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머더 발라드>의 멋진 뉴요커 '강태을'
“뉴욕판 아침 드라마죠. 사랑의 색깔이 바뀌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글ㆍ사진 윤하정
20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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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국내 초연된 뮤지컬 <머더 발라드>가 벌써 네 번째 시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뉴욕의 바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밀도 높은 사랑 이야기를 파워풀한 록음악으로 풀어 헤친 대놓고 섹시한 뮤지컬. 문득 그동안 수많은 무대를 취재하면서 ‘섹시한 공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품이 얼마나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관객 입장에서 이런 형식과 내용의 공연이 낯설다면 배우 입장에서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일 텐데요. 하지만 초연 때부터 탐으로 이름을 올리며 <머더 발라드>에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배우가 있습니다. 무대가 더해질수록 섹시함까지 짙어지고 있는 배우 강태을 씨인데요. 그를 사로잡은 <머더 발라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강태을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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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상을 접하고 노래를 들었을 때 반했어요. 록 뮤지컬에 성쓰루(sung-through), 새로운 형식이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도 없고요. 결국 불륜이 소재잖아요, 아니면 애증. 무대가 아니면 제가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아버지(서울예대 연기과 강만홍 교수)가 예전에 ‘배우란 직업이 재밌는 게 역할을 얼마만큼 잘 해내느냐에 따라 살인자도 박수 받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점에서도 재밌고, 색다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색다른 작품이긴 합니다. 넘버도 좋고, 관객들이 무대 위 바(BAR)석에 직접 앉아 있는 것도 독특하고요. 그런데 배우들이 캐릭터 분석하는 데 정신적으로 고생하는 심각한 작품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작품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국내 정서상 배우들도 연습할 때 꽤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희 정서는 아니죠. 연습 때는 우선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많은 것들을 시도해 봐야 하니까 본의 아니게 신체 접촉이 많아져요. 그러면서 친해지기도 하지만, 쉽지 만은 않더라고요.”


스킨십이 이렇게 많은 작품은 극히 드물죠?


“스킨십이 많기는 하죠.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이 공연을 하면서 느낀 건데, 스킨십의 수위보다는 얼마만큼 아이 콘택트를 하느냐가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초반에는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동작을 많이 생각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조금 더 섬세한 감정선에 집중하고 있어요. 개개인의 드라마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10번 했던 키스를 5번으로 줄이는 대신 눈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게 훨씬 자극적이고 섹시하더라고요.”


그런데 내용은 이른바 ‘사랑과 전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탐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당성이 필요했을 텐데요.


“맞아요, 뉴욕판 아침 드라마죠(웃음). 저는 세라를 정말 사랑한 탐으로 설정을 잡았어요. 뉴욕 공연에서는 팔찌가 없어요. 초연 때 제가 건의를 했는데, 사랑의 증표가 있으면 연기에 도움이 되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넘버가 ‘마우스 타투(Mouth Tattoo)’인데, 저희끼리는 ‘입 문신’이라고 말해요. 가사를 보면 작품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어요. 상대의 숨결로 새겨진 문신인 거죠.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고, 움직이고,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게 색깔이 바뀌면 정말 무섭게 바뀔 수도 있겠구나... 인간 내면의 깊은 곳까지 가보면 그런 게 이해가 되기도 하는데, 관객들과 거기까지 가면 너무 무거우니까 커튼콜에서 확 풀어주죠.”


상대역과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 세 명의 세라는 어떤가요?


“모두 달라요. 담배라는 오브제가 주는 느낌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가희 세라가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요. 과거에 화려함이 있었고, 그만큼 변해버린 자기 모습에 실망한. 강하면서도 첫눈에 반할 수밖에 없는 세라죠. 가희 씨는 저와 서른여섯 살 동갑내기인데 연기도 잘 하더라고요. (이)정화는 가장 순수하다고 할까요? 눈물도 많고, 사랑에 빠져버린 자기 모습에 아파해요. 남편을 바라보는 미안함도 있고. 그래서 보고 있는 저도 안타깝죠. (박)서하는 두 사람에 비하면 진하지도 세지도 않은 쿨한 모습이 있고요.”

