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자는 달라졌지만, 옴니버스(omnibus)라는 말에 충실하다. 수록곡 모두에서 한국 뮤지션과의 콜라보가 이루어진 기획 앨범인데, 이러한 ‘사실’을 제외하고 음반 전체를 관통할 만한 키워드를 발견하기 힘들다. 몇몇 곡에서 탁한 신시사이저 베이스 소리를 사용했다는 점(「Strange days」, 「Swim」), 특정 모티브를 반복해 비트의 기반을 잡았다는 점(「Pharaoh」)이 일부에서 교집합을 이룰 수는 있지만, 전반으로 퍼지진 않았다.
첫 번째 곡 「Fafafa」는 발음부터 심란하다. 버킨과 갱스부르의 잔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김사월X김해원이 프렌치 팝의 이미지를 너무 쉽게 도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두 사람의 풍경에 속하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시오엔의 화법이 근사하다. “Bright is the glow / Gold is the haze”와 같이 비유를 적극적으로 쓴 가사가 음유시인을 연상케 한다.
「Fafafa」도 마찬가지고 「In our little life」에서 유독 협업한 뮤지션 쪽에 무게감이 실린다. 선우정아 특유의 경쾌함을 내재한 박자, 실로폰처럼 귀여운 타악기와 건반의 쓰임이 그렇다. 「Fafafa」와 달리 이 곡에서 시오엔은 액자 안으로 들어가 일종의 등장인물처럼 움직인다. 대화가 오갈 때는 듀엣인 것 같으면서도 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파트 분배가 인상적이다. 이때 선우정아의 보컬 센스가 빛을 발한 건 말할 것도 없고.
「Strange days」는 무국적이라고 할 만큼 풍성한 곡이다. ‘3 3 3 3’의 12박 기반으로 펼쳐지는 퍼커션과 타령하는 듯하는 창법이 우리 전통음악을 떠올리게 해 친숙하며, 리듬 섹션에서는 아프리카의 특성도 보인다. 여기에 가스펠 향이 나는 신시사이저를 덧입혔고, 기타와 피아노를 교차시켜 부피를 키웠다. 이어지는 「Swim」은 물을 소재로 하는 음악의 익숙한 특징을 보인다. 건반의 파동을 길게 늘여 공간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가까이에는 우효의 「Seaside」가 있고, 데미안 라이스의 「Cold Water」와도 궤를 같이한다. 심해의 깊이감이 불안하게 몰려오는 순간엔 비요크의 이름 또한 아른거린다. 이러한 원근감과 양감이 오리엔탈 풍의 「Pharaoh」에까지 지속한다.
다섯 개의 개별적인 싱글을 리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EP이기에 내세울 수 있었던 의욕이 아닐까. 한국 사랑으로 끊임없이 다양한 음악 작업을 해내는 시오엔. 그는 마음속에 몇 개의 컬러칩을 품고 있을까.
홍은솔(kyrie1750@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