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튼 마늘쓰로 조타
마음에 사랑을 다마서
아직 안 자랄 꽃토 이따.
(꽃은 많을수록 좋다. 마음에 사랑을 담아서. 아직 안 자란 꽃도 있다.)
(370쪽)
햇수로 30년. 스물네 살 때 인천 만석동에 들어간 김중미 작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괭이부리말’에서 산다. 그간 아이를 낳았고, 그들이 성인으로 성장했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단단한 공동체를 일구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곳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는 최근 『꽃은 많을수록 좋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그곳 이야기를 솔직히 담았다. 고민이 많았다. 문학 작품 뒤로 숨을 수 있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이 옷을 벗고 대중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3월 25일 아동문학평론가 박숙경의 사회로 진행된 김중미 작가와의 만남 행사는 그 솔직한 이야기와 가슴 찌릿한 ‘기찻길옆공부방’의 역사를 듣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박숙경은 먼저 이 책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묻고 있다”며 책 작업이 얼마나 걸렸는지, 소감이 어떤지부터 물었다.
“<한겨레>에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창비에서 교육 문제에 초점을 맞춰 에세이를 연재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관심 있는 분야니까 어렵지 않겠다 싶어 쉽게 하겠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안 그랬어요. 창작이었다면 제 이야기를 숨길 수도 있고, 변형할 수 있고, 자유로웠거든요. 그런데 이건 계속 자기 점검을 하게 됐어요. 에세이인데도 딱딱해지고 고민이 많았죠. 갈팡질팡하며 연재를 했는데 이걸 정리해서 단행본으로 내자고 하니까 또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어쩌면 “의식적으로” 막고 있던 만석동 시절의 첫 순간이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솔직한 이야기들. 작가는 솔직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게” 에세이에 담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작가에게 이런 제안은 전에도 있었고,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늘 거절해왔기 때문에 이 에세이는 더욱 고민이 됐다는 진솔한 이야기였다.
결심은 어려웠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작년에 있던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2015년, 인천 동구청은 작가와 동네가 유명해지자 그곳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내놓았다. 김중미 작가는 2015년 있었던 인천 동구청의 ‘옛생활체험관’이야기를 무겁게 꺼냈다.
“작년 6월에 ‘괭이부리말’이라고 하는 만석동에 동구청장이 체험장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계속 거절을 했었는데 이름을 바꿔서까지 추진하려고 했어요. ‘옛생활체험관’이라고요. 엄마 아빠가 자녀와 손을 잡고 와서 가난을 경험한다는 거예요. 체험관을 만들겠다는 그 집 바로 앞, 옆이 저희 공부방 아이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저희가 반대를 하니까 다른 곳과 협의를 진행하고, 저한테는 영주처럼 군림한다고 했어요. 사실 저희 동네 사람은 제 이름도 모르고(웃음) 그런 상황인데 너무 답답했죠. 인터뷰하고, 1인 시위하고 그러면서 이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저희 공부방 식구들한테 이런 책을 준비하는데 아예 우리 얘기를 해버리면 어떻겠느냐고 의논을 했어요. 해보자고, 괜찮겠다, 해서 좀 더 저희 이야기, 공동체 이야기를 깊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기록의 소중함. 박숙경은 『괭이부리말 아이들』 당시를 떠올리며 “계속 한 곳을 걸어오신 분이 기록으로써 그렇게 이야기를 남기고, 또 15년 정도 흐른 뒤에 역시 기록을 남의 손이 아닌 내 손, 우리의 손으로 남겨서 보여준 것”이라고 책에 대해 말했다.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30년 역사의 공동체, 지금 이곳의 허리는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한 2세대들이다. 약 서른 명 정도 되는 이 청년들이 곧 공동체의 새로운 국면을 펼치게 되지 않을까. 개중에는 “공부방을 졸업하고 자원교사로 오지만 공동체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청년도 있고,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도 청년들은 다양한 선택을 할 것이다. 다만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방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난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저희 딸도 헬조선의 청년으로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그 친구도 늘 고민해요. 우리가 살아온 가치와 몸으로 느끼는 것 사이에서요. 공동체로 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고요. 갈팡질팡하는 청년들을 저희는 그냥 지켜보는 거예요. 투덜거리는 학생도 있고, 후에 직업을 가져도 공부방을 할 시간을 고려해 직업을 선택할 것 같다고 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냥 그 상태로 두는 거예요.”
그렇다면 작가가 생각하는 ‘자발적 가난’이란 무엇인가.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이 사실은 범위가 넓은 말이고, 다양한 공동체에서 말하기도 하죠. 공동체라는 말조차도 범위가 넓고요. 제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가난과 제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게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을 때 저희끼리 공부했던 미국에 있는 가톨릭 공동체였어요. ‘환대의 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나 도시 빈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였는데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전평화운동 정신을 따라 병역거부를 한다거나 해서 활동하는 공간이었어요. 처음에 그 공동체를 만나고 막연하게 나는 도로시 데이(Dorothy Day, 미국 언론인, 사회운동가) 같은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고요.
제가 생각하는 자발적 가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스스로 부를 추구하거나 나 혼자 잘 먹고 살기 위해 경쟁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도시 빈민 운동을 알게 돼 빈민 지역에 들어가 살 때는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가난한 도시 빈민 지역에서 나 또한 그 주민으로 사는 것이 먼저였고요.”