 

이번에 네 번째 공연인데, 탐이 아니라 마이클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아내를 옛 남자에게 빼앗긴 성실한 마이클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겠어요(웃음).


“언젠가 음악 감독님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얘기하셨는데, 관객들이 세라의 권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이클은 제각 결혼을 한 뒤에 도전해 보려고요. 사실 뉴욕 공연에서는 마이클이 배도 나오고 못 생겼는데, 저희 마이클들은 너무 젠틀해서 탐과 세라만 너무 바쁜 사람이 돼 버리죠(웃음). 아직은 탐이 더 욕심나요. 배우로서 멋있고 싶고, 그런 모습을 못 버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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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평상시에도 탐과 비슷한가요? 패셔너블하고, 남성미 넘치고. 실제 사랑을 할 때는 탐과 마이클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네, 저 옷 무척 좋아해요(웃음). 쉬는 날에는 옷 사러 다니고. 그동안 했던 작품 중에 성격은 <그날들>의 ‘정학’이 가장 비슷해요. 차갑고 세 보이는 얼굴 뒤에 숨겨진 천진한 모습들이 저와 많이 닮았는데, 외적으로는 탐이 비슷하죠. 실제 사랑을 할 때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다 있는 것 같아요. 탐처럼 도발을 잘 하기도 하고, 마이클처럼 자상하기도 하고요.”


음색이 굉장히 독특한데, 아무래도 음색이나 성향이 작품 선택할 때도 영향을 미치겠죠? 


“그렇죠, <영웅>이나 <그날들> 할 때는 작품에 맞게 레슨을 받으면서 음색을 많이 바꾸기도 했어요. 그동안 남성미 풍기는 작품을 많이 했는데, 내년에 <아이다>가 무대에 오른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라 도전해보려고요. 라다메스의 노래를 좋아해서 뮤지컬을 시작했거든요. 운동을 해야겠어요, 벗는 장면이 나오니까(웃음).”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데뷔했으니까 벌써 10년입니다. 이쯤이면 뒤를 돌아보기도 하죠?


“돌아보죠. 확실할 건 이제 소극장 공연에 가면 형들보다 동생들이 많아졌고, 대극장에 가도 내년에 얘기되는 몇몇 작품은 제가 다 형이더라고요. 술 살 때 제가 돈 내야 하죠(웃음). 사실 중간에 배우를 그만두려고도 했는데, <그날들>을 통해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섰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소통하는 법도 배우게 되고. 예전에는 좀 방어적이었어요. 일본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오니까 전체적으로 소통하는 걸 잘 못 하겠더라고요. 어쨌든 지금까지 배우로서 여러 색깔을 입혀 왔으니까 이제 제 색깔을 조금 더 명확히 찾아야겠죠.”   


배우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셨는데, 올해만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네요. 새해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물론 내년에도 열심히 작품 활동하겠죠. 제가 1년에 하나씩 화두를 둬요. <그날들> 할 때는 ‘콜 타임 30분 전에 극장에 가고, 30분 뒤에 나가자!’였는데, 그 약속을 지키니까 신뢰가 쌓이더라고요. 내년에 제 화두는 ‘피하지 말자, 다 즐겨보자!’예요. 작품 선택뿐 아니라 제가 하는 모든 선택에 많이 부딪혀보려고 해요. 부딪혀서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제 색깔이 나올 것 같거든요.” 


탐만큼이나 솔직한 남자 강태을 씨. 기자가 박찬호 씨와 외모가 비슷하다고 말했더니 친히 닮은꼴로 찍힌 사진까지 보여주며 큰 웃음을 줍니다. 독특한 음색은 물론이고, 평소 옷을 좋아하고 무대 위에서 배로우서 멋있고 싶은 그를 알고 나니, <머더 발라드>의 탐을, 아니 강태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 만의 색깔을 다지고 있는 강태을 씨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색다른 형식의 뮤지컬이 보고 싶다면, 화끈한 커튼콜을 기대한다면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으로 달려가 보시죠. 단, 만13세 이상 관람이 가능하지만, 자녀나 조카들과 함께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섹시한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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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