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제목부터 수상하다. 본편도 없이 불쑥 ‘외전’이라는 제목을 들이민다. 흔히 외전(外傳)이라는 것은 만화나 소설, 게임 등의 작품에서 본편 외의 스토리를 다루는 작품을 말한다.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핀오프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기꾼을 벌해야 할 검사가 사기꾼과 손을 잡고 통쾌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점에서, 묵직한 메시지 대신 사기극의 쌔끈한 재미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외전’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수 있었겠다.
솔직히 <검사외전>은 추측 가능한 많은 것들을 애초에 까고 시작하는 영화다. ‘본편이 아닌 이야기’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제목을 통해서 영화에는 ‘알맹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것쯤 예측할 수 있었다. 황정민은 여전히 훌륭한 배우지만 앞선 영화들을 통해 지금 가장 ‘대중성’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더불어 강동원의 넉살은 언제나처럼 충분히 속아주고 싶을 만큼 유연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했다. 바로 재미와 흥행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밖에 있었다. 집 근처 어느 극장에서도 <검사외전>과 <쿵푸팬더> 이외의 상영작을 골라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보통의 영화라면 스토리를 요약해 쓰기 어렵지만, <검사외전>의 이야기는 딱 적어놓은 스토리대로 흘러간다. 다혈질 검사 변재욱(황정민)은 수사를 위해서는 강압과 폭력을 행하는 데 익숙하다. 어느 날 철새 서식지 개발 반대 시위 현장에서 용역업체가 고용한 한 남자가 시위대로 위장해 경찰에 폭력을 휘두르다 체포된다. 피의자는 변재욱의 취조를 받던 중,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변재욱은 살인 혐의로 체포되고, 누명을 쓴 채 15년 형을 선고받는다. 5년 뒤, 변재욱은 자신이 누명을 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기범 치원(강동원)을 만난다. 재욱은 치원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것을 돕도록 법률지식을 활용해 그를 무죄로 출소시킨다.
딱히 반전도 없고, 스포일러가 될 만한 비밀도 없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알차진 않지만 곳곳에 배치한 코믹한 장면들과 유연한 조연들의 연기, 누명을 쓴 검사가 감옥에서 사기꾼을 조종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이야기의 줄기에 황정민과 강동원이라는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의외의 재미는 충분하다. 가장 감시가 철저한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감옥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법행위와 가장 공정해야 할 법조계가 가장 비열한 술수가 판치는 곳이라는 현실풍자는 덤이다.
하지만 가장 분노해야 할 지점이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치원의 행적이 무협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에 복수와 징벌의 카타르시스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대신 정해진 안전한 길을 따라 유연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 강동원의 원맨쇼는 기대 이상이다. 데뷔작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전우치>, <두근두근 내 인생> 속 능청스러운 강동원을 떠올려보면 된다.
치원이 감옥을 나온 이후, 재욱과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음에도 치원의 본질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배신의 냄새를 풍긴다. 따라서 치원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극의 긴장감이 절로 생길 수 있었지만, 치원은 생각보다 충실하게 재욱의 계획에 동참한다. 배신에 대한 치원의 갈등과 계략이 조금 더 세밀했다면 극의 긴장감도 한층 더했으리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베테랑>이나 <내부자들> 같은 사회고발 메시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와 배신과 협력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도둑들> 같은 캐스퍼 장르가 더 강했다면 더 흥미로울 수는 있었을 것 같다. 법의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사기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 자체가 속 깊은 풍자를 담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검사외전>이 선택한 것은 가벼운 버디 코미디이다. 그러니 가볍게 웃고 즐기면 된다는 이야기에 굳이 의미를 찾아보려거나, 의미가 없다고 비난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검사외전>의 흥행은 기록적이다. 무려 5일이나 이어진 긴 휴일에 부담 없이 만나 봐도 좋을 영화인 건 분명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지만 황정민과 박성웅, 그리고 이성민에 이르는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이 꾹꾹 눌러주는 덕에 이야기는 결말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연휴가 끝나는 10일 기준 <검사외전>은 누적 관객 600만을 돌파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1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매일 100만 명의 관객이 <검사외전>을 봤다는 이야기다. 도입부에 잠깐 언급했지만 <검사외전>의 흥행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긴 연휴가 영화 배급의 호기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올 구정에는 대작들의 개봉이 예정되어있지 않았다. <검사외전>에 대적할만한 국내외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 전체 스크린 2,489개의 75%에 달하는 1,800개 스크린에서 9,120번이 상영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배급사인 쇼박스가 CJ 혹은 롯데 같은 극장 계열사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계열사와 상관없이 전국 스크린에 맞수 하나 없는 <검사외전>을 모조리 심어 넣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이디어 좋은 소품 규모의 버디 영화 하나가 거대조직을 등에 업고 블록버스터가 되어버린 이런 아이러니야말로 잠깐 스쳐 가는 ‘외전’이었으면 싶지만, 이미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본편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흥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가 기대 이상의 흥행을 한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극장에서 <검사외전>을 본다, 안본다의 2지 선다라는 상황은 어떤 모범답안도 정답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쓰다 보니 이번 칼럼도 <검사외전>의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많아진 ‘외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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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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