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힙합씬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빈지노의 1집 음반이다. 재지팩트의
‘시간’이 앨범 콘셉트의 중심에 서있다. 커버에는 해와 달을 이용해 시침과 분침을 표현했고 숫자 대신 온갖 자연물로 둘렀다. 트랙 수가 11개이고 앨범 제목이 <12>. 그의 생을 시간탐험여행에 대입한 것이다. 미술가다운 비유이다. 전반적인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피제이(PEEJAY) 특유의 몽환적인 신시사이저는 이러한 기조를 적절히 조성한다. 여행은 실제 여행과 그의 인생에 대한 여행을 동시에 함축한다. <12>에서 시작하여 1번부터 11번까지 한 바퀴를 돌아오면 다시 제자리지만 그의 이야기가 가슴 한켠에 머문다. 영화 <쥬만지>가 떠오른다.
선입견에 대한 도전이다. 개성 넘치는 가사와 플로우는 물론이고 블랙넛, YDG, 수란, 천재노창 등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아티스트들과 협업과 더불어 예상치 못한 곡 전개는 신선하다. 강렬한 밴드사운드와 시원스러운 후렴의 조화는 요즘 말로 ‘사이다’이다. 「Time travel」, 「I don’t mind」에 이어 「Break」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후 8번 트랙부터 정서가 반전된다. 시간에 대한 비관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우울한 정서를 표현한다. 마치 해가 진 이후 오후 8시의 정서를 나타내는 듯하다. 「젖고있어」, 「Dali, Van, Picasso」, 「We are going to」로 이어지는 구성은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특히 단연 돋보이는 마지막 트랙은, 형식과 전위의 경계를 완벽하게 넘나들며 앨범을 대표한다. 힙합계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탄생했다.
허나 그의 메시지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금전적, 음악적 성공을 이룬 그만의 삶의 방식을 여행에 빗대어 온전히 담아내었으나 사회적 고민은 조금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흡사 자기계발서 같다. 또한 「January」, 「Imagine time」에서의 과한 변용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잉과 야합에 찌든 최근 대중음악계에서, 삶을 솔직하게 승화시킨 예술적 음반이다. 서른을 맞이한 그는 여전히 즐거운 시간 위에 살고 있다, 입대를 제외하면.
2016/06 현민형(musikpeople@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책사랑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