싶어”라고 속삭이고 있다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장난감은 아무리 좋아도 네 가지 기능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이게 무한히 늘어나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같이 놀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죠.”
-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저자 편해문
2년째 종종걸음으로 퇴근하고 있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지키고 싶기 때문인데, 칼퇴를 해도 3시간을 채우기가 어렵다. 집에 가면 10분 만에 친정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후다닥 먹고, 서둘러 친정엄마를 퇴근시킨다. 24개월 아들에게 “엄마 안아줘”를 외치면, 아들은 내 어깨를 안고 토닥토닥을 약 2회 정도 해준다. 10분 정도 아들과 눈을 맞추고 “오늘 뭐하고 놀았어? 할아버지랑 놀이터 다녀 왔어?”라고 안부를 묻는다. 설거지가 쌓이는 꼴을 못 보는 나는 곧장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치운다. 어린이집 알림장을 확인하고 선생님께 간단한 메모를 남긴다. 새 기저귀를 어린이집 가방에 담고 아들 목욕 준비를 한다. 나의 세수 시간은 계속 짧아지고 있다. 출산 전에는 그래도 눈썹 정도는 그리고 다녔는데, 이제 색조 화장은 아예 하지 않는다.
아들 목욕을 마치고 나면 8시 20분. 그림책을 조금 읽어주다 아들이 가져오는 장난감을 갖고 놀아준다. 스마트폰은 신발장에 올려 놓고 되도록 쳐다보지 않는다. 간혹 ‘까똑 까똑’ 소리가 울리면 잠깐 쳐다본 뒤, 급한 용건이 아니면 답신하지 않는다. 아들이 싫어하는 양치질을 겨우겨우 마치고, 시계를 보면 벌써 9시. 아쉬우면서도 반가운 숫자다. 마음을 다잡고 20분 정도 더 놀아주다가 자장가를 틀고 거실 불을 끈다. “자자~” 아들을 재우다 보면 나도 스르르 잠이 든다. 남편은 5개월째 자정 이후 퇴근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다. 아이가 ‘엄마, 놀아줘’라고 말할 때, 집안일을 되도록 하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면 아이랑 놀아주기보다 설거지가 먼저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아들은 주방으로 쫄래쫄래 따라온다. 설거지하는 내 다리를 붙잡거나 ‘안아줘요! 딸기치즈 주세요”를 외치는데, 두 달 전부터는 웬일인지 거실에서 10분 정도는 혼자 논다.
아이가 아직 어린 까닭에 내 눈앞에 아이가 없으면 불안하다. 혹시 아이가 불안감을 느낄까 주방에서 일할 때는 아들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대화한다. 6개월 전만 해도 ‘내가 너무 장난감을 안 사주나?’, ‘또래 아이들은 뭐하고 놀지?’ 걱정했는데,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잘 놀겠지’ 생각하고 만다. 직장맘이면 상대적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극도로 적다. 하여 2년째 평일 저녁 약속은 전무하다. 주말에도 정말 특별한 일정이 아니면, 아이와 함께한다.
미혼 시절부터 육아 전문가 인터뷰를 종종 한지라, 나름 이론은 많이 한다. 제대로 된 육아서 서너 권만 읽어도 핵심이 보인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말아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미안해 하면 아이가 안다.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고 죄책감을 갖지 말라” 등. 끊임없이 들어도 중요한 말을 제치고, 기억에 많이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마트에서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벌러덩 누워버릴 때, 부모의 대처법’. 아동문학가 편해문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건, 난 엄마아빠랑 놀고 싶다는 뜻이다. 장난감의 기능은 기껏해야 4가지. 아무리 대단한 장난감이 나와도 사람과 노는 것보다 재미있을 수 없다.” 그는 소비를 해야만 행복해지는 어른의 삶을 아이에게 그대로 답습할 거냐고 반문했다. 나는 곧 다가올 ‘아들의 벌러덩’을 상상하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간혹 SNS 속 우정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안쓰럽다. 현실 세계에서 “놀아달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 없는 게 아닐까. 사람을 많이 아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만도 아닌데 말이다. 1990년대 초, PC통신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말발보다 글발이 조금이라도 나았던 나는 PC통신으로 친구들을 꽤 사귀었다. 실제로 만났거나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전무하다.
‘같이 놀아줄 누군가’가 없어 장난감에 집착하는 아이, “같이 놀아줄 누군가’가 없어 SNS에 집착하는 어른. 나는 그들이 딱히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만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사이, 매력 없지 않은가. 아이가 지루해할 때, 새 장난감을 사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에 만화 어플만 잔뜩 깔아놓은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체력이 딸려도 같이 손을 잡고 시장에 가고, 생크림을 가득 사서 서로의 얼굴에 묻혀가며 소박한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 오늘은 설거지를 좀 늦게 해야겠다.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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