가난하게 살기 위해서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 바로 연대다. 작가의 공동체는 돈을 많이 걷는다. 경조사를 위한 돈, 입학과 졸업 축하를 위한 돈, 공동체 밖의 사람들을 위한 돈처럼 종류도 다양하다. 이 방식은 미래를 위한 저축이 아닌 현재를 위한 협력이다. 보험이 없는 삶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희는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밖에 없어요. 통장도 없어요. 저희의 생명과 미래는 서로가 맡는 거죠. 그게 저희의 자발적 가난이에요. 저희의 미래 혹은 지금을 위해 돈을 모아두거나 안전을 추구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그래도 저희는 시간이 없어 그렇지 보고 싶은 영화 있으면 보기도 하고요. 여름에 캠핑도 다 같이 가고 할 것 다 해요. 다만 사치스럽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하는 걸 하지 않는 거죠. 이렇게 살아도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혼자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숙경은 30년 시간을 감탄하며 스스로 대견한 생각도 하는지 물었다. 작가는 다음 이야기를 전하며 조금 울먹였다.
“책 쓰는 동안 후배들에게 한 말이 ‘진짜 열심히 살았더라’였어요. 많이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는데요. 예전에 썼던 일기를 찾고 기억을 되살려보니 정말 열심히 살았던 거예요. 우리 모두가요. 아이들, 후배들도요. 대견하다기보다 진짜 잘 버텼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데 다들 우는 거죠.(웃음) 그 말에 담긴 의미가 저희한테는 남다르니까요.”
기찻길옆작은학교 사람들의 삶의 방식
1. 사람과 사람이 사람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자존감을 가진다.
2. 약자가 가장 높은 곳에 서고, 사람, 생명, 자연과 더불어 살며, 위로가 되는 곳이다.
3.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나눔을 실천한다.
4. 공동체의 불완전한 상태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변화해 나간다.
5.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공동체적인 삶을 산다.
6. 자신이 맡은 일과 자신의 선택,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진다.
7. 예수님의 원칙을 따르며 아이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이룬다. (367쪽)
김중미 작가에게 궁금한 이야기들
제목에서 말하는 ‘꽃’이 어떤 걸 뜻하는 건가요?
어떻게 대중성을 가질지 저도 참 회의적이긴 했는데요. 책에도 담았는데 ‘마음의 화분 그리기’가 있었어요. 백령도는 폐쇄 사회고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첨예한 곳이거든요. 보수적이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좀 폭력적인 경향이 있어요. 어머니들은 중국 동포들이 꽤 많아서 가족에 소통 문제가 많이 있는 편이고요. 아이들마다 조금씩 문제가 있죠. 그곳에서 저학년 아이들만 따로 그림책으로 노는 시간을 만들었는데요. 3박 4일 일정 마지막 날이 되찾은 자존감을 그리도록 하기 위해 ‘내 마음의 화분 그리기’를 한 거였어요. 너무 사랑스럽지만 그 안에서 조금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는데요. 어떻게 그릴지 저희도 상상을 못했는데 화분에 꽃을 잔뜩 그렸더라고요. 아주 늦게 그렸어요. 아이들이 주변에서 “쟤 또 늦게 그려요” 막 그랬어요. 옆에 있던 어떤 아이가 “야, 그림도 못 그리면서 꽃을 왜 그렇게 많이 그려?”라고 물었죠. 보통 꽃을 하나 정도 그리거든요. 아이들이 막 뭐라고 하는 와중에 그렇게 그려놓고 아래 쓴 거예요. “꽃은 많을수록 좋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그 밑에 “아직 안 자란 꽃도 있다.”였죠. “그게 나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언젠가 필 꽃인 거죠.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각하겠죠. 그렇지만 책을 마지막으로 읽고 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웃음) 제목으로 했어요.
공동체적인 삶, 연대하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혼자서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어렵죠. 저는 어디서 강연을 해도 늘 “노동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먼저 물어요. 물론 손을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거기 있는 90% 이상이 노동자가 될 거잖아요. 그렇게 묻는 이유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으면 하기 때문이에요. 꼭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노동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내가 노동자라는 자각이 없으면 내 것을 찾을 수가 없고 같은 노동자끼리 손을 잡을 수가 없어요. 첫 번째는 내가 누구인가를 자각하는 거예요. 저희 공부방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근로계약서 어떻게 써요?”예요. 근데 그 말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 한다는 거죠. 그걸 깨닫게 하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라고 생각해요. 사회를 갑자기 뒤집을 수 없어요. 결국은 여럿이 해야 하는데 그 여럿은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여럿이어야 한다는 거죠.
학교에 왕따가 많아요. 집단으로 따돌려요. 폭력을 행사해요. 옆에서 ‘하지마’ 소리 하기 너무 힘들죠. 나도 당할까봐 두려운 거거든요. 근데 막상 하고 나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돼요. 그 목소리를 내게 하는 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 위에 갈 수 없다는 걸 자각하는 거고, 내 옆에 누가 있는지 깨닫는 거라고 생각해요. 절망적인 건 지금 우리사회가 그걸 못하는 사회인 거잖아요. 학교에서도 안 가르쳐주고, 집에서도 안 가르쳐주죠. 힘들어요. 그래도 해야죠. 그러려면 만나야 하고요. 고립돼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다녀보면 곳곳에 그렇게 사는 분들을 만나요. 핵심은 그 네트워크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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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많을수록 좋다김중미 저 | 창비
작가는 “1987년 만석동에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이야기, 교육 이야기, 가난 이야기, 2001년부터 시작된 강화도 농촌 생활까지” 가감 없이 펼쳐 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이유, 공동체의 꿈,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 등 세상을 향한 메시지도 빼곡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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